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진실에 가까운 ‘투탕카멘 만들기’
가장 진실에 가까운 ‘투탕카멘 만들기’
  • 이문원
  • 승인 2004.05.0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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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카터의 "투탕카멘의 무덤"
20세기 고고학계의 가장 큰 이슈라면 아마도 이집트의 왕릉을 발굴해낸 일일 것이고, 그 중에서 가장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킨 '스타'를 선정한다면 단연 '투탕카멘'의 무덤을 꼽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20세기 초엽, '왕들의 골짜기'가 수많은 발굴가들에 의해 정체를 드러내어 '이제 더 이상 무덤은 없다'는 소문까지 퍼졌던 시기, 그리고 이들보다 먼저 왕릉을 발견한 도굴꾼들에 의해 '거덜난' 상태로 발굴되어 '이집트왕의 무덤' 자체가 별다른 흥밋거리가 되지 못하던 시기에 모습을 드러낸 투탕카멘의 무덤은, 휘황찬한 황금 미라와 함께 3400여점에 이르는 진기한 유물들을 포함하고 있어 순식간에 전세계적인 문화 이슈로 떠올랐으며, 이 고고학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발견'으로 인해 역대 왕명표에도 나와있지 않을 정도로 단명한 '무명의 왕' 투탕카멘은 일약 '현대에 가장 유명한 이집트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투탕카멘의 무덤>은 바로 이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해낸 장본인, 하워드 카터(1874∼1939)에 의해 씌어진 투탕카멘 무덤의 세세하고 진실한 발굴기이다. 카터는 본래 정통 고고학자 출신이 아닌, 벽화모사가 출신이었다. 체계적인 고고학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고고학자 페트리에게서 발굴 기법을 익히고, 여러 발굴 작업에 참여하며 고고학적 '센스'를 키워나간 카터는, 많은 발굴가들이 '왕들의 골짜기'를 떠나갈 때에 한 구덩이 묘에서 '투탕카멘'이라는 알 수 없는 이름이 적힌 자기컵과 나무 상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7년 간 그 어떤 확증도 없이 땅을 파내려 간 끝에, 1922년, 드디어 카터는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해내기에 이른다. 여기까지가, 일반인들도 익히 알고 있을 법한 '신화의 창조기'이다. 그러나 <투탕카멘의 무덤>은 역경 끝에 마침내 결실을 거둬내게 되었다는 '인간 승리'의 드라마가 아니라, 오랜 세월을 유물 발굴에 힘써온 한 고고학자의 세세하고 관조적인 발굴기이며, 이 책의 '진정한 핵심'은 바로 이 '발굴의 순간' 이후부터 시작된다. 좁다란 무덤 안과 박물관, 실험실 안에 이후 10년 동안 지루하게 이어진 복원과 수습의 과정에 대해 카터는 가감없이 차근차근한 어조로 적어내리고 있으며, '현장 정보를 놓치는 것은 역사적 범죄 행위'라 철썩같이 믿고 있는 카터가 이 때 겪은 여러 사건들 - 꼬박 7주나 걸린 대기실 유물을 빼내는 작업에서부터 보존제와 방부제, 포장재의 구입, 그리고 유물조각의 '퍼즐 맞추기'에 이르기까지 - 이야말로 유물의 발굴이 과연 얼마나 대단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작업인지를, 그리고 결국 고고학자의 일이란 모험적인 정신만큼 연구하는 정신도 겸비되어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연구상의 문제에서 벗어나 있는 여러 사건들, 무덤 발굴 이후 벌어진 언론의 과다경쟁과 무덤을 둘러싼 여러 사기극, 그리고 도굴의 위험 등에 대해서도 카터는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투탕카멘의 이름을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까지도 널리 퍼뜨리게 된 '주원인'이자 카터가 극도로 혐오하며 해명하고자 애썼던 '파라오의 저주'와 관련된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그는 일목요연하게 상황을 정리하여 자칫 선정주의적인 방향으로 이 고고학적 사건이 비화되는 일을 강력히 막아내려 한 노력이 엿보이고 있다. 이 모든 과정 - 그야말로 '사건 전체'를 포괄적으로 총합해내는 과감함과 세밀함 - 을 통해 그의 저서는 투탕카멘 무덤의 발굴 그 자체에 대한 모든 정황적 분위기를 연출해내 그 어느 '파라오 관련' 서적에서도 맛볼 수 없는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하는 데 성공하고 있으며, 또한 20세기 초반의 유물발굴에 대한 사료로서도 충분히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뻔한 인간 승리극'도, 지리한 고고학적 연대기도 아닌 이 놀랍고도 독특한 서적은 기이하게도 국내에서 전혀 번역된 일이 없는 중요 서적의 출간이라는 의미도 함께 포함하고 있어, 평소 고고학에 관심이 있었던 독자들이나 단순히 '투탕카멘'과 얽힌 여러 비화들을 통해 흥미를 갖게 된 독자들은 물론, 이 책의 번역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매니아'층에게 모두 큰 선물이 될 수 있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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