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 드라이브나 하러 갈까?
‘강원도’에 드라이브나 하러 갈까?
  • 강정아
  • 승인 2006.11.09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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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고속도로는 그 자체가 흥겨운 드라이브코스

▲ 오대천 장전계곡
요즘 하늘을 보면, 가끔 분위기깨는 매연 같은 구름이 지평선 가까이 떠다니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푸르고 투명하다.

아침저녁으로 옷깃에 스며드는 공기도 제법 매운맛이 느껴지고, 조금이라도 한적하다싶은 길가엔 어김없이 코스모스가 한창이어서 한 시대를 풍미한 여인상처럼 불필요하고도 과장되게 휘청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면 어두운 그늘 어디선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시냇물처럼 흘러나오고, 그 처량한 울음소리 위로 달이 허옇게 표백된 채 정신을 놓고 있다.

여기저기서 가을의 징후는 완연하다. 여름이 지나면 나는 마치 애를 연달아 열하고도 하나를 더 낳은 산모처럼 온몸에 맥이 빠지고 정신이 텅 비어버리는 듯한 기분에 휩싸이고는 한다.

요즘 푸른 하늘을 보면 여행이 하고 싶어진다…

환절기병이라고 분류해야 할 이 이상한 질병은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면 어김없이 내 영혼의 문을 두드리는데, 12살 사춘기를 지나면서 단 한해도 거르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아직 그런 낌새가 느껴지지 않으니 이 모든 것이 날씨 탓이 아닌가하는 것이다.

기상청의 예보에 따르면 이번 가을은 무척 짧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가을을 건너뛴다는 예보는 없으니 나의 계절병도 건너뛰지는 않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나는 매도 빨리 맞아두는 게 낫다는 어린시절의 뼈저린 체험에 따라 가을을 찾아 떠나기로 작정하였던 것이다.

이에 영동고속도로는 그 자체만으로도 흥겨운 가을 드라이브코스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을 몸과 마음으로도 느끼고 싶다면, 더욱이 나처럼 이상한 질병을 앓고 있다면 영동고속도로에서 국도나 지방도로 빠지는 것이 좋고, 이중에서도 하진부로 나와 정선·태백 방면으로 달리는 길은 기가 막히게 좋다.

차곡차곡 겹친, 비슷하면서도 다른 각각의 모습을 드러내는 산과 울창한 수림, 여러 모양의 기암과 푸른 물이 펼쳐진 계곡, 이야기꾼이 옛날 얘기를 풀어가듯 실타래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물길과 차길이 이 길처럼 먼 거리를 뻗어가면서 잘 어우러진 곳은 드물기 때문이다.

진부에서 나전삼거리까지의 차길은 오대산에서 발원하는 오대천을 줄곧 왼편에 끼고 한시도 놓질 않는다.

그리고 나전삼거리에서 여량 방면의 42번 국도로 좌회전하면 다시 오른편으로 조양강이 아우라지에 이르는 10km 내내 이어진다.

▲ 송계리 구미정
드라이브하는 내내 한쪽엔 가파른 산기슭이, 다른 한쪽엔 시끌벅적하게 또는 조용히 흐르는 물이 줄곧 따라다닌다.

워낙에 오지인지라 이름도 부여받지 못한 천 미터급의 고봉들이 어깨에 어깨를 견주면서 줄줄이 이어져 있고, 그 사이로는 여름철 수많은 피서객들을 불러모았던 이름난 계곡들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정선으로 가는 길에 제일 먼저 만나는 계곡은 수항계곡, 뒤이어 막동·장전계곡이 나타나고 정선의 경계를 지나자마자 숙암계곡, 항골계곡, 송계리의 구미정 등이 줄줄이 포진해있다.

이 계곡들은 이제 철지난 해수욕장처럼 텅 비어 있다.

어느 계곡에나 발을 들여놓으면 그 적막감은 곧 서늘한 공허감으로 가슴을 휩쓸고 지나간다.

여름 한철에는 이 길을 통해 시원한 숲과 깨끗한 계류를 찾아 수많은 피서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락거렸다.

그러나 피서철이 지난 지금은 대낮인데도 오고가는 차들이 거의 없다.

도로가 백 미터 앞을 바라보기 힘들만큼 꼬불꼬불한데 가끔 앞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차량들 때문에 오히려 깜짝깜짝 놀랄 지경이다.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

일찍 해가 떨어지는 산속길, 점심을 넘기자마자 해는 가파른 산기슭 사면을 따라 황금빛 햇살을 뿌려놓는다.

어디나 한적하고 조용한 곳. 잠시 차를 세우고 눈코뜰새없이 바빴던 일상 동안 끝끝내 정리되지 못했던 생각을 다시금 돌이켜보는 것도 좋으리라.

그런 게 없다면 그저 멍하니 그곳의 변해가는 색깔과 여름과는 다른 소리에 몸을 맡겨두어도 좋으리라. 누가 뭐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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