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를 건너온 중산계급의 ‘분노’
반세기를 건너온 중산계급의 ‘분노’
  • 이문원
  • 승인 2004.05.1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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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존 오스본이 1956년에 초연시킨 희곡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는, 아무래도 일반대중들에겐 토니 리차드슨 감독, 리차드 버튼 주연의 1959년작 영화 버전으로 더 익숙할 듯 싶다. 존 오스본 역시 리차드슨이 1963년에 발표한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톰 존스>의 각본가로 익숙한 이름이어서 얼핏 '희곡작가'로서의 그의 이미지는 '시간의 때'를 입어 어느 정도 퇴색한 감이 없지 않은데, 그럼에도 그가 써낸 희곡들은 반세기라는 시간의 흐름에도 여전히 격렬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오며, 그의 대표작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는 과연 '앵그리영맨' 세대의 시발점이었으리 만치 비수를 꽂는 날카로우면서도 절대 흥분하지 않는 냉정함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20세기 최고의 희곡들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이번에 국민 레파토리 창단 준비공연으로 기획된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는 이렇듯 에너제틱하면서도 침착한 면모를 잃지 않는 오스본 세계에 대한 예찬과도 같은 공연이다. 지난 5년 간 국민대학교에서 스타니슬라브스키식 연기훈련방법으로 한국학생들을 지도해 온 러시아 '기티즈' 연극원의 알렉세이 드미도프 교수가 직접 연출하여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번 공연은, 현재 '가장 혹독한 청춘'을 보내고 있는 한국의 20대 젊은이들에게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 이성의 재장전을 가져올 듯 싶은데, 현실에 대해 끝없이 고통받으면서도 묘하게 '체계적인 반항의식'을 키우지 못하고 일탈적인 방향으로만 자신들의 '분노'를 표출시킬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지금'의 한국 젊은이들이기에 한없이 현실적이면서도 한없이 사색적이고, 자기탐구의 영역 안에 갇혀 있는 듯하면서도 대중성을 잃지 않는 오스본의 세계가 그들의 잠재적 무의식 속에서 강하게 작용하리라는 예상은 그닥 낯선 얘기가 아닐 듯 싶기도 하다. 단순히 '세계적 걸작 희곡'의 한국 공연이라는 점이나 외국인 연출가의 무대라는 점을 제외하고서라도, 이번 무대는 '신생' 국민대학교 연극영화과의 졸업생들이 과연 어떤 방향성을 지닌 이들인가를 확인할 수 있는 무대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와 호기심을 돋우는 공연이 되고 있다. (장소: 대학로 세우아트센터, 일시: 2004.05.1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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