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무 국방장관 ‘엇박자’ 끝에 청와대 경고까지

그 중심에는 송영무 국방장관이 있는데, 앞서 미국 방문 당시엔 전술핵 재배치를 거론했다가 홍역을 치르더니 이번엔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와 대립각을 세워 청와대의 경고까지 받았다.
하지만 당장 한국당 등 야권에선 송 장관에 힘을 실어주면서 문 특보 해임을 요구하고 있어 정부 내에서 불거진 대북기조 관련 갈등이 여야 정쟁으로까지 비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오락가락 ‘전술핵 배치’ 발언, 누구 말이 맞나
송영무 국방장관은 지난달 30일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의 연쇄회담에서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와 관련해 논의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는 반면 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에선 대북정책의 전환을 촉구하며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해 이를 언급한다는 자체가 상당히 민감할 수밖에 없던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송 장관은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지난 2일 인천공항에서 기자들에게 “전술핵 재배치 문제는 논의한 적이 없다”며 “그 애기는 확장억제, 그런 방법에 있어 강조를 하는 입장에서 일부 언론과 국회의원들이 그런 요구를 하는데 확장억제를 좀 더 강화시켜야 되겠다는 요구를 함에 있어 국내 여론을 전달했던 것”이라고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어느 정도 논란은 잦아드는 듯했지만 4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송 장관은 “(방미 일정 중) 전술핵을 요구했다는 것은 확대 해석”이라면서도 “정부 정책과 다르지만 북핵 위협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 중 하나로 검토해야 한다”고 배치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를 취해 이를 놓고 다시금 정치권이 들끓었다.
여기에 10일엔 미국 CNN 방송에 출연한 존 매케인 미 상원 군사위원장이 “며칠 전 한국 국방장관이 핵무기 재배치를 요청했다”고 재확인하는 목소리를 내면서 결국 청와대가 11일 “전술핵 재배치가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직접 진화에 나섰다.
송 장관 역시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12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가장 강력한 전략자산 전개 방안을 협의하라’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와 관련해서도 “핵무기 도입은 아니다”라며 “전력이라든지 함정 등등을 이야기한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거듭된 혼선이 계속되자 정치권은 이 문제를 놓고 정부에 불신을 드러냈는데,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1일 “지금 대한민국의 외교안보를 지휘하는 삼각축인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외교부, 국방부의 메시지가 제각각”이라며 “송 장관의 전술핵 재배치 발언은 개인 발언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문재인 대통령과의 교감 하에 나오는 것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바른정당에선 하태경 최고위원이 “송 장관이 미국과의 회담에서 전술핵 배치를 언급했는데 청와대는 이 의미를 축소하기 위해 급급하다”며 “입방정 송 장관을 즉각 경질해야 한다”고 문책까지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 전술핵 논란 속 문정인까지 뛰어들어…송영무 비판
엇박자 ‘설화’로 자칫 벼랑 끝에 서는 듯했던 송 장관은 전술핵 재배치 논란에 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가 뛰어들면서 오히려 전기를 맞게 됐는데, 평소 북한과의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방점을 뒀던 문 특보는 14일 한반도평화포럼 주최로 열린 국회 강연에서 “(우리나라는) 핵확산금지조약과 국제원자력기구, 한미원자력협정에 따라 현실적으로 핵무장이 불가하다”며 보수야당에서 역설하는 전술핵 재배치 주장을 일축했다.
또 문 특보는 전술핵 배치에 대해 “유지비용이 많이 들고 북한의 일차적 타격 대상이 되는 동시에 탈취 우려도 크다”며 “일본의 핵무장을 촉발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핵 위협에도 직면할 수 있다”고 재차 경고했다.
이 뿐 아니라 ‘비둘기파’인 그는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이 최선”이라며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적대적 의도와 정책을 포기하고, 북한은 핵 동결은 물론 검증할 수 있고 불가역적인 비핵화 조처를 해야 한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 특보는 사드와 같은 미사일방어체계의 군사적 유용성에도 의문을 제기하며 북핵 동결을 대가로 한미 연합훈련 축소 등의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 새로운 논란을 촉발시켰다.
