‘산업화의 거름’으로 그리는 독특한 미(美)의식의 세계
‘산업화의 거름’으로 그리는 독특한 미(美)의식의 세계
  • 이문원
  • 승인 2004.04.16 18: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PKM 갤러리 "문범 개인전"
최근 들어 '자연 그대로의 소재'를 이용하여 '자연'을 형상화해낸 작업들이 많은 전시를 통해 선보여지고 있다. 고도화된 문명 속에서 '자연의 마지막 숨'을 찾아내기 위한 이런 노력은 대중들의 많은 호응을 얻으며 일약 '21세기의 트렌드'로서 자리잡기까지 했는데, 이런 '자연주의 노선'에 전면적으로 반대급부를 내던진 전시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PKM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문범 개인전"은 '랜덤 랜드스케이프(Random Landscape)'라는 주제로서 다분히 우연에 입각한 심상의 '광경'들을 다채롭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주제'나 '방향성'의 문제가 아닌, '소재' 그 자체이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 모든 작품은 자동차 도료와 스프레이 광택제를 이용하여, 캔버스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자동차 도료를 흘러가면서 만들어내는 작품들인 것. 손으로 오일스틱을 문질러 광택제로 마무리한 이들 작품은, 얼핏 보면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화풍을 보여주며, 결국 '소재가 곧 주제'라는 근래의 의식체계에 파문을 던져주기까지 한다. '자연'과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도 '자연'을 묘사해낼 수 있으며, 어쩌면 '소재의 주제화'란 인간의 의식체계를 한번 통과하여 나온 '불순물적 사고'로서, 결국 관념주의 예술의 한 갈래에 불과하지 않은가하는 생각을 안겨주고 있다. 건국대 교수로 재임중인 문범은 자동차 도료가 일반 물감보다 다양한 종류를 지니고 있으며 순도가 높기에 사용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런 '소재의 특성'을 넘어서는 팝컬쳐적 향취를, 이번 전시는 뚜렷이 대중들에게 선사해주고 있다. '자연'은 우리가 근원적으로 동경하고 있는 '정서의 고향'이지만, 결국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대상체'에 불과하다. "문범 개인전"은, 자연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하는 시선이 '절대적 동경'의 그것이 아니라, 우리가 숨쉬고 있는 '비자연'의 공간에 대해 반대급부의 현상으로서 '인식'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장소: PKM 갤러리, 일시: ∼2004.04.25)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