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행 헌법은 전문 1개조, 본문 130개조, 부칙 6개조로 이뤄져 있는데 지방자치에 대해 명시된 부분은 이 중 제8장(지방자치)의 117조(지방정부 역할)와 118조(지방의회 조직·운영), 단 2개 조문뿐이어서 130개의 조문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한 ‘지방분권’ 부분을 현 정권에선 마치 개헌의 본질인양 전면에 내세운다는 것은 사실상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선하려는 개헌 취지를 최대한 희석시키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여야 간 개헌 관련 합의가 잘 이뤄지지 않을 경우 기본권과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개헌안을 먼저 하고 권력구조 개편은 나중에 하자는 2단계 개헌론을 제안하거나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한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었던 지난번 청와대에서의 신년기자회견 내용을 돌이켜보면 탄핵 직후 선출된 대통령으로서 그간 수차례 문제가 됐던 제왕적 대통령제를 진정 고쳐나가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또 설령 진정으로 지방분권을 추진하려는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인 거라면 개헌에 앞서 지방의 재정자립부터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런 현실적 측면은 간과한 채 무작정 지방분권 개헌을 역설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현재 지방은 여러 면에서 재정난을 겪고 있는 상황인데, 제조업 등에 기반을 둔 공업도시들은 삼성전자가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한 광주광역시의 사례처럼 기업들이 점차 저임금 국가로 공장을 이전하는 문제에 직면해 골머리를 앓고 있고, 애당초 대학이나 종교시설이 많은 교육문화도시들의 경우엔 교회 등 면세업이 많다 보니 다른 의미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렇듯 각 지방별 주요재원 뿐 아니라 인구와 교통, 환경, 복지적 측면 등 여러 면에 있어서도 지역마다 편차가 크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을 먼저 손대지 않은 채 지방분권 개헌을 하겠다는 건 그저 실효성 없는 정치적 선언을 한다는 데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지방분권은 경제적 자생력을 갖추는 데서 출발하는 것임에도 국가에서 내려주는 교부세나 광역단체에서 기초지자체로 내려주는 교부금에 의존해 ‘외형상’ 지방분권 모양새만 낸다면 결국 자생력도 없는 재정자립도 낮은 지역에만 더 지원해줄 수밖에 없는 악순환만 계속되고 사회주의와 다를 바 없게 되는 게 아니겠는가.
다만 지역별 격차야 현실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만큼 면적에 관계없이 지방재정 자립도를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우선 개헌안에 지방분권을 강조하기 이전에 행정구역 개편부터 단행해야 하는데, 적어도 국회의원 선거에 있어선 서울 등 주요도시에는 1개 구에 국회의원이 3~4명이나 있는 경우가 있는 데 반해 인구가 적은 지방에서는 4~5개 지역구를 통·폐합시켜 국회의원 수를 1명으로 줄인 곳도 있어 기초지자체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시급히 인구수에 따른 행정구역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지방의 재정난은 이 같은 외적 요소 외에도 무능한 지자체장이 선출됨으로써 벌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은데, 기초지자체장 선거의 경우 대개 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지역 실상을 살피고 제대로 알아가려 하기보다 공천권자의 비위를 맞추는 데 더 방점을 두고 있으며 결국 지역사정에 밝지 못한 채 포퓰리즘에나 빠진 인기 위주의 후보가 나올 가능성도 한층 높아지는 문제가 있다.
문제는 이를 견제해야 할 장치도 매우 빈약하다는 건데, 현재 구청 감사관조차 그 임명권을 구청장이 갖고 있는데다 지방의회의 구의원들도 현실적으로 지자체장 견제가 쉽지 않은 만큼 감사권 자체가 유명무실해져 있어 단순히 예산과 같은 경제적 측면 이전에 다른 부분들을 살펴보더라도 지방분권을 추진하기 위한 여건이 여전히 갖춰지지 않은 실정이다.
이 같은 지방자치단체의 현실을 알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심 알고 있으면서도 개헌 화두가 권력구조 개편 쪽에 쏠리는 게 부담스러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인지 현재 청와대에선 지방분권 개헌을 역설하고 있지만 진정 지방분권을 하려면 여건 조성이 전제돼야 하는 만큼 과도한 대통령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본래 개헌의 취지를 흐리기 위해 지방분권으로 포장하는 자세는 최소한 탄핵 사태로 집권한 현 정권이라면 더 이상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재작년 한 영화에서 나와 한창 유행했었던 ‘뭣이 중헌디’라는 대사를 오랜만에 반추하면서 이제 2월 임시국회를 앞둔 시점에 개헌과 관련해 과연 우선순위를 어디에 둬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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