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신용불량자들을 상대로 “일본에 취업하면 한 달에 1천만원은 벌 수 있다”고 속여 국내 여성들을 일본, 홍콩의 유흥가로 송출한 조직이 경찰에 붙잡혔다. 약 30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국내 심야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경기침체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자 일부 여성들이 해외 진출 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일어난 이번 사건은 또 다른 사회문제로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현재 일본 경찰이 추산하고 있는 불법체류 한국인은 약 20여만명. 이중 대부분이 범죄·매춘 종사자들로 파악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환율부터가 우리나라 10배인 나라죠…. 정말 한국에 빚 감당 못해서 일본 가서 눈 딱 감고 3개월만 일하시면 정말 허덕이며 살아가는 일은 없을 거예요. 더 궁금하신 부분은 전화로 상담해주시거나 멜 보내면 가게 이름 위치 등 시스템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인터넷 사이트서 유혹 성행
인터넷 구직 N사이트에 올라온 일본 취업에 관한 내용이다. N사이트는 주로 유흥업소 종사자들을 지칭하는 ‘나가요 걸’들을 위한 구직사이트.
하지만 최근에는 일부 여성 신용불량자들이 쉽게, 단시간에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쉽게 빠져들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과는 의류매장을 차려놓고 실제로는 여성 신용불량자들을 모집해 일본 등 해외 유흥업소에 넘긴 김모(39·남)씨 등 6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 ‘신용불량 여성도 일본 취업으로 한 달에 1천만원은 쉽게 벌 수 있다’라는 광고를 낸 뒤 이를 보고 찾아온 여성 신용불량자들을 일본과 홍콩 등의 유흥업소에 불법으로 송출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11월부터 이들이 외국으로 송출한 국내 여성 신용불량자들은 약 15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이들의 불법 송출이 드러나게 된 것은 이모(27·여)씨의 신고 때문이었다. 이씨는 지난해 인터넷 구직 사이트를 통해 일본 송출을 알게 됐다. ‘자세한 내용은 방문 상담’이라는 내용을 보고 찾은 곳이 바로 불법 송출업자들이 차려놓은 신사동 소제 옷가게였다. 김씨는 이씨에게 “한 달에 최하 800만원~1천만원은 벌 수 있다”라며 “술집에 취업하는 것이긴 하지만 단지 술시중만 들어주면 된다. 2차 같은 것은 없다”는 말로 그녀를 유혹했다.
당시 이씨가 지고 있던 카드빚은 약 500만원. 그러나 이씨의 집에서 이를 갚아줄 능력이나 형편은 아니었고 그녀도 혼자 힘으로 이를 해결해보려 했던 것이다. 또한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 몇몇이 가게를 찾아 상담을 하고 있어 이씨는 몇 개월만 고생해보기로 작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씨가 일본에 가겠다는 마음을 굳히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들은 우선 이씨에게 “옷을 몇 벌 사야 된다”라며 접대부 복장, 일명 ‘나가요 복장’의 옷 3~4벌을 400만원에 떠맡기다시피 했다. “당장 돈이 없다”는 이씨의 말에 이들은 “일해서 갚으면 된다”고 말했다. 한 달에 천만원을 번다는 말에 솔깃했던 이씨는 ‘어차피 들어가야 할 돈이라면’ 하는 심정으로 옷을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일본에서 만난 같은 처지의 여성들도 이씨와 똑같이 김씨 등으로부터 옷을 강매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 이씨가 구매한 옷의 대금은 일본의 한 술집에서 결재했다. 이들은 이를 근거로 이씨와 정식 채권계약서까지 작성했다. 즉 이들이 이씨에게 강매한 옷값은 그녀를 일본에 송출시키는 대가 중 일부였던 셈이다. 대부분 신용불량자 신분인 여성들이 당장 돈을 마련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한 불법 송출업자들이 작성한 채권계약서는 고리대금과 마찬가지였다. 즉 제 날짜에 옷값을 갚지 못하면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는 것. 결국 국내에서 돈 때문에 신용불량이 되고 이를 갚기 위해 해외 유흥업소 취업이라는 막바지 선택을 한 여성들은 카드빚에 다시 사채이자까지 부담해야하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 셈이었다. 김씨 등은 해외 유흥업소에 송출된 여성들이 탈출, 귀국할 경우 그녀들이 작성했던 채권계약서를 빌미로 국내에서 채권추심을 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들은 이번에 같이 붙잡힌 한모(39·A여행사 대표)씨 등 3명과 짜고 일본 비자를 발급 받는 수법을 썼다. 한씨가 운영하는 여행사가 일본 비자발급 대행 인증여행사로 지정 돼 간단한 서류심사만으로 비자가 발급된다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한씨는 또 부적격자들에게는 위조된 재직증명서 등을 이용해 비자를 발급받는 등 불법송출업자들을 도와온 것으로 드러났다.
