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스타스키와 허치
[영화리뷰] 스타스키와 허치
  • 이문원
  • 승인 2004.04.20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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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혼동하고 있는 풍자, 그러나 웃음의 공식을 잘 알고 있는 놀이
1970년대를 다룬 영화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데이즈드 앤 콘퓨즈드", "부기 나이트", "도니 브래스코", "아이스 스톰", "벨벳 골드마인" 그리고 "캐치 미 이프 유 캔"에 이르기까지, 1970년대의 어지럽고 혼란스런 사회 상황 자체를 '주제'로 이동시켜 버린 영화들. 그리고 1980년대를 다룬 영화들이 극장가를 강타했던 시절도 있었다. "웨딩 싱어", "록 스타" 그리고 지난 해의 "아메리칸 스플렌더"에 이르는, 정치적 극우열풍에 문화적 데카당스를 맞이했던 시절에 대한 추억담들. "로드 트립", "올드 스쿨" 등을 통해 '저급센스 코미디'의 새로운 흥행주자로 떠오른 토드 필립스 감독의 "스타스키와 허치"는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방영된 TV 시리즈의 영화화이자, 원작의 '구식이 되어버린' 컨셉을 풍자하는 자기패러디 영화에 속하는 작품이다.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 등장하는 '1970년대'라는 자막은, 이 영화가 원작 시리즈가 등장했던 시점은 물론, 원작 시리즈의 '고정 형식'까지 철저히 비꼬며 웃음을 선사할 것임을 미리 암시하고 있으면, 곧이어 이런 기대에 걸맞는 개그펀치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런 개그들이 연이어 터져나오면서, 관객들은 기이한 불일치를 감지하게 된다. 바로, "스타스키와 허치"가 풍자하고 있는 것은 1970년대도, 원작 시리즈가 지닌 '공식'도 아닌 것. "스타스키와 허치"는 엉뚱하게도 1980년대의 버디 액션 영화 공식들과 '1980년대 특유'의 난잡한 섹스 묘사들을 풍자해내고 있다. 몇몇 우스꽝스런 의상이나 헤어스타일을 제외하곤 굳이 1970년대라는 시대적 분위기를 묘사하기 위해 애쓴 듯 보이지도 않고, 벌어지는 상황들 역시 1970년대라기 보다는 1980년대 - '마약 카르텔'에 대해 본격적인 선정적 묘사는 분명 1980년대에 이루어졌다 - 라는 느낌을 더 강하게 주고 있다. 어찌보면 '엉터리 컨셉'이라 여겨질 수도 있을 법한 "스타스키와 허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소한 재미의 선사, 1980년대적 상황에 대한 풍자로서는 상당부분 성공하고 있다. '액션 영화의 공식'처럼 여겨지는 액션 콤비 플레이에 대해 예상을 배반하는 전개로써 폭소를 자아내고, 어이없이 등장하는 '마약 개그'와 '섹스 개그'들, 그리고 두 인물 간의 '성격차'가 최대 볼거리인 '버디 무비'의 공식을 차례로 부숴나가는 방식으로, "스타스키와 허치"는 비록 짜임새 면에서는 다소 느슨하고 성의없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런 단점마저도 어설펐던 '1980년대 공식' 자체에 대한 은근한 풍자로 여겨질 만큼 다각도로 '신경 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성공의 중심에는 단연 두 주인공 역을 맡은 벤 스틸러와 오웬 윌슨의 '세기의 콤비 플레이'가 자리잡고 있다. 이미 여러 영화들 - 벌써 4번째다 - 에서 매칭 플레이를 벌여온 이들 두 콤비는 원작에서 느껴지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버디'적 느낌을 선사해주고 있으며, 그닥 힘들이지 않아도 착착 맞아떨어지는 호흡과 '다른 성격이면서도 근본적으로는 같은' 두 인물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톡톡한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스타스키와 허치"는 비교적 여유로운 풍자 영화이다. 날카롭거나 공격적이지도 않고, 통렬하게 꿰뚫는 듯한 쾌감을 선사해 주지 못하지만, 영화가 다루고 있는 - 그러나 표방하고 있지는 않은 - 1980년대에 대해 조롱과 애정을 동시에 보내고 있는 영화이다. 이런 흥미로운 효과의 중심부에는, 바로 앞서 언급한 벤 스틸러-오웬 윌슨 콤비의 '조롱과 애정이 함께 밀려드는' 캐릭터 창조가 자리잡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그리고 이들 둘은, 어떤 소재, 어떤 인물이건 간에, 결국은 이들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인물로 변모시키고, 이로써 소재의 약점을 보완해내는 특이한 재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스타스키와 허치"의 성공적인 영화화 버전은 못될지라도, "벤 스틸러와 오웬 윌슨 1980년대"라는 오리지널 영화로서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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