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명은 전효숙 전 내정자가 지난달 27일 사퇴한 지 무려 24일 만에 이뤄진 것. 청와대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 전 내정자의 경우 걸림돌이 된 근본적인 이유가 이념 성향에 있었던 만큼 이 내정자의 이념 성향에 먼저 관심이 모인다.
이 내정자는 스스로의 이념 성향에 대해 “어떤 부분에서는 진보적일 수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오히려 보수적일 수 있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2004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 당시 “국가의 형벌권이 한 발 양보해 양심의 자유가 존중받고 보장받아야 한다”는 진보적인 의견을 냈지만, 지난 6월 한국철도공사가 전국철도노조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는 “노조는 피해의 60%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보수적인 판결을 냈다.
원칙 충실한 중도보수
새만금 판결 당시에는 “정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환경친화적인 것인지를 꾸준히 검토해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 환경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가 하면, 1997년에는 학생운동 경력 때문에 면접에서 임용 거부를 당한 사법연수원생들이 낸 소송에서는 “재량권”이라며 기각해 재야 민주화진영의 반발을 산 적도 있다.
그밖에 매향리 사격장 소음피해 사건에서도 주민 편을 들었고 여성도 종중원으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진보적인 판단은 대부분 의견에 그쳤을 뿐이고 결정권을 쥔 판결에서는 보수이념에 입각하거나 원리원칙에 충실한 판결을 내 중도보수 성향으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난 8월에도 전 전 내정자와 소장 자리를 두고 경합을 벌였던 이 내정자는 “법 이론에 탁월하고 실무능력도 인정받고 있어 국회 임명동의뿐 아니라 상처받은 헌재의 권위도 다시 세우기를 기대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법조계 내부에서는 평판이 좋다.
청와대는 26일쯤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그렇다면 ‘전효숙 반대’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동정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유기준 한나라당 대변인은 지난 22일 “이 후보자는 헌재제도를 연구한 헌재 전문가이며, 1989년 헌재 출범시 헌법재판소법을 제정하는 데 관여했을 정도로 헌재와 인연이 깊은 분”이라며 “새로 임명되는 헌재소장이 무너진 헌재의 위상을 되살리고 흔들리는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바로잡기를 기대”한다며 대체로 긍정적인 의견을 냈다.
앞서 이상열 민주당 대변인 역시 지난 21일 “신임지명자가 헌재에 주어진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헌법재판소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자질과 능력이 있는지 청문회를 통해 철저히 검증하겠다”고만 말해 앞으로 이 내정자에 대한 ‘코드 논란’은 잠잠할 것으로 점쳐진다.
야당이 청문회에서 빌미를 잡힐 만한 사안으로 꼽히는 것이 없지는 않다. 여야가 극한대립을 벌이는 사립학교법 헌법소원에서 이 내정자가 고문변호사로 활동하는 ‘법무법인 태평양’이 정부쪽 대리인을 맡고 있다. 이에 이 내정자는 “그 사건은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의뢰돼 있던 것”이라 답변해 문제가 크게 불거질 소지는 없는 편이다.
무난히 임명될 듯
무엇보다 4개월째로 접어드는 헌재소장 공백사태에 대한 부담이 누적돼 있다. 이를 둘러싼 논란과 정쟁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이 내정자의 신변에 무리가 없으면 무난히 임명동의 절차를 거칠 것으로 예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