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닉시 미 의회조사국(CRS) 선임연구원은 최근 “김 위원장이 당뇨 합병증과 신장·간장 질환 등을 앓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미 클레어몬트대 케크국제전략연구센터가 주관한 세미나 자리에서였다. 닉시 연구원은 그 근거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와 2006년 중국 방문 기간 중에 촬영된 김 위원장의 사진을 비교했다. 6년 전만 해도 생기 있는 얼굴이었던 김 위원장은 올해 64세의 나이임을 감안해도 비정상적인 속도로 늙어 있었다.
이에 닉시 연구원은 “김 위원장이 75세 이전에 사망할 가능성이 높으며, 그때까지 김 위원장의 아들들이 권력을 승계 받기 위한 훈련을 받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거나 북한 노동당 지도부가 지도자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연령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 분석했다.
김정일 집권 길어야 5년
이 같은 지적은 닉시 연구원이 처음은 아니다. 미 민간연구기관인 켄 고스 CNA연구소 국장도 지난달 21일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전화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의 신장과 간이 좋지 않고 당뇨와 고혈압 등 지병이 있다”며 “70세를 넘기기 힘들다고 보는데 후계자 지명이 많이 늦은 상태”라고 진단한 바 있다.
그밖에도 영국 시사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4일 ‘식량 부족으로 탈북자가 늘면서 통제력을 상실하고 김 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되면 내년쯤 북한 정권이 붕괴할 수 있다’는 설을 내놨다. 지난 7월 미사일 발사를 전후해서는 40일씩이나 행적을 감춰 건강 이상설이 증폭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3남3녀를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 영화배우 출신의 故성혜림 씨와 사이에 태어난 장남 김정남 씨(35세)는 대남정보수집 총책임자로 있으면서 한때 유력한 후계자로 지목받아왔으나 모친 성 씨가 여러 차례 망명을 시도하면서 김 위원장의 눈 밖에 나 사실상 후계에서 밀려난 상태다.
따라서 관심대상으로 떠오르는 인물들은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출신인 세 번째 부인 故고영희 씨와 사이에 태어난 차남 김정철 씨(25세)와 삼남 김정운 씨(22세). 김정철 씨는 북한 군부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건강이 좋지 않고, 김정운 씨는 김 위원장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지만 나이가 너무 어리다. 게다가 김 위원장의 후계자를 논의하는 일에 대해서는 엄격한 금지령이 내려져 북한 지도부 내부의 움직임을 감지하기도 어렵다. 후계자 논의 금지령은 권위주의 체제에서 지도자의 건강에 이상이 있을 때 주로 나타나는 조짐이다.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 부장은 2004년까지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지도자로서, 당의 2인자로 군림했다. 황장엽 국가정보원 통일정책연구소 이사장은 “김 위원장의 아들 셋보다 장성택이 더 똑똑하다”고 말할 정도였으나, 황 이사장의 해당 발언 직후 숙청되고 말았다. 당시 장 부장뿐 아니라 권력 요직에 있던 장 부장의 측근들도 함께 대부분 해임당하거나 좌천됐기 때문에 김 위원장 아들을 지지하는 일파와 권력투쟁에서 진 결과라고 보는 분석이 우세하다.
숙청됐던 장 부장이 복권된 것은 올 들어서다. 설날 행사 때 김 위원장을 수행하며 모습을 드러낸 것. 그러나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이라는 직책은 당권에서 먼 자리이고, 지난 9월 평양 모란봉 구역 인민군교예극장 앞 네거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군부의 제거 음모가 아니냐는 의혹도 일었다. 그러나 이 같은 견제에도 미국이나 중국 등 외부는 ‘개방파’인 장 부장이 김 위원장의 뒤를 잇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북 군부, 장성택 ‘불가’
한편 ‘국민의 정부’ 때 통일부 장관을 지낸 박재규 경남대 총장은 지난 11일 “김 위원장의 건강은 이상이 없고 단지 신장은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해 건강 이상설과 조기 권력 이양설을 부인했다. 여러 차례 방북한 바 있는 박 총장은 지난 10월에도 윤이상음악회 참석차 평양에 다녀왔다. 권력 이양에 대해서는 “김 위원장한테 문제가 생기면 아들을 올려놓고 집단지도체제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지난 1994년에도 김영삼 전 대통령과 故김일성 북한주석의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되다 김 주석의 유고로 무산되고 남북관계가 경색된 바 있다. 이래저래 김 위원장의 건강악화설은 정가의 관심사로 남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