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접수한 부나비들…
거리를 접수한 부나비들…
  • 문충용
  • 승인 2007.01.08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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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대한민국은 지금 ‘삐끼공화국’

한동안 잠잠했던 ‘호객꾼(일명 삐끼)’이 활개를 치고 있다. 가히 대한민국은 ‘삐끼의 천국’이라 불릴 만큼 최근 삐끼들이 없는 곳은 없다. 또한 이들은 불경기만큼이나 더욱 극성스러워져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정도다.

삐끼들의 영업형태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나이트크럽 삐끼는 물론 지나는 행인을 유혹해 룸살롱으로, 노래방으로 이끄는가 하면 취객들만 골라 술값을 바가지 씌우는 삐끼들마저 등장하고 있다.

서울 종로 1번지부터, 강남은 물론 심지어 한적한 국도변까지 급격히 번져나가고 있는 각종 삐끼들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자.

지난 연말 회사원 김모(34·남)씨는 직장 동료들과 조촐한 송년회 자리를 가졌다. 김씨와 회사동료 3명은 서울 화양리 먹자골목에서 식사와 소주를 한잔하고 이어 노래방을 찾아 자리를 옮기는 중이었다.

술값 바가지 ‘삐끼 영업’ 성행

거리에서 노래방을 찾던 김씨 일행에게 한 남자가 말을 건네며 접근했다. 다름 아닌 삐끼 최모(30·남)씨였다. 자신들에게 접근하던 최씨를 애써 외면한 채 노래방을 찾던 김씨 일행은 그의 “젊은 대학생들이 도우미로 나오는 노래방이 있다. 가볍게 맥주도 한잔 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져 최씨를 따라 나서기로 했다.

김씨 일행은 이끈 최씨가 안내한 곳은 도로변의 한 승합차 앞이었다. 젊은 대학생 도우미를 찾아 나선 김씨 일행은 이내 최씨에게 연유를 물었고 여기서 최씨와 김씨 일행의 본격적인 흥정이 시작됐다. 최씨가 안내하던 업소가 화양리 주변이 아닌 강남에 있었던 것이다.

결국 “양주 작은 거 2병에 맥주 10병, 아가씨들과의 소위 2차까지 합쳐 60만원”에 결정을 내린 김씨 일행은 최씨가 권하는 승합차에 올라타고 강남으로 향했다. 김씨 일행이 출발하기 전 최씨는 강남의 술집에 전화를 해 손님이 출발하는 것을 알리기도 했다.

김씨 일행이 도착한 곳은 노래방이 아닌 단란주점 형식의 술집이었다.

하지만 김씨 일행은 이미 삐끼 최씨와 계약(?)이 성사된지라 곧장 룸으로 향했다. 아무 생각 없이 신나게 노래 부르고 술 마시고 송년회를 즐기던 김씨 일행은 적당히 취기가 올라오자 술자리를 파하기로 하고 계산서를 가져올 것을 요구했다. 김씨 일행에게는 여기까지가 ‘봄날’이었다.

아가씨들과 2차를 나갈 생각에 들떠있던 김씨 일행에게 전달된 계산서는 술값만 210만원이 적혀 있었던 것. 어느새 룸 안에는 빈 양주병이 5~6개 뒹굴고 있었고 안주 접시도 적지 않게 놓여 있었다. 이내 김씨와 술집 웨이터 간에 실랑이가 시작됐다.

애초 ‘60만원’이라던 삐끼 최씨와의 계약(?)은 오간 데 없이 김씨 일행은 당장 200만원이 넘는 술값을 내야만 술집을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었다. 더욱이 “삐끼를 불러오라”며 한창 실랑이를 벌이던 김씨 일행 앞에 나타난 술집 사장이란 사람은 온 몸에 문신이 새겨진 웃통을 벗어부치고 이들에게 술값을 계산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결국 김씨는 회사의 법인카드로 술값 210만원과 아가씨들의 팁까지 300여만원에 달하는 돈을 계산하고 나서야 술집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냥 조촐하게 소주 한잔 하고 노래방이나 찾으려던 김씨 일행은 불과 몇 시간 만에 한달 월급과 맞먹는 돈을 술값으로 지불해버린 것이다.

결국 김씨는 며칠 후 경찰서를 찾아가 전후사정을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미 그 술집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유흥주점 등을 단기로 임대해 삐끼를 고용해서 취객들을 상대로 바가지 술값을 뜯어온 사기단한테 걸려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지난 6일 경기도 수원남부경찰서는 술 취한 손님들에게 가짜 양주를 판 혐의(사기 등)로 고모(47·자영업)씨 등 5명을 긴급체포하고 양모(33·여)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고씨 등은 지난해 12월 27일 새벽 수원시 팔달구 모 유흥주점에서 김모(32)씨 등 3명에게 고급 양주와 값싼 양주를 섞어 만든 술을 팔고 100만원을 받는 등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가짜양주를 팔아 1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들은 또 술값 지불을 거부하는 손님을 폭행하고 신용카드를 빼앗기도 한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드러났다. 김씨 일행이 지난 연말 당한 술값 바가지 사기사건과 한 치도 틀리지 않은 수법을 쓴 것이다.

