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킬 빌 Vol. 2
[영화리뷰] 킬 빌 Vol. 2
  • 이문원
  • 승인 2004.05.1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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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의 단점을 ‘극복해낸’ 속편, 전편과 '다른' 속편
하나의 각본으로 같은 시기에 촬영되어 전편으로부터 6개월만에 등장한 속편이 전편과 '정반대'의 성격으로 다가오는 일이 과연 가능한 걸까? 그렇다면 그 영화는 '속편'이라 불리워지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동일 인물과 상황으로 만들어진 '다른 영화'라 불러야 할까. 쿠엔틴 타란티노가 '헐리우드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영화'라는 평가를 들으며 화제 속에 발표한 영화 "킬 빌 Vol. 1"으로부터 정확히 6개월만에 그 모습을 드러낸 속편 "킬 빌 Vol. 2"는, 바로 이런 의문들을 일괄적으로 쏟아내게 하고, 또 그 '해답'을 알려주고 있는 놀랍고 기묘한 작품이다. "킬 빌 Vol. 2"가 시작되면서 등장하는 우마 써먼의 독백은 분명 전편에 이은 '옛 장르 영화' 개그의 일종처럼 여겨진다. 어딘지 촌스러우면서도 우스꽝스럽고, 이제는 완전히 잊혀진 '관습'을 다시 끄집어내 간단히 관객을 웃겨버리는 유치한 공식. 그러나 전편의 관람을 그토록 거북살스럽게 만들었던 이 공식이 속편에서도 되풀이되리라는 관객들의 예상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말끔히 지워지게 된다. "킬 빌 Vol. 2"는 전편과 다른 영화이다. 같은 인물, 전편에서 미리 '알려주었던' 플롯이 진행되고는 있지만, 이 속편은 전편의 '방향성'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으며, 마치 다른 연출가가 만들어낸 듯한 분위기까지 조성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장르에 대한 '죠크'가 영화의 '주제'가 되어버렸던 전편, 장르에 대한 냉소적 시선으로 거부감 일으켰던 전편에 비해, 속편은 '쟝르의 정신'을 정확히 이해하고 추적하는 성실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웃음으로 장르 정신을 비웃는 것이 아닌, 유머가 곁들여진 열렬한 장르 예찬으로 보여지고 있는 것이다. "킬 빌 Vol. 2"는 전편에 비해 느리고, 더디며, 차분하게 진행된다. 전편의 '청엽루 대혈투'와 같은 광적인 폭력장면도 등장하지 않고, 미친 듯한 스피드와 광기로 이끌어진 전편에 비해, 시종일관 멜랑꼴리한 무드를 유지시키며 차근히 플롯을 밟아나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속편은 '인물'에 대해, '인물'이 쏟아내는 대사와 인물들 간에 벌어지는 '대화'에 대해, '관계'에 대해 가능한한 정직하고 성실한 태도로 임하고 있다. 전편의 주제가 '광기'였다면, 이 속편은 '회의'로부터 시작된다. 폭력에 대한 회의, 광기에 대한 회의, 그리고 어찌보면, '전편'에 대한 회의. 이토록 독창적인 '속편의 비젼'은 지금껏 수많은 프랜차이즈의 범람 속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것으로서, 그 자체로 '전혀 다른' 영화일 뿐 아니라, 전편과 맞물린 '하나의 영화'로 인식했을 때에도 전편이 지녔던 이미지를 쇄신시키고 마치 전혀 다른 영화처럼 탈바꿈시키는 매력을 보유하고 있다. "킬 빌 Vol. 2"는 아름다운 영화이며, 전편의 문제점을 정확히 헤집고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걸출한 영화악동에게서 7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기다렸음직한 '성숙한 타란티노'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영화는, 단순히 '이어지는 이야기'로서 속편을 만든다는 것은 모든 예술쟝르에 있어서 '상업적 타락'에 불과한 것이며, 결국 속편은 '같은 인물과 상황으로 전혀 다른 성격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 때 등장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원칙론'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쯤되면, 많은 해결점이 풀려나감과 동시에, 또다른 의문이 일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과연 타란티노는 '이 모든 것'을 미리 의도했던 것인가. 그는 그처럼 영악하고 무시무시한 아티스트였가. 그는 관객과 비평가들을 놀리기 위해 '한 작품'을 아예 망쳐버릴 정도로 배짱있는 인물이었나. 그리고, 그는 다음과 과연 '어떤 장난'으로 또다시 관객과 비평가들을 놀리고, 조소하며, 결국 모두를 흥분시킬 것인가.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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