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형태, 5·18 정신의 헌법 전문 포함, 양성평등 개념화 등 사안별 여야 입장차 커

대선 당시 모든 후보가 2018년 지방선거 때 개헌투표도 하겠다는 공약을 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일정을 국회 시정연설에서 확인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11월 1일 국회에서 열린 내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국회에서 일정을 헤아려 개헌을 논의해 주기를 당부드린다”며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개헌은 국민의 뜻을 받드는 일”이라며 “개헌은 국민의 참여와 의사가 반영되는 국민 개헌이어야 한다. 국민주권을 보장하고 정치를 개혁하는 개헌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4년 중임 대통령제 선호, 자유한국당은 이원집정부제 관심
하지만 인사청문회와 국정감사 등 바쁜 정치일정에 개헌에 대한 관심은 뒷전에 밀리는 듯하다.
국회는 1월 여야 35명의 의원으로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11차례의 국민대토론회를 전국에서 개최했다. 하지만 일반시민의 관심과 참여는 높지 않다.
참여연대는 개헌특위 활동과 관련 해 성명을 내고 “개헌은 주권자인 국민의 동의와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국회는 개헌 논의 과정에 국민의 참여를 제한하여 국민을 들러리로 만들고 있다. 이렇게 일방적인 정치권만의 논의로 개헌안을 만들어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개헌논의 과정을 국민에게 전면적으로 개방할 방안을 마련해야한다”고 시민참여 방안마련을 촉구했다.
개헌특위는 12월 중에는 자문위원안 검토를 거쳐 기초소위원회를 구성하고 내년 2월까지 특위 차원의 개헌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또 3월에 개헌안을 발의해 지방선거 직전인 5월 24일까지는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친다는 일정을 잡고 있으나, 주요쟁점에 대해서는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정부 역시 개헌발의를 준비하고 있으나, 국회논의를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3당은 23일 ‘개헌관련 확대 원내대표 회동’을 갖고 “이번이 개헌·선거구제 개편의 적기”라며 국민의 기본권을 신장하고 ‘지방분권을 이뤄 내자’는 대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가장 민감한 정부형태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은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반면 자유한국당은 대통령이 외치를, 총리가 내치를 나눠맡는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하고 있다.
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만 중대선거구제에 대해서는 공식 논의를 하지 않았는데 지역구 사정에 따라 찬반이 엇갈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중대선거구제 둘 다 부정적이다.
양원제 도입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양원제는 국회를 두 개 합의체로 나눠 운영해 지역 대표성을 강화하고 의회 권한을 분산시킨다는 장점이 있지만 의원 수를 더 늘린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반발이 클 수 있다.
민주당은 또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반드시 헌법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자유한국당은 “이 원칙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오히려 창의성을 저해할 수 있다며 헌법에 명시해서는 안 된다”고 반대하고 있다.
이 밖에도 기본권 문제, 선거구 개편 문제, 5·18 정신의 헌법 전문 포함 여부 등 정당별로 이해가 엇갈리는 쟁점들이 쌓여 있다.

우선 헌법 전문에 ▲5·18 민주화 운동 ▲6월 민주화 항쟁 ▲부마민주항쟁 등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으나 역사적 평가가 진행 중인 점과 국론분열의 우려 등을 고려하여 추가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논의가 계속 진행 중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기본권과 관련해서는 현행 기본권의 주체로 일괄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국민’을 ‘사람’으로 바꿔야한다는 주장이 있다.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는 “특정 기본권은 사람이 보편적으로 누리는 권리이고, 현행 헌법 해석상 국민을 포함하여 사람의 권리로서의 성질을 가지는 기본권은 외국인 등에게도 인정되고 있으므로 이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기 위하여 기본권 주체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현행 유지입장은 “현행 헌법 해석상 기본권의 성격에 따라 외국인 등의 기본권 주체성이 인정되고 있고, 기본권을 사람으로서의 권리와 국민에게만 한정되는 권리로 구분하여 규정하기 어려우며, 국민이 아닌 사람에게 국내법적으로 권리를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입법정책상의 문제이지 헌법의 문제는 아니므로 헌법 개정은 불필요하다”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양성평등 보장 규정여부를 놓고도 “양성평등의 경우 다른 영역보다 보장할 필요성이 크므로 별도의 조항을 신설하여야 한다는 의견”과 “양성평등 보장 규정을 별도로 신설하는 것은 양성평등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결과가 되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엇갈리고 있다.