특히 그는 유사시 북한 김정은을 겨냥한 ‘참수부대 창설’을 거론했던 송 장관을 향해서도 하루 뒤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과 가진 ‘오마이뉴스’의 TV생중계 대담 ‘북한, 문재인정부의 길을 묻다’에 출연해 “국방장관께서 상당히 부적절한 표현을 쓴 것 같다”며 “용어부터 정제된 것을 사용해야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켜 줄 거라는 걸 알아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자 송 장관도 즉각 문 특보에 정면으로 대립각을 세웠는데, 18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으로부터 문 특보 발언 관련한 질문을 받게 되자 “워낙 자유분방해서 상대해선 안 될 사람이라고 생각해 (참모진에게) 놔두라고 말했다”며 “학자 입장이지 안보특보나 정책특보는 아닌 것 같아서 개탄스럽다”고 문 특보를 에둘러 비난했다.
이에 발맞춰 야권에서도 대북 유화책을 주장하는 문 특보의 경질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일단 송 장관에 집중됐던 화살이 문 특보에게로 크게 분산되는 상황이 일어났다.

실제로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19일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송 장관에 대해선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소신을 지켜야지 꼬리를 내리고 청와대 눈치를 본다고 하면 어떻게 당당한 국방장관이라 할 수 있느냐”고 꼬집은 데 반해 문 특보를 향해선 “정부 외교안보팀의 자중지란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데 문 특보의 친북적이고 낭만적인 외교안보관이 큰 원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앞서 송 장관 경질을 주장했던 바른정당까지도 같은 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주호영 원내대표가 “문 특보의 발언은 정말 납득하기 어렵고 한심한 수준”이라며 “오죽하면 국방부장관이 공개된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정면 반박할 정도다. 특보를 그만두라”고 날을 세웠다.
◆ 청와대, 잇따른 혼선에 ‘송 장관 경고’로 직접 교통정리
이렇듯 야권이 문 특보 경질을 한 목소리로 요구하자 급기야 청와대가 직접 입장을 내고 내부 정리에 들어갔는데,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청와대는 송 장관의 국회 국방위 발언과 관련, 국무위원으로서 적절하지 않은 표현과 조율되지 않은 발언으로 정책적 혼선을 야기한 점을 들어 엄중 주의 조치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청와대가 문 특보의 손을 들어주며 대화에 방점을 둔 대북 기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음을 드러낸 셈인데, 이를 확실히 하려는 듯 같은 날 통일부까지도 송 장관이 전날 국방위에서 800만 달러 규모의 대북 인도적 지원 방침과 관련해 ‘지원하는 시기는 굉장히 늦추고 조절할 예정이라고 들었다’고 한 발언을 단번에 일축하며 “국방장관이 어떤 의도로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정부 입장은 변함이 없다. 오는 21일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 논의할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국방부는 일단 청와대의 엄중 경고 조치에 대해 “추후에 장관께서 또 입장을 표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향후 유념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수용 의사를 표했지만 반대로 야권에선 격앙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김영우 바른정당 의원은 19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직 국방부 장관에 대한 청와대의 이런 조치는 나라를 지키는 군과 국방부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리는 일”이라며 “주의를 받거나 경질돼야 할 대상은 장관이 아니라 문정인 특보”라고 청와대에 일침을 가했다.
아울러 김 의원은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순방 중인 점을 들어 “대통령 출타 중에 현직 국방장관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엄중 주의조치까지 내리게 된 절차와 배경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만약 국무위원에 대해 수석이 주의를 준 것이라면 이건 심각한 국가기강 문란”이라고도 지적했다.
이처럼 대북 기조를 놓고 정부 내에서 온도차가 나오면서 미국을 방문 중인 문 대통령이 매파와 비둘기파 중 어떤 쪽에 무게를 둔 목소리를 유엔 총회에서 낼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 문 특보의 판정승으로 마무리된 이번 사태에 비추어 엄중한 안보상황에도 불구하고 대북 유화적 입장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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