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 넓은 대인관계·장기적 전략으로 세계 7위 우뚝
경영권 이양과정 순탄치 않을 듯… 추측 난무
조 회장의 업적은 바다사랑·해운사랑으로부터 나와
서울 아산병원 영안실 30호에 차려진 빈소엔 수많은 조문객으로 붐볐다. 한진해운 회사장으로 치러졌고 영결식은 지난 11월 29일 한진해운 여의도 본사에서 열렸다. 장지는 경기도 고양시 해인사 미타원에서 거행됐다.
조 회장은 국내외 해운업계에서 행성과 같은 존재였다. 조 회장은 1954년 인천에서 태어나 1979년 미국 남가주대(USC)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그해 대한항공에 입사,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지난 1985년 한진해운 상무를 맡으면서 한진해운과 인연을 맺게 됐다. 조 회장은 1994년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2003년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고 국내외 해운산업 발전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전개했다. 즉, 한진해운이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하는 데 그의 힘이 무척 컸다는 분석이다.
세계 해운업계가 그를 주목했다
조 회장은 세계 해운업계가 주목하는 해운인이었다. 해외 해운업계는 그의 폭 넓은 대인관계와 그가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1991년 그의 비중이 높음을 증명하는 계기가 있었다. 우리나라가 국제해사기구(IMO)에 첫 가입할 때, 외무부 등 관계기관에서 IMO 가입을 위해 뛰어줄 인물로 조 회장을 지목한 것.
당시 말타 공화국 명예총영사로 활동하고 있던 조 회장은 각국 대표들을 찾아다니며 협력을 요청, 결국160여 개국의 투표로 치러지는 이사국 선임을 이뤄냈다.
그는 세계 컨테이너선사 최고경영자 모임인 박스클럽(BOX CLUB) 멤버였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는 세계최대의 컨테이너 항로인 북미항로에 취항 중인 선사들의 협의체인 북미항로 안정화 협정(TSA)의 의장으로 명성을 날렸다.
뿐만 아니다. 1993년 세계 최대의 민간해사기구인 발틱 국제 해사기구 협의회(BIMCO)의 이사에 선임됐고 2000년부터 2005년까지는 세계선사협의회 (WSC) 이사회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이는 한진해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는데 일조했다는 것이 해운업계의 평가로 남게 됐다.
조 회장의 이러한 활동은 독일에서까지 인정받았다. 지난 2004년 독일 함부르크 주정부가 수여하는 최고 공로 훈장인 ‘오너러리 메달 오브 골드(The Honorary Medal of Gold)’를 수상한 것.
특히 이 메달은 1853년 제정된 이래 151년 동안 지금까지 총 35명만이 수상한 권위 있는 훈장이라는 사실은 그의 업적이 크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 회장의 측근들에 따르면 조 회장은 평소 눈앞의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성장에 목표를 두고 일했다고 한다. 또한 어려운 판단을 할 때 공동의 이익을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겼다고도 한다. 아마도 그의 이러한 정신이 지금의 한진해운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또한 그의 정신은 선친 고 조중훈 회장의 역할이 컸다는 것도 측근의 말이다. 선친은 살아생전 “해상운송과 같은 수송사업은 개인적으로는 이익이 없더라도 인내를 가지고 국가 경제발전을 위해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할 기간산업”이라고 말해왔다고 한다.
조 회장은 이 같은 믿음과 정신은 한진해운이 연간 1억 톤 이상의 화물을 수송하는 국내 최대의 해운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이는 세계 7위권 규모의 선사로 성장한 한진해운이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 주고 있다.
조 회장이 한진해운 상무를 시작으로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한진해운은 1992년 한국 최초의 4천TEU급 컨테이너선을, 1996년에는 5천300TEU급 세계 최대형 초고속 컨테이너 선박을 취항하는 등 컨테이너선 대형화와 합리화를 이끌어 내는 업적도 보였다. 이는 국내 해운산업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특히 1990년대 기업들의 대 중국 투자가 소극적이던 시기에 장기적인 시장 잠재력을 간파하여 과감한 투자를 감행, 중국지역본부를 신설하고 상하이 등에 내륙 컨테이너 장치장을 설치하는 등 한 발 앞선 글로벌 경영전략을 펼쳤다고 한다.
조 회장의 바다사랑은 끝이 없다
조 회장의 업적은 바다와 해운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즉, 그의 바다사랑이 회사 경영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것.
지난 1994년 제9대 한국해양소년단 연맹 총재에 선임되면서,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해양 입국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독도사랑 어린이 수호대, 국제 청소년해양축제 등 대규모 행사를 개최했고 미국과 일본 등 선진 17개국과 함께 한국이 세계 해양소년단연맹 정회원국으로 선임되도록 하는 노력도 보였다. 이는 우리 연맹의 위상을 크게 발전시켰다는 것이 중론이다.
또한 한국선주협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국제선박등록제도 등의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모색하고, 대형선사와 중소선사의 공존공영의 기틀 다지는 등 세계 해운시장에서 한국 선사의 경쟁력 강화에 힘썼다고 한다.
조 회장은 이러한 열정과 노력의 결과로, 지난 1996년에는 한국 해운산업의 국제경쟁력 제고와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조 회장은 한진해운만의 리더뿐만이 아닌, 우리 해운업계를 이끌어 가는 리더였다고 전한다.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그의 신념과 철학이 계속해서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앞날을 인도할 지침이 될 것으로 믿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