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용미술을 통해 ‘경계’가 사라진 세상을 본다
응용미술을 통해 ‘경계’가 사라진 세상을 본다
  • 이문원
  • 승인 2004.05.03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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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밖 미술"전
이제는 '응용미술'이라는 단어를 쓰는 일 자체가 어쩌면 낡고, 촌스러울뿐더러, 이데올로기적으로 위험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 이후 현대미술에 있어서 '순수'와 '응용'의 경계는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고, 이런 '경계의 사라짐'을 언급하는 것마저도 '오래된 뉴스'에 속하게 되어버린 것. 그러나 그 '목적성'에 있어서 서로 맞닿을 수 없는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의 '세계관 차'는, 비록 경계가 무너진 세상일지라도 분명 다시금 탐구하고 그 가치를 되새겨볼 만한데,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 열리고 있는 <미술 밖 미술>전은 응용미술에 대한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소개를 통해 순수미술이 지닐 수 있는 의미와 영역까지도 되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미술 밖 미술>전은 상업·응용미술 분야의 여러 작품들과 함께 순수와 응용의 경계선상에 놓인 보다 더 미묘한 위치의 작품들까지 함께 아울러 소개하고 있다. 단순히 '시각성'이 지배하고 있는 현대 대중문화에 대한 '확인'의 장으로서도 충분히 기능할 수 있을 법한 이번 전시에는 타이포그래피와 상업사진, 웹디자인, CF, 만화, 애니메이션, 무대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여러 갈래 상업·응용미술의 '첨병'들이 '뒤바뀌어진 시대'를 당당히 주장하듯 저마다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으며, 안상수, 구본창, 권영호, 권력, 박명천, 피터정, 박재동, 양영순, 김준섭에 이르는 수많은 상업·응용미술의 선두주자들이 총동원되어 오늘의 미술-대중문화 속에서의 미술-경계가 무너진 세계의 미술을 관객들에게 쏟아붓듯 선사하고 있다. 모든 종류의 문화형태는 점차 '대중화'의 방향으로 옮아가고 있다. 문화/예술 자체가 지배계급/지식인 계층 삶의 형태를 상징하던 시대로부터, 참 멀리도 온 셈이다. 그러나 이 폭압적인 '대중화'의 물결 속에서도, 어떤 작가들에 이에 반기를 들지 않고서도 충분히 자기 자신의 미의식과 세계관을 작품 속에 투영하여, 이를 '모든 이를 위해', 혹은 보다 자본주의적인 목적을 위해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장르의 데카당스라 여겨지던 응용미술의 세계는, 어쩌면 '시대의 데카당스'를 보여주는 한 예일 수도 있겠고, 또 다른 식으로는, 그저 '시대가 변해버린'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미술 밖 미술>전이 그 휘황찬란한 시각적 경이를 품고 있으면서도 어딘지 씁쓸한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에서 일 듯도 싶다.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일시: 2004.04.23∼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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