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영화리뷰]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 이문원
  • 승인 2004.04.24 15: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상수의 미래는 과연 무엇인가?
홍상수에 대해 정리할 수 있는 시점이 드디어 다가왔다. 그는 우디 앨런이다. 그는 매번 비슷한 이야기를 비슷한 인물군상들을 통해 비슷한 화법으로 말하는 원-패턴 작가이다. 그는 날카롭고, 유머러스하며, 신랄하지만, 결국 그에게 미학적 비젼이란 한 가지 방향 밖에 없었고, 이를 확장시키려는 의지도 거의 보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홍상수의 신작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홍상수의 영역'을 완벽하게 '구획 확정'시키는 동시에, 그가 '항상 같은'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여러 새로운 테크닉을 도입하고 있음을, 그리고 같은 이야기, 같은 인물들이더라도 그 다루는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이야기로 변모할 수 있음을 입증시키는 케이스가 되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주인공 헌준과 문호가 선화라는 여인을 상대로 한 추억에 잠기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홍상수는 곧 이 두 인물이 결국 같은 인물임을, 하나의 생각, 하나의 사고에서 파생된 두 얼굴일 뿐임을 재치있는 방식으로 설명해준다. 그들이 겪는 상황은, 다르긴 하지만 결국 같다. 그들이 선화와 만들어낸 관계 역시, 다른 양상을 보이긴 했지만, 결국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기억의 포로'들은 자신들 둘을 결정적으로 같은 출발점에 올려놓인 주인공, 선화를 찾아 나선다. 홍상수의 세계는 지독한 일상성과 비약적인 비일상성이 가장 리얼리스틱하게 뒤얽혀있으며, 그런 까닭에 우스꽝스럽다. 일례로, 헌준과 문호, 선화와 그녀의 '요가 강사' 친구, 그리고 개 한 마리가 뒤얽혀 펼쳐지는 난장판 술자리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히스테리컬한 웃음을 선사해주는 장면이자, 헤집는 듯 날카로운 관찰력, 즉흥연기가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영역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들이 하룻밤 사이에 벌인 '엄청난 쇼다운'이 '뛰어 도망가는' 헌준으로 마무리 지어지고 난 뒤, 영화는 실질적으로 끝난 것과 마찬가지이다. 모든 사건과 상황이 정리되었고, 인물이 규정지어졌다. 단 한 가지, 영화의 제목만이 아리송해 질 뿐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영화의 주제'를 한 데 아우르는, 그리고 결정적으로 영화를 비균질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데 일조하고 있는 문호의 파트가 덧붙여진다. 사실 홍상수의 주제의식과 표현양식은 날이 갈수록 단순화되어가고 있다. 그 극한에까지 이른 것이 "오! 수정"이었으며, 얼핏 원-펀치 개그 단편을 보는 듯한 "오! 수정" 이후, 홍상수가 선택한 것은 '결론 도출 이후에 진행형의 사건을 덧붙여 텍스트를 와해시키는 전략'이었다. 이것은 "생활의 발견" 당시에만 해도 얄팍한 주제의식을 감추기 위해 등장한 모종의 '눈속임'처럼 의심되었지만, 같은 방식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로 옮아온 모습에서는 이야기의 틀을 분방하게 하고, 전체 심상을 확장시키며, 보다 넓은 폭의 귀납적 결론 도출을 꾀하고 있는 '아이디어'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끄트머리에 붙어있는 문호의 시퀀스는 여자가 남자의 '과거'를 채우고 있을 뿐 아니라 '미래'의 상황을 지배하고, 통제하고 있다는 영화의 주제를 명확히 알려주는 효과를 낳고 있다. 그리고 '세 명'의 이야기를 결국 '한 명'의 인물이 압축시킨다는 점에서, 문호라는 캐릭터는 문호, 헌준, 선화라는 세 캐릭터의 '아우성'이 한 데 모아진 '주제적 캐릭터'로 다시 탄생하게 되고, 각 인물들의 개성과 영역을 '무시'하고 '파괴'함으로써 주제에 이르게 하는 흥미로운 결론도출 과정을 선보이고 있다. 모든 원-패턴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홍상수가 보여주는 '하이퍼 리얼리스틱한 부조리'는 흥미롭긴 해도, 점차 전형적인 방식으로 굳어져가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 힘들고, 결국 몇 편을 넘어선 시점부터는 반복/재생산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정말로' 단순 재생산에 그치고 있는 우디 앨런과 달리, 홍상수는 분명 자신의 미래를 발견한 듯 보인다. 자신의 영화를 보고 나오며 갖게 되는 감흥은 결국 같을지라도, 이를 도출시키는 과정에서 개성과 개별성을 부여하겠다는, 그래서 결국 '결론 도출 과정'의 차이 그 자체가 주제가 되어버리는 조금 독특한 '미래'가 바로 그것일테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이런 '전략'의 '시발점'격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수작이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