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가는 베어벡호
뒤로 가는 베어벡호
  • 박종덕
  • 승인 2006.11.17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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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챔피언결정전 망친 대표팀 차출

▲ 핌 베어벡 축구대표팀 감독
지난 15일(한국시간) 2007 아시안컵축구 최종예선 원정경기에서 핌 베어벡 감독의 축구대표팀이 이란에 0-2로 졸전 끝에 완패했다.

베어벡 감독에 대한 비난은 완패에 대한 타박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K리그 2006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한 성남 일화 천마와 수원 삼성 블루윙스의 주력선수들의 차출을 K리그와 축구팬의 반발을 무릅쓰고 강행하고 이란까지 끌고 가놓고서는 이들을 기용하지 않은 것.

애초 베어벡이 대표팀에 포함시키려고 했던 성남과 수원의 선수는 5명. 이중 김남일(수원)과 장학영(성남)이 부상으로 출국 전에 소속구단으로 복귀했고, 나머지 김두현 김용대(이상 성남) 조원희(수원)는 데려갔지만, 이중 김두현과 김용대는 끝내 기용하지 않았다.

이에 ‘뛰지도 않을 선수 왜 데려갔느냐’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여기에 베어벡 감독과 대한축구협회의 변명에 대한 거짓 공방도 끊이지 않는다.

대표팀은 쓰지도 않을 선수였지만 K리그에 진출한 성남과 수원에게 세 선수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김두현은 성남의 플레이메이커이고 김용대는 골키퍼다. 두 포지션 모두 구단 사정상 대체가 어렵다. 부상에 체력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들은 19일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 어떻게든 뛰어야 한다.

차출 강행 끝에 0-2 패배

이들을 굳이 데려가야만 했던가에 의문은 크다. 특히 김두현은 정규리그가 끝나기 전부터 김학범 성남 감독이 아시안컵에서 제외시켜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지만 깨끗이 무시당했다. 심지어 김두현은 이란전을 앞두고 훈련을 하다 발목부상까지 당했다. 김용대에 대해서는 백업 골키퍼가 필요했다는 것이 대표팀의 입장이지만, 김용대를 대체할 백업 골키퍼가 K리그에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이란전은 져도 상관없는 경기였다. 이미 3승2무로 승점11을 확보해 이란에게 지더라도 본선 16강에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남 김학범 감독은 “아시안컵에서 우리와 맞붙는 팀들의 면면을 보라. 대학팀이 나가도 이길 수 있는 상대들”이라며 단호하게 K리그 챔피언결정전 진출팀 소속선수들의 대표팀 차출을 거부했다.

그런데 굳이 K리그 챔피언결정전 진출팀 소속선수들을 차출한 베어벡 감독은 정작 이란까지 이들을 끌고 가서 기용하지도 않은 채 “대학팀이 나가도 이길 수 있는 상대”에 0-2로 형편없이 무릎을 꿇다.

▲ 차범근 수원 삼성 블루윙스 감독
조원희만 차출당했던 수원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조원희와 오른쪽 풀백 포지션 경쟁을 벌이는 송종국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조원희는 지난 15일 이란과의 경기에서 선발 출장하기도 했다.

여기에 부상으로 대표팀 엔트리에서 제외된 김남일이 재활을 통해 페이스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보도도 흘러나와, 상대팀인 성남의 부담감을 더하고 있다.

때문에 당초 팽팽한 접전이 예상됐던 이번 K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이번 대표팀 차출논란을 기점으로 수원의 우세를 점치는 전문가들이 부쩍 늘어났다. 베어벡 감독의 고집이 K리그의 향방을 결정지은 셈이다. 아니, 망쳤다.

이에 김학범 감독과 차범근 감독이 나란히 불쾌감을 드러냈다. 베어벡 감독이 지난 16일 “출국 하루 전에야 차출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프로답지 않다”고 한 말에 차범근 감독은 지난 17일 “말을 안 해도 대표팀 감독이 스스로 판단해야 할 일을 두고 프로팀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게다가 “출국 하루 전에야 차출에 대해 불평”했다는 베어벡 감독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출국 하루 전”이라면 12일이고, “왜 김두현이 챔피언결정전에 못 나간다는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김학범 감독이 강경한 대표팀 차출 반대 입장을 표명한 내용이 보도된 것은 벌써 지난 4일의 일이다.

지난 6일에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4개 K리그팀 감독이 모여 기자회견을 통해 “K리그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당연히 대표선수들이 소속구단에서 뛸 수 있도록 모든 조치가 강구돼야 한다”고 공식 요구한 바 있다. 결국 베어벡 감독의 발언은 한국 감독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공동성명을 발표하건 말건 철저히 무시하겠다는 뜻일까. 아니면 한국어를 못해서일까.

한국어탓은 아닌 것 같다. 당연히 한국어를 할 줄 알 것 같은 축구협회는 17일 성명을 통해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한 뒤 성남, 수원 감독이 갑자기 소집 반대 입장을 표명”했으며 그전에는 “양 구단이 이란전 참가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6일 기자회견은 아시안게임 대표팀 소집에 한정된 요청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 축구협회의 논리다.

그러나 “K리그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챔피언결정전은 제외된다는 축구협회의 논리에 동의하기 힘들고, 김학범, 차범근 감독이 플레이오프 이전부터 챔피언결정전 일정을 지목해 대표팀 차출에 강하게 항의해온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수없이 남아 있음은 앞서 말한 대로다.

▲ 김학범 성남 일화 천마 감독
더 당혹스러운 사실은 성남·수원 양 구단이 대표팀 차출을 거부하고 소속선수들을 소집에 보내지 않자, 축구협회는 지난 12일 한국프로축구연맹과 회의를 열고 성남·수원 선수들을 이란전에 데려가지 않는 대신 해당 선수 5명을 파주 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 일단 입소시켰다가 소속구단에 복귀하는 것으로 축구협회의 체면을 세워주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이다.

성남·수원 양 구단은 이 같은 합의만 믿고 소속선수들을 파주NFC에 보냈지만, 다음날인 13일 베어벡은 “열외는 없다”며 입소한 선수들을 이란행 비행기에 태우는 것으로 뒤통수를 쳤다. 이에 축구협회는 17일 성명을 통해 “전혀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으나, 구단 관계자는 ‘일단 파주NFC 입소-이란전 엔트리 제외’라는 제안을 한 것이 협회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당시 이 과정을 보도한 해당기사에는 출처가 “축구협회 고위 관계자”로 돼 있어 협회의 해명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대표팀 입소를 두고도 ‘뒤통수’

베어벡은 이번에 쓸데없는 고집을 부려 스스로의 입지를 좁혔다. 오는 21일 일본과의 올림픽팀 평가전에서 또 다시 백지훈을 차출해 자신의 ‘옹고집’을 과시할지 관심이 간다. ‘옹고집’을 과시한다면 ‘퇴출’을 요구하는 목소리만 높아질 뿐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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