‘근로’와 ‘근로자’를 ‘노동’과 ‘노동자’로 용어수정할지 여부에 대해서도 “‘노동조합’, ‘고용노동부’ 등 ‘노동’이 보편적인 용어이므로 ‘노동’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에 “EU 기본권 헌장 상의 ‘Working’은 ‘근로’로 번역되어 있는 등 단순한 용어의 문제이므로 개정이 불필요하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과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집중되어 왔던 권한을 분산하여 권력이 남용되는 일이 없도록 하고 분권과 협치가 가능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고 다만, 우리나라의 현실에 부합하면서 분권 및 협치를 실현하기에 적합한 정부형태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토지공개념에 대해서도 별도의 헌법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는 “토지의 유한성, 생산수단·생활기반으로서의 중요성, 토지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 및 이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 심화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토지공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토지공개념에 대한 별도의 헌법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인데 반해 현행 헌법 하에서도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법률과 제도가 존재하므로 토지공개념에 대한 별도의 헌법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선거연령 하향, 투표시간 연장,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국민발안제 등 참정권 확대를 요구하고 있으나 이 역시 여야의 입장차가 크다.
이런 지지부진한 와중에 27일에는 기초자치단체장으로 구성된 지방분권개헌 서울회의 출범식이 국회에서 열렸다.
출범식을 주관한 서울특별시구청장협의회의 회장 이해식 강동구청장은 “지방분권 이념이 존재는 하는가, 종이 위의 잉크로만 존재한다”며 “주민의 힘, 국민의 힘, 주권자의 힘이 강화되는 게 첩경”이라고 강조했다.
이 청장은 “지방분권은 단체장의 힘을 강화시키는 게 아니라 주권자의 힘을 강화시키는 것”이라며 “그런 열기를 모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5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개헌특위 자문위원회는 오는 29일 ▲정부형태 ▲정당·선거 ▲지방분권 등 3개 분과 소회의를 거쳐 다음달 1일 전체회의에서 최종보고서 채택을 시도한다. 자문위는 지난 24일 전체회의에서 최종보고서를 채택하려 했지만, 핵심 쟁점인 정부형태를 새 헌법에 어떻게 담을 것인지를 놓고 이견이 분분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자문위는 정부형태 등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핵심 쟁점에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단일안 대신 여러 의견을 보고서에 병기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28일과 30일 집중토론을 벌일 예정인 국회 개헌특위는 여야쟁점 협의 및 조문화를 거쳐 내년 2월 설날까지 반드시 개헌안을 내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여야쟁점이 좁혀질지 의문이다.
개헌안이 마련된다면 이후 국회 개헌안 발의(내년 3월), 국회 본회의 의결(내년 5월) 등을 거쳐 국민투표를 하게 된다. 현행 국민투표법에는 대통령이 국민투표일 18일 이전에 국민투표안을 공고하게 돼 있어 내년 5월 25일까지 대통령이 투표안을 공고해야 하고, 전날인 내년 5월 24일까지는 개헌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한다.
개헌을 반대하는 의견은 거의 없다. 70% 이상의 국민이 찬성하고, 국회의원 개개인도 다 찬성의사를 밝히고 있다. 일정상으로는 내년 지방선거 때 동시에 개헌안 찬반투표를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쟁점은 좁혀지지 않고, 정치적인 관심에서는 상대적으로 멀어져있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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