삐끼들의 폐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나이트클럽과 지방 번화가 거리를 중심으로 ‘미모의 삐끼’들이 등장해 신종 호객행위를 벌이며 남성들을 골탕 먹이고 있다.

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의 미모의 여성들로 구성된 이들은 삐끼행위도 단체로 한다. 나이트클럽에서 나오는 취객들이나 번화한 거리 주변을 지나는 행인들을 대상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들의 최종 종착지 역시 강남 인근의 카페나 유흥주점이다.

이들 ‘미모의 여성 삐끼’들은 강남은 물론 경기도 일산, 고양, 양평, 양수리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출몰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혼자 운전하는 남성들이나 4~5명의 일행단위의 남성들에게 접근, ‘술 한잔 하자’며 은근히 유혹, 술 판매는 물론 2차까지 나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6일 건축업을 하는 박모(41·남)씨는 양평 근처 현장에서 일을 마치고 천호동 집으로 귀가하는 도중 양수리 부근 국도변의 한 신호등에서 손을 흔드는 미모의 여성을 발견, 차를 세웠다. 혼자 퇴근하는 길이라 말벗이라도 했음 하는 마음에서 자신의 차에 태운 여성이 바로 ‘삐끼’였던 것. 박씨는 처음에 “강남까지만 태워 달라”는 말에 속아 서울로 진입을 했고 이내 “술 한잔 하고 싶다”는 말에 결국은 2차까지 나가게 됐다. 박씨가 지불한 술값과 화대는 모두 150만원. 며칠 후 퇴근길에 그 여성이 이번엔 덕소 부근에서 다른 차에 올라타는 것을 본 박씨는 그제야 자신이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이처럼 삐끼를 가장해 남성들을 술집으로 유인, 영업행위를 하는 여성들은 모두 유흥업소 종사자들로 알려지고 있다.

미모의 여성을 조심하라

강남에서 유흥주점을 하다 최근 불경기로 전업을 한 최모(47?남)씨는 “최근 등장한 여성 삐끼들은 카페나 유흥주점과 계약을 맺고 리베이트를 받는다”며 “결국 이들을 따라나선 남성들이 2차까지 나갈 경우 바가지 술값은 물론 웬만한 직장인 한 달 월급에 해당하는 돈을 한방에 날리게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최근에는 이런 수법이 소문이 나자 여성들이 전화방까지 진출, 남성들에게 술값바가지를 씌우는 경우도 허다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불경기로 인해 문을 닫는 유흥업소들과 이로 인해 직장을 잃은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직접 ‘삐끼’로 나서 뭇 남성들을 유혹, 술값 바가지를 씌우는 신종 영업형태가 서울과 경기도 인근에서 최근 부쩍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변종 삐끼들에 의한 남성들의 피해만큼이나 서울 시내 번화가에서는 나이트클럽 삐끼들의 횡포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서울의 중심지인 종로 한 복판. 종로구 관철동은 매일 저녁이면 무려 100여명에 달하는 ‘삐끼떼’가 등장, 거리의 행인들을 유혹한다. 결국 지난 연말 관철동 일대 상가 번영회 회원 등 300여명이 경찰서과 종로구청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크고 작은 나이트클럽들이 밀집돼 있는 종로의 밤거리는 이들 나이트클럽에서 나온 삐끼들과 강남에서 원정온 삐끼들로 인해 적지 않은 피해를 겪고 있다고 인근 상가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이들 삐끼들은 호객행위에 지나지 않고 젊은 여성들의 앞을 가로막고 자기 업소를 찾을 것을 종용하거나 심지어는 손과 몸을 잡아 끌어당기면서 호객행위를 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욕설과 폭언, 야유 등을 해 지나는 행인들마저 불쾌감을 들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삐끼 행위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한 삐끼에게서 벗어나면 다른 삐끼가 달라붙는 식의 행위가 계속되다보니 종로 일대를 한번 통과하려면 최소한 3~4번은 삐끼들의 끈질긴 호객행위와 위협, 걸쭉한 욕설을 몇 마디 들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거리환경은 ‘젊음의 거리’로 대변되던 종로 관철동 일대가 ‘삐끼들의 천국’으로 변모하면서 점차 행인들이 줄어드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곳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이러한 삐끼들의 행패는 창피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상가 번영회에서 행정관서에 진정서를 내기에 이르렀던 것.

하지만 현재 삐끼, 즉 호객행위는 단속규정상 범칙금 부과가 전부이다. 따라서 삐끼 고용업소들이 삐끼들의 수를 줄이든가 과열경쟁을 자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상가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삐끼의 폐해는 비단 유흥가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인천국제공항까지 진출(?)한 삐끼들로 인해 국제공항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다. 바로 공항관리공사 측이 시행하고 있는 주차대행 서비스에 삐끼들이 달라붙은 것이다.

인천공항 홈페이지에는 이들 삐끼들로 인해 피해를 입은 항의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이들은 주차대행서비스를 빙자해 차량을 공항 인근 신도시 공터에 며칠씩 불법 주·정차 시켜 이용객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 최근에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는 삐끼들마저 등장, 피해가 속출하자 여행업협회가 회원사들에게 주의 공문을 보내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제 한국은 좁아?

경기불황을 틈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는 삐끼들. 대한민국은 서서히 ‘삐끼공화국’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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