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천제단 신복동 원장

음양오향과 유, 불, 선, 그리고 주역 등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가장 오래된 경전인 ‘천부경’은 을파소, 삼일신고와 함께 예로부터 우리민족 삼대경전으로 꼽혀왔다.
즉, 그 옛날 유대민족이 구약성서를 가졌던 것처럼 상고시대 우리민족의 고유경전인 셈이다.
점차 메말라 가는 현대사회에 ‘천진’의 뜻을 이어받아 우리민족 고유의 경전을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는 신복동 남산 천제단 원장을 만나보았다.
“13년 동안 ‘9 곱하기 9는 81’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신복동 원장. 그녀가 세계 최고(最古)이자 우리민족 고유의 경전인 ‘천부경’을 접하게 된 계기는 흡사 무속인이 신을 접하는 과정과 매우 흡사했다.
생식기도 중 만난 ‘기연’
당초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신 원장은 지난 95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지장보살을 보시고 100일 생식기도를 수행 중이었다. 불교의 많은 자기 수행 중 힘들다고 소문난 100일 생식기도는 어지간한 정성이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할 수행방법으로 꼽히고 있다. 이는 당시 신 원장의 깊은 ‘불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를 향한 운명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한창 생식수행을 하던 신 원장에게 느닷없이 ‘백두산에서 기도를 해야겠다’라는 계시가 있었고, 그는 이내 기도장소를 ‘민족의 명산’ 백두산으로 옮기게 됐다.
당시 국내사정으로 일반인의 백두산 등정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백두산에서 기도수행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
그러나 신 원장의 백두산 수행은 그리 어렵지 않게 진행됐고 그는 천지를 앞에 두고 생식수행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100일 수행 중 마음속 깊은 곳에서 “천상공부를 하라”는 울림이 일어났고 당시 신 원장은 자신이 계속된 수행으로 인한 탈진상태에서 헛것을 본 것이라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신 원장의 100일 생식기도는 불자로서 법당을 짓기 위한 고행의 시간이었다. 신 원장은 “아마 그때 법당을 짓지 못하게 하려는 하늘의 계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듭니다”고 전했다.
이상한 마음을 뒤로 하고 백두산을 내려 온 신 원장은 98년 큰 딸을 출가시킨 후 급격한 ‘몸 앓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흔히 무속인들이 신을 받을 경우 그 징표로 나타나는 현상이 신 원장에게도 나타났던 것. 걸을 수도 없을 정도로 발이 퉁퉁 부어오른 신 원장은 불자로서 ‘귀신이 들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어쩔 수 없이 그동안 무시해오던 무속인들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신 원장은 “10여년 넘게 모셔오던 부처님을 제쳐 두고 무속인을 찾아야만 했던 절박감에도 불구하고 용하다는 무속인들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결국 우여곡절끝에 신 원장은 명산을 찾아다니며 기도수행을 계속 하던 중 마침내 ‘천부경’을 받아들이게 됐다.
‘천부경’은 원래 환인 시절부터 있다가 훗날 환웅에게 전해진 삼부인 중 하나인 ‘용경’에 새겨져 있던 문구다. 이를 환웅천황이 백두산 기슭에 신시를 개국한 다음 백두산 동쪽에 비를 세우고 거기에 글로 새겨 통일신라시대까지 전해져 내려왔다. 모두 여든한글자로 이뤄진 ‘천부경’은 우주의 법칙을 모두 담아내고 있었고 신라시대 최치원이 번역문을 내기도 했었다.

이러한 ‘천부경’을 신 원장은 13년 동안 ‘9 곱하기 9는 81’을 외치며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13년에 걸쳐 민족종교인 ‘천진’을 공부해 온 신 원장은 지난 2000년부터 본격적인 ‘천부경’ 전파에 나섰다.
신 원장은 “우리 조상들을 되짚어 보면 결국 단군할아버지가 국조이다. 이는 역사를 떠나 우리민족의 ‘뿌리’ 개념인 것이다”라며 “당초 할아버지를 접했을 때 무료로 우리나라의 뿌리를 알리겠다고 약속한 만큼 ‘천부경’ 강의는 무료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남산 천제단에는 약 40여명의 1기생이 ‘천부경’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전통문화아카데미를 통해 무료로 이뤄지는 공개강좌에는 ‘천부경 강해’를 비롯해 덕운 선생의 ‘생활풍수’, 수람선생의 ‘태극기와 건강생활’, 만만 선생의 ‘정체 치유법’ 등이 매주 수요일 오후 7시부터 진행되고 있다.
남산 천제단에는 이밖에도 전통제례대행도량을 마련, 조상들에 대한 제사를 대행해주는 ‘원스톱 서비스’도 실시하고 있다. 무속인들이나 스님들도 제사를 지내는 데는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천제단에는 약 1천명의 위패를 모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고 여기에 조상들의 혼백을 모시게 되는 것이다. 또한 높은 비용 때문에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제사를 대행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전통제례대행도량에서는 명절차례를 비롯 기일제사, 조상제사 등의 의식을 33만원에 대행주고 있다. 또한 49제, 신병, 빙의, 장례, 이장, 화장 등 각종 생활사를 수시로 상담해주고 있다.
현재 천제단에는 이미 100여명이 위패를 모시고 조상에 대한 예를 갖추고 있기도 하다.
각종 제례 서비스 대행
남산천제단을 사단법인으로 만들어 일반인들에게도 “종교를 뛰어넘어 할아버지 ‘천진’이 우리 민족의 뿌리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신복동 원장.
오늘도 민족뿌리 알리기에 여념이 없는 신 원장의 발걸음은 바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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