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동반자살 사건의 달
혼자 죽으면 허전한 것일까. 최근 들어 여러 명이 무리를 지어 함께 자살을 시도하는 사건이 부쩍 늘어, 더없이 황폐해진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4월 27일 오후 4시40분 경, 전북 무주군 무풍면 삼거리에 위치한 'S민박'에서 20대 남녀 3명이 숨져 있는 것을 민박집 주인 장모(38)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이들은 신원파악 결과 김모(22·여·인천 연수구)씨와 변모(29·인천 부평구)씨, 신모(28·여·경남 마산)씨로 확인됐다.
"교통사고 당했다고 주변에 알려달라"
장씨와 장씨의 어머니 하모(68·여)씨는 "4월 26일 오후 7시쯤 우리 민박집에 20대 남녀 6명이 들어왔다"며 "이날 오후 객실 청소를 위해 문을 열어 보니, 남자 1명과 여자 2명 등 3명이 나란히 숨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방안에서는 이들이 마신 양주 1병, 맥주 5병, 소주 5병, 5통의 유서, 약봉지 등이 발견됐다. 유서는 김씨가 3통, 변씨가 1통, 신씨가 1통씩을 작성했다.
김씨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남긴 유서에서 '부끄러우니 자살한 것을 숨겨달라.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주변사람들에게 알려달라', 언니에게 '두 달 전부터 자살만을 생각했으니 빨리 잊어달라'고 당부했다. 변씨는 '누나 메일로 유서를 남겼으니 참고해달라'고 적었다. 신씨는 '어머니, 아버지 미안하다. 그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청산가리를 먹었으니 부검하지 말라'는 취지의 유서를 남겼다.
민박집 주인 장씨 등의 진술과 경찰의 조사를 종합하면, 이들은 26일 오후 7시께 민박집 도착, 오후 9시께 저녁식사, 27일 새벽 1시까지 화투놀이, 새벽 2시 음주, 새벽 5시께 퇴실 등의 행적을 보였다. 경찰은 이들이 이날 새벽 2시부터 5시 사이에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치밀하게 준비된 동반자살
한편, 동반자살 한 이들 세 명은 자살에 이르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등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전북지방경찰청 강력계는 4월 28일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숨진 김씨의 노트에 자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적혀있다"고 밝혔다.
김씨가 작성한 노트에는 4월 16일 자살사이트 운영자인 숨진 변씨를 인천에서 만났고 이후 렌터카를 이용, 서울과 충남 아산, 경남 마산을 거쳐 전북 무주까지 이동했으며 이 과정에서 사이트를 통해 연락이 닿은 사람들과 합류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특히 이 노트에는 이들이 서울의 애완동물 가게에서 토끼를 산 뒤 4월 23일 경남 마산에서 구입한 독극물을 토끼에게 먹이기도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이들의 동반자살은 치밀하게 준비됐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씨는 동반자살 한 변씨 등 두 명 이외에 사건 당일 떠난 나머지 세 명의 자살사이트 대화명을 노트에 적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경기도 모처에서 이들이 이용한 렌터카를 발견, 대여한 사람의 인적사항을 조사하고 있으며 이들이 전자우편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으로 보고 인터넷 사이트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 사건 당일 떠난 3명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동반자살 시도 70대 부부, 극적으로 구조
동반자살 사건은 이것뿐 만이 아니다. 승용차에서 수면제를 먹고 동반자살 하려던 70대 부부가 신고를 받고 수색에 나선 경찰에 의해 극적으로 발견돼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4월 27일 경기도 군포경찰서 의왕지구대 부곡치안센터에 따르면 비가 쏟아지던 4월 26일 오후 7시30분 경, 수원에 사는 임모(75)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의왕에 사는 친구가 자살하러 나간 것 같다"며 치안센터에 전화로 신고했다.
임씨에 따르면 의왕시 월암동에 사는 친구 홍모(76)씨가 이날 오후 4시30분께 '지금 죽으러 가는데 뒤처리를 부탁한다'고 전화를 했는데 3시간이 넘도록 연락이 없어 집을 찾아가 보니 방안에 통장과 도장, 가족연락처가 남겨진 채 친구 아내(75)와 함께 없어졌다는 것.
임씨의 신고를 받은 의왕지구대 김윤조(38)경사와 윤성욱(33)순경은 곧바로 순찰차를 타고 자살할 만한 장소를 돌아다니다 오후 8시께 의왕시 부곡동 왕송저수지 부근의 한 카페 앞 주차장에 서 있는 홍씨 부부의 레간자 승용차를 발견했다.
김 경사 등은 승용차 안에 수면제 약병이 놓여 있고 홍씨 부부가 눈을 감은 채 앉아있는 것을 발견,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혼수상태에 빠진 홍씨 부부를 의왕시 선병원 응급실로 급히 옮겼다. 홍씨 부부는 응급치료를 받고 다행히 목숨을 건져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하루가 지난 4월 27일 현재,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다. 홍씨 부부는 수면제를 과다복용 했으며 조금만 시간이 늦었으면 생명을 잃을 뻔한 위급한 상황이었다고 병원 측은 전한다.
윤 경장은 "홍씨 할아버지가 치매증세를 보이는 할머니와 단칸방에서 어렵게 생활해 왔고 평소에도 '죽고싶다'는 말을 친구에게 한 것으로 보아 처지를 비관해 동반자살 하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처 재혼 비관, 자녀들과 동반자살 기도한 경찰
4월 22일 오후 4시55분께 경기도 양주시 양주쓰레기 처리장에서 양주경찰서 소속 나모(36)경장이 아들(11), 딸(9)과 함께 독극물을 마신 채 신음하는 것을 처리장 직원 이모(32)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나 경장과 아들은 병원으로 후송도중 숨졌고 딸은 서울 모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중태다. 나 경장 가족이 자살을 기도한 현장에는 이들이 함께 마신 것으로 추정되는 독극물 병과 독극물을 마신 뒤 구토한 흔적 등이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나 경장은 지난 2001년 12월 부인과 합의이혼 한 뒤 두 자녀와 함께 거주해왔으나 최근 전처가 다른 남자와 재혼하자 삶을 비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나 경장이 최근 전처를 찾아가 어린 자식 등의 장래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말다툼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전처가 경찰서로 찾아와 나 경장을 제지해줄 것을 요청했다"며 "이에 따라 지난 19일 나 경장을 불러 전처의 주장을 확인하려 했으나 나 경장이 조사를 거부하고 사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나 경장이 전처의 재혼사실에 괴로워했고 사고 현장에서 승용차와 독극물 등이 함께 발견된 점을 미뤄 나 경장이 자녀들과 함께 독극물을 마셔 동반자살 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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