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당, 3차 탈당으로 ‘한 자릿수’ 의석 전락…통합 속도도 ‘주춤’

무엇보다 그동안 안철수 대표와 만나며 양당 통합에 힘을 실어오던 유승민 대표가 직접 나서서 통합을 번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는데, 국민의당과의 통합에 반발해 자유한국당으로 복당까지 하려는 인사들이 속출하면서 바른정당 내 통합 의지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 유승민, 정체성 문제 들어 통합 추진 ‘숨 고르기’
지난달 21일만 해도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당 개혁세력의 결단을 환영하고, 새로운 개혁 연대의 성공을 위해 바른정당의 교섭창구를 즉시 만들어 국민의당과의 협의에 착수하겠다”며 환영 의사를 내비쳤던 유승민 대표가 불과 2주도 지나지 않은 지난 4일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갑자기 입장을 번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데 이어 나흘 뒤인 8일엔 “통합을 최종 결심했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거리두기에 나서, 발언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유 대표는 속도 조절에 나선 가장 큰 이유로 두 당 사이의 정체성 문제를 가장 먼저 꼽았는데, 지난 6일 B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의당은 특히 외교 안보 문제, 남북관계 문제에 있어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정체성”이라며 “신당을 만들기 전에 외교 안보에 꼭 합의를 봐야 한다. 바른정당의 국가안보관과 유사한 분들과 같이 가는 게 좋다”고 밝힌 바 있다.
이틀 뒤인 8일에도 그는 “안보위기가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 그 해법 등에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정당을 함께 하는 게 맞다”며 통합을 놓고 내홍에 휨싸인 국민의당을 한층 더 압박했는데, 이에 일단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북핵 문제, 미사일 도발이 심각한 와중에 우리가 선택할 선택지가 많지 않다. 기본적으로 (대북관에) 큰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고 진화에 나섰다.
이 뿐 아니라 안 대표는 ‘통합을 최종 결심했다고 한 적이 없다’는 유 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도 “지금 유 대표가 국민의당의 진행 상황에 대해 지켜보고 있다고 받아들인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는데, 바른정당 측에서도 ‘통합 파기’란 뜻은 아니었는지 오신환 원내대표가 8일 “통합을 완전히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건 아니다. 국민의당이 28일 전당대회를 하니 마니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 대표가 신중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적극 해명에 나섰다.
이를 증명하듯 유 대표 본인도 같은 날 강원 국군춘천병원을 찾아 양구 군용버스 추락사고 부상 장병을 위로하던 자리에서 “국민의당과 통합을 둘러싸고 찬반이 너무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먼저 정리가 돼야 한다. 그걸 기다리고 있다”며 통합 전 이른바 지분 확대를 위한 ‘밀당’ 차원에서 태도를 바꾸게 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그런 건 할 생각 전혀 없다. 안 대표도, 나도 통합이 성공하기 위해 의지나 열정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 劉 ‘오락가락’ 배경은 실상 ‘정체성’보다 당내 반대 때문?