여권 뺏기고 2차 강요당해
이처럼 복잡한 단계를 거쳐 일본에 도착한 이씨가 가게 된 곳은 도쿄 아카사카의 한 술집, 소위 ‘구라부(CLUB)’였다. ‘눈 딱 감고 몇 개월만 고생해서 한국으로 돌아가 떳떳이 살아보자’는 이씨의 희망은 나리타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산산이 부서졌다.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업소 측에 여권을 빼앗겨 발목을 잡혔다. 또한 한 달에 1천만원은 고사하고 숙식비와 송출비용 이자 갚아나가기도 벅찼다. 여기에 업소에서는 이씨에게 계속 2차를 강요하는 등 한국에서 듣던 것과 달리 열악한 상황이 연출됐다. ‘돈을 벌기 위해’ 취업한 것이 아니라 ‘돈에 팔려 나온’ 것이나 다름없는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불법 송출업자들의 유혹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씨는 업주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가까스로 업소를 탈출, 일본 송출 2주 만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온 이씨에게 소개비조로 빌려 쓴 옷값에 대한 송출업자들의 추심이 시작됐다. 결국 그녀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게 됐고 대규모 불법 송출업자들이 경찰에 붙잡히게 된 것이다. 경찰조사결과 이들이 일본, 홍콩 등의 유흥업소에 불법 취업시킨 여성들은 3개월 사이에 무려 15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는 국내 유흥업소 종사자는 물론 신용불량 상태인 간호사나 백화점 직원 등도 포함돼 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들은 또 여성 신용불량자들을 모집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지급하며 모집책을 동원하는 등 조직적인 면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직업소개소 대신 서울 신사동에 D 의류매장을 차려놓고 이곳에서 여성들의 면접을 보는 것은 물론 ‘나가요 복장’을 강매하는 등 치밀하게 조직을 가동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주로 빚에 쪼들려 막바지에 몰린 여성신용불량자들을 대상으로 범죄행각을 벌였으며 취업여성들을 상대로 약 5억7천만원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와 같은 수법으로 일본으로 송출됐다 탈출한 백화점 직원이었던 김모(25)씨는 옷과 장신구 등을 사느라 카드를 긁어대다 지난해 신용불량자가 됐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일본 가와사키로 송출됐다. 김씨는 한국인 마마(마담)가 운영하는 술집에 취직한 케이스.
하지만 외국에선 오히려 같은 한국사람이 더 무서웠다. 당초 이들이 강조했던 1천만원 월급은 많아야 150~200만원선이었고 한국인 마담은 김씨에게 2차를 강요했다. 결국 김씨는 6개월 만에 빚이 1천만원으로 늘어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국내에서 유흥업에 종사하던 나가요 걸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경기 불황으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수입이 예전 같지 않자 일본 취업을 하기로 작정한 최모(30)씨도 3개월간의 일본 생활에서 오히려 빚만 더 늘어난 채 귀국, 송출업자들의 추심에 시달리는 신세가 됐다. 최씨는 “일본가면 떼돈 번다. 이런 거 다 거짓말이에요”라며 “거긴 정말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전했다. 최씨는 일본 취업여성들은 주로 도쿄 아카사카, 오사카, 나고야 등 일본 전역의 클럽으로 취업하게 되며 일본 도착과 동시에 대부분 여권을 업주에게 빼앗긴다고 말한다.
한동안 국내 외국인 불법 취업 노동자들이 당하던 일을 우리나라 여성들이 일본에서 겪고 있는 셈이다. 결국 여권을 빼앗긴 여성들은 싫어도 술집에서 일을 하게 되고 그나마 2차를 나가지 않으면 현지에서 생활하기도 힘든 형편이라는 것. 결국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 일본까지 진출, 술집에 취업한 여성들은 빚만 늘어나는 것은 물론 몸까지 버리고 귀국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 일본 취업을 다녀온 여성들의 말이다.
하지만 경찰에 붙잡힌 김씨는 “일본에서 돈을 벌었다는 사람도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그 일을 했겠느냐”고 주장했다. 그는 또 경찰조사에서 “우리 매장이나 인건비를 고려할 때 옷값 300~400만원은 결코 비싸지 않다고 생각한다. 압구정동에서는 더 비싸다”며 “우리도 이익을 남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이 판매한 일명 ‘나가요 복장’은 보통 7~8만원선. 또한 이들이 여성들에게 강매한 옷은 막상 일본에서는 사용하지도 않았다고 피해여성들은 말하고 있다.
3개월 새 150여명 피해 입어
경찰은 이들 이외에도 신용불량자들이나 악성 사채를 이용한 ‘나가요 걸’들을 대상으로 한 불법 송출조직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