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사사법통합정보체계 구축사업이란, 형사사법기관이 범죄 수사과정에서 취득한 개인의 모든 정보를 제3의 국가기관을 통해 저장·관리한다는 의미이다. 즉 범죄경력, 각종 진술조사, 피의자신문조서, 수사보고와 같은 증거서류가 DB와 전자문서로 관리 되면서 주민번호, 본적, 주소, 운전면허, 차적, 건강상태, 가족관계, 이성관계, 재산, 병역, 종교, 가입단체는 물론 심지어 통장·신용카드 거래내역 등 온갖 정보가 국가에 의해 저장 관리되는 사업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을 앞두고 사회 곳곳에서 우려 섞인 목소리들이 불거져 나와 그 파장이 쉽게 꺼지지 않을 전망이다.
과연 이 사업의 진정한 의미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사업의 가장 치명적이 약점은, ‘전자문서화 되 서류는 법정에서 증거 능력이 없다’는 것에 있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공문서는 서명·날인과 각 페이지 마다 간인이 되어야함’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전자적으로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공룡’의 출현?
경찰·검찰·법원·법무부 등의 각종 형사사건 서류를 통합해 전산화하는 국가사업이 추진되고 있으나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에서는 새로운 ‘정보권력’ 출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통합망에 축적될 개인 정보의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고 정보 관리 주체도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4년 12월 전자정부 구축 31대 과제의 하나인 ‘형사사법 통합정보체계’(이하 형통망)를 추진할 추진단을 꾸린 데 이어 경찰업무 체계 구축사업을 지난 8월 마무리하고 현재 검찰과 법원 쪽 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고소·고발, 발생 및 인지, 변사 등 사건과 관련해 각종 조서·보고서 등에 담기는 개인 정보가 전자화된 형태로 통합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는 데 따른 정보인권 침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수사기관이 작성하는 조서 등에는 범죄 피의자는 물론 각종 참고인·피해자도 등장하며, 이들의 종교, 정당활동, 가족관계 가족사항, 병력 등 온갖 민감한 정보와 조서도 모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들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기관에는 검찰과 경찰뿐 아니라 수사권을 갖고 있는 국가정보원·국세청·관세청·노동부까지 망라된다.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소속 최규식 의원(열린우리당)은 “국민 편의를 위한다는 사업이 국민도 모르게 진행되고 있고, 이대로라면 그야말로 ‘빅 브라더’가 생겨나는 셈”이라며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 철저히 따지고 시정을 촉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북대학교 법과대학 김희수 교수는 “정보 공유 범위, 운영 주체 등도 합의하지 않은 채로 불명확하게 진행돼 왔고, 형통망 구축으로 대국민 민원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겠다는 내용도 기존의 내용과 다른 내용이 없어 구두선에 그치고 있다”고 언급한 뒤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전자문서에 대한 법적 검토조차 없이 강행 처리함으로써 사업이 완료된다고 해도 아무 쓸모도 없는 전자문서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면서 오히려 업무 부담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만들어 버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치주의 국가에서 사업을 시행함에 있어 가장 먼저 법률적인 근거와 제도적인 방안을 마련한 후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사업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혈세만 낭비하는 결과가 돼 버렸다”고 말해 관련 사업의 부당함을 경고했다.
세금으로 장난하나?
그리고 이와 비슷한 주장이 있어 눈길을 끈다.
경희사이버대학교 NGO학과 민경배 교수는 “수천억원에 이르는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대형 사업을 추진하면서, 그 흔한 공청회 한번 열리지 않은 채 시스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으며 “국민들의 인권과 직결된 중요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DB에 어떤 정보가 입력되며, 입력된 정보는 어떻게 관리되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주장해 형통망 구축 사업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