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계를 제패한 ‘동성애 담론’, 다시 무대에 서다
비평계를 제패한 ‘동성애 담론’, 다시 무대에 서다
  • 이문원
  • 승인 2004.05.04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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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서안화차"
하리수 '사태'를 제쳐 놓고서라도, 최근 들어 부쩍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고, 또 각종 문화예술 장르에서 '동성애'를 주제로 한 아이템들을 꾸준히 내놓아 이목을 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듯 급작스런 '동성애 열풍' - 구미에서 수십년에 걸쳐 차근히 밟아온 이들의 '인권'과 '사회적 시선'의 정리에 비해, 한국은 불과 10여전 전까지만 해도 동성애 자체를 완강히 부정했었다 - 의 중심에는 정작 동성애자에 대한 관심과 이해보다 다소 선정주의적인 호기심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부정하기 힘든데, 이렇듯 혼탁스런 '동성애 아이템'에 진지하고 차분하며 섬세한 시각을 들어대어 탐구하고 있는 연극이 마침내 등장했다. 이번에 공연되는 <서안화차>는 지난 2003년, 국내 연극부문 9개상을 수상하는 등 평단으로부터 만장일치의 호평을 얻어낸 수작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중국 서안의 여산릉 여행길에 오른 한 남성이 진시황의 지하 궁전에 갇혀 최후를 맞이한 인부들과 노예들을 생각하며 자신의 과거, 즉 오래 전부터 꾸준히 연모해오며, 또한 꾸준히 무시당해온 또다른 남성과의 추억을 되새겨본다는 이야기로, 단순히 '동성애'라는 틀 안에서 사고하기 보다는, 인간과 인간 간의 교류, 이해, 감정소통의 차원으로서 남성에 대한 남성의 사랑을 다루고 있는 <서안화차>. 한태숙의 섬세하면서도 내면적인 에너지가 물씬 배어나오는 연출과 박지일의 뚜렷하고 명확한 연기와 더불어 동아연극상 무대미술상을 수상한 바 있는 조각가 임옥상의 진시황릉이 재현, 타악그룹 공명의 마치 참선음악을 연상케하는 청아한 음악 등, 세부적인 요소들까지 모두 이목을 끄는 <서안화차>는, 그간 단편적인 발성, 도발적인 상상만으로 엮어져 정작 동성애자들에 대한 이해보다는 동성애를 하나의 '발칙한 아이템'으로서만 사용해온 수많은 '동성애극'에 대해 '대안'으로서 떠오를 수 있을 법한, 진실되고 정직하며 성실한 무대가 될 것이다. (장소: 설치극장 정미소, 일시: 2004.05.1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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