물론 유 대표가 우려한 대로 대북정책 등의 측면에서 국민의당은 통합추진협의체 출범 첫 회의에서조차 통합파 측 의원도 신당 강령에 햇볕정책을 포함시키는지 여부를 놓고 신경전이 벌어졌을 만큼 현실적 인식차도 여전한 건 사실이다 보니 이런 입장을 내놓는 데 대해 이상하게 생각할 부분은 없을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동안 양당 정체성이 상이했던 부분이 있는 건 통합 추진 이전부터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왜 갑자기 이 시점에 이 같은 발언을 내놨느냐는 점에선 조금 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다.
먼저 유 대표가 지난 4일 “쫓기듯 서둘러 통합하지 않겠다.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속도조절에 들어간 듯한 발언을 처음 내놓게 된 배경도 당시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당 사무처 당직자 비공개 간담회에서 당직자들 대다수가 국민의당과의 통합에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었기 때문이란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 대표가 8일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 직후 “통합에 대한 최종 결심은 제가 하는 게 아니라 당이 같이 하는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답한 점 역시 이런 당내 분위기를 의식한 게 아니겠느냐는 건데, 정작 정체성 문제에 대해서도 통합파인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위원이 6일 “바른정당은 햇볕정책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밝힌 점에 비추어 실상 정체성 문제보다는 국민의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당내 기류가 유 대표가 최근 양당 통합에 신중해지는 데 크게 작용한 게 아니냐는 해석에 한층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국민의당과의 통합보다 자유한국당과의 보수통합에 우선 방점을 두던 인사들부터 본격 탈당 움직임을 보이면서 유 대표의 속은 더욱 타들어가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유승민계로 꼽혀왔던 김세연 의원조차 9일 입장문을 내고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그간 지역에서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저와 정치적 행보를 함께 해 온 당원 동지들의 뜻을 받들어 한국당으로 복귀하겠다”며 한국당 복당을 공식화했다.
여기에 그동안 한국당보다 국민의당과의 통합을 먼저 추진하는 데 반감을 드러냈던 남경필 경기지사까지 같은 날 오후 의원총회 참석 도중 기자들과 만나 “보수통합 후 중도통합 이런 길로 가자고 했었는데 순서가 달라져 저는 동참하기 어렵다는 말씀을 드렸다”며 “오늘 탈당계를 제출할 것 같다”고 탈당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런 상황과 관련해 유 대표도 같은 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세연 의원 설득이 잘 안 되고 남 지사는 (탈당) 입장이 강해서 설득을 못했다”며 “이학재 의원은 최대한 설득하는 중”이라고 순순히 인정했다.
하지만 설득 중이라는 이학재 의원 뿐 아니라 원희룡 제주지사마저 3차 탈당 대열에 동참할 가능성이 여전해 바른정당도 국민의당과의 통합 이전에 당장 현상 유지부터 걱정해야 할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 의원 수가 줄어드는 건 차치하고, 남 지사에 이어 원 지사까지 탈당할 경우 17개 광역단체장 중 이들 뿐이었던 바른정당으로선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 적잖은 타격을 입는 게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그래선지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위원은 9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원 지사를 향해 “통합신당만 지지해주시면 원 지사 고민 없어진다. 그냥 통합신당 후보로 나간다”며 “제주도 민심만 보고 거취 선택하는 건 어리석은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하 최고위원은 “남 지사가 계속 한국당과 통합을 우선적으로 강조했기 때문에 (탈당은) 예측 가능했던 것”이라며 “유승민, 안철수 두 사람만 같이 가면 합당의 시너지 효과는 사라지지 않는다. 합당 실체 중 70%는 유승민”이라고 강변하기에 이르렀다.
◆ 흔들리는 바른정당에 ‘반사이익’ 수혜자들 함박웃음

이렇듯 바른정당이 여러 어려움에 봉착하자 이에 반사효과를 볼 정파에선 즉각 흔들기에 나서고 있는데, 그동안 샛문을 열어뒀다던 한국당에선 몇몇 인사들의 바른정당 탈당 소식에 곧바로 환영한다는 반응을 내놨다.
당장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9일 당사에서 열린 ‘2030 청년 신년인사회’에서 “오늘 한국당에 들어올 분이 한 분 있다”며 “누구에게나 정당 선택의 자유가 있다. 우리 한국당은 들어오려는 분을 배척하는 그런 정당이 아니다”라고 김세연 바른정당 의원의 한국당 복당 결정에 호응을 보냈다.
한 발 더 나아가 한국당은 남경필, 원희룡 지사에 대해서도 홍문표 사무총장이 같은 날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나와 “그런 분들은 아마 조만간에 무슨 결심의 생각을 갖고 계신 걸로 알고 있다. 오시면 저희들이 모실 것”이라며 러브콜을 보냈다.
아울러 홍 총장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에 대해서도 “사실 이 두 당은 유감스러운 얘기지만 정당의 생명력은 이미 끊어졌기 때문에 그걸 잇기 위해 지금 자구책을 마련하는 게 아니냐”라며 “정강정책이 지금 서로 안 맞는 부분이 80%다. 위기에 있는 분들이 끼리끼리 모이는 것이지, 국민 야망에 부응하는 정당이 될 수는 없다”고 혹평을 쏟아냈다.
이밖에 바른정당 1차 탈당자에 속했던 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바른정당을 탈당한 남 지사와 김 의원을 “가장 바른 정치인”이라고 극찬한 뒤 “이제 보수의 동지였고 제 마음 속 사랑이자 깊은 상처였던 바른정당을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 된 것 같다”며 여전히 탈당하지 않은 의원들도 빨리 결단하도록 바른정당 흔들기에 동참했다.
한편 바른정당에서 일어난 3차 탈당 사태에 대해 한국당 뿐 아니라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반대해오던 국민의당 내 통합 반대파 역시 절호의 기회로 여겼는지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김세연 의원, 남경필 지사 등 알곡은 빠져나가고 쭉정이 몇 석 가지려고 뺄셈정치 하면 안 된다”며 “유승민 대표는 정체성 운운하며 느긋하나 안 대표는 동질성 운운 당 바치려고 안절부절”이라고 통합파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이런 와중에 자칫 양당 통합은커녕 분열만 되는 최악의 사태를 우려했는지 김동철 원내대표 등 국민의당 중립파에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함께 하는 방법에는 통합만 있다고 보지 않고 다른 당 의원들께서 국민의당에 개별 입당하는 방법도 있다”며 개별입당안을 바른정당에 제시했으나 바른정당은 고사하고 국민의당 통합파인 안 대표조차 “아직 그쪽은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어 막판에 난관에 직면한 양당 통합에 어떻게든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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