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량 미달의 짜깁기 보고서가 난무하고, 정책보고서가 정부의 주문대로 변조되거나 주문에 맞지 않으면 임의로 폐기된다고 한다.
사실 정부의 정책연구용역에 대한 불만은 참여정부 들어 끊이지 않았다.
최근에도 조정식 열린우리당 의원이 한미FTA 정책연구용역이 겨우 8건 발주됐으며, 그중 6건은 3차 협상이 종료된 이후에 완성된다고 지적했다. 김동철 열린우리당 의원 역시 지난 9월 2004년 정부가 수행한 정책연구용역 635건중 88%가 수의계약됐다고 문제를 삼았다.
‘연구과제가 특정 학자나 연구소에 집중되면서, 참여정부의 정책 편식을 낳고 코드 정치의 근거가 되고 있다’는 분석은 보는 시각에 따라 보수언론의 트집 잡기로 비칠 수도 있다. ‘함량 미달’이라는 지적도 대상 보고서와 평가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 국정과제위원회의 정책연구용역 중 54%가 위원회의 소속위원들에게 할당됐다는 내용은 좀처럼 간과하기 어려웠다.
국정과제위는 대통령에게 중장기 국가정책과제의 로드맵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정책기획위원회·동북아시대위원회·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등 11개 기구가 속해 있다.
그러나 비대해진 기구에 비해 실질적인 역할이 없어 ‘위원회공화국’이라는 비아냥 속에 지난 6월에는 폐지설까지 거론된 바 있다. 최근 보도에서도 정책연구결과의 정책반영률이 6%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 상태다.
‘위원회공화국’ 존폐 위기
보도에 따르면, 2002년 국정과제위 정책연구용역 발주현황 가운데 54.0%가 산하 위원회의 소속위원들에게 배정됐다. 이 수치는 중앙부처 정책연구용역의 30.2%가 부처별 유관 국책연구소에 배정된 것이나, 광역지방자치단체 정책연구용역의 33.1%가 지자체 산하 연구소에 배정된 것에 비해 20%포인트 이상 높은 것.
특히 “정책기획위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출신이거나 전·현직 정책기획위 위원이 연구를 맡는 ‘코드 발주’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보도됐다. 실제로 인수위 전문위원을 지낸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수가 7건 2억6천만원,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6건 2억1천만원을 각각 수주했다.
이에 정책기획위의 변성완 기획운영국 과장은 “소속 교수가 1백명이 넘는다. 연구용역은 교수가 소속된 학회나 연구팀에 맡기는 것”이라며 “소속위원들이 모두 해당분야의 권위자로 섭외됐는데 이들을 배제한 연구팀에 용역을 맡긴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답변했다. 일리 있는 해명이다.
그러나 임태희 한나라당 의원의 말은 달랐다. 임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정과제위가 발주한 2004년도 정책용역 가운데 학회 차원으로 용역을 맡기는 경우는 드물었고, 학회나 연구팀이 아닌 전·현직 위원이나 소속학과가 직접 계약을 맺은 건만 159건 중 35건이었다. 또한 동북아시대위원회 등 5곳은 소속위원에게 용역을 의뢰하지 않았다.
물론 학회·공동연구팀 차원에서도 연구용역을 진행되기 때문에 단순히 소속위원의 연구용역 수주율이 높다는 것은 얼마든지 아전인수로 해석될 우려가 있다. 그보다 연구용역의 발주가 경쟁계약이 아닌 수의계약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이정우 전 정책기획위원장은 2004년 2월 재직 당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사협의 모형연구’라는 정책용역을 수의계약을 통해 수주받아 동료교수 4인과 함께 연구용역비 3천만원을 받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이 전 위원장은 “내가 받은 돈은 집필료 162만원뿐”이라며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지만, 언론에 대한 소송은 취하했고 한나라당에 대한 소송에서도 패소한 바 있다.
물론 이 전 위원장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실력과 연구업적 대신 ‘눈먼 돈’ 취급을 받는 정부지원금을 유치 액수가 교수의 능력를 평가하는 척도가 되는 것이 요즘 학계의 세태다.
그런 현실에서 전·현직 위원이 인맥이나 안면, 물밑거래를 통해 수의계약을 유치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대책은커녕 문제의식조차 없다는 것은 큰 문제다.
취재과정에 통화한 국정과제위 산하 위원회의 관계자는 “그들의 전문성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고, 다른 관계자는 “실무자의 감으로 너무 편중되는 것은 피하려 한다”고 대답했다. ‘실무자의 감’이 작동한 결과가 소속위원 54% 편중으로 나타난 셈이다.
<세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국정과제위 산하 11개 위원회가 발주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456건의 정책연구용역 가운데 96.2%가 수의계약을 통해 분배됐다. 총 누적액은 157억 5천4백만원. 그중 정책기획위를 포함한 8개 위원회는 모든 용역을 수의계약으로만 맺었다.
96.2%는 다른 정부기관과 비교해봐도 지나치게 높은 수치다. 같은 기간 중앙부처·광역지자체 54개 기관이 발주한 정책연구용역에서 수의계약의 비율은 51.9%에 지나지 않았다. 이 수치도 많다는 불평이 나올 판국인데 96.2%는 지나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수의계약을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용역비를 조절한다는 지적도 할 만하다. 예산회계법상 3천만원 이하의 계약은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는데, 2천900만원~3천만원으로 책정된 연구용역이 상당히 눈에 띄는 것. 국가균형발전위는 114개 연구용역 중 22개를 2900만원에 책정했다. 앞서 언급한 이정우 전 위원장의 연구용역 예산도 3천만원이었다.
이처럼 수의계약을 통해 소속위원들에게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현황도 충분히 의심스러운데 중장기 국가계획을 제시한다는 국정과제위의 목적과는 달리 이들 연구용역이 단기과제에 집중된 점도 의혹을 부추긴다. 국정과제위의 과제당 평균 연구기간이 3.2개월로 중앙부처(5.4개월)이나 광역지자체(7.2개월)에 비해서도 훨씬 짧았다.
국정과제위 위원으로 선정되기만 하면 안면으로 튼 수의계약으로 정부지원금을 받아 챙기고 두세 달 만에 급조한 날림 보고서로 대충 때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운영감독할 조직 없어
이를 방지할 시스템이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11개 기구를 포함하는 ‘국정과제위’는 명목상의 조직으로 청와대 정책조정비서관실에서 국정과제위 산하 위원회들을 총괄하고 있었다. 국정과제위의 실질적인 감시를 수행할 별도의 조직은 없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