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에 빛나는 동백 꽃봉오리
눈보라에 빛나는 동백 꽃봉오리
  • 정기상
  • 승인 2007.01.1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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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전 내내(07년 1월 7일) 눈이 내리고 있었다. 소한 추위라고 한다. 그동안 겨울답지 않은 날씨가 내심 마음에 편안하게 하였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른 사람에 비해 체중이 많이 나가는 나로서는 겨울은 여름에 비해 지내기 좋은 계절이었다. 그런데 달라진 것이다. 움츠려드는 겨울보다 여름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많아지게 되면 많은 것이 변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 아니라고 발버둥을 쳐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아무런 소용이 없음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포기할 수가 없다. 포가하게 되면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그것을 가로 막고 있었다.

삭풍에 흩날리는 눈보라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움츠려든다. 세월의 심술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집사람은 방방 떴다. 급기야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 집사람의 열정이 부럽다. 낭만을 추구하고 열정을 유지하고 있는 집사람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이것 좀 보세요.”

집사람의 손짓에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는 눈보라에 휩싸여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자연이 아니라면 그 누가 이렇게 멋진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단 말인가. 실내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나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한 것인가를 실감할 수 있다. 집사람이 가리키고 있는 곳은 눈보라를 맞고 있는 작은 동백나무였다.

“야! 곱다.”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하얀 눈을 맞고 있으면서도 당당한 모습을 잃지 않고 있었다. 눈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는 태도다. 하얀 눈이 쌓이고 있어도 조금도 움츠려들지 않고 있었다. 작지만 고운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꽃봉오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붉은 기운도 있다.

하얀 눈 사이로 빨간 열정을 내뿜고 있었다. 꽃봉오리가 보이고 있는 볼그레한 색깔은 꽃을 피워낼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한두 개도 아니다. 동백나무 전체에서 수많은 꽃봉오리들이 발그레하게 웃고 있었다. 삭풍이나 눈을 두려워하는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내 자신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동백 꽃봉오리의 모습에서 나약해진 나를 확인하게 된다. 세월을 탓하고 핑계거리만 찾고 있었던 못난 나를 반성하게 된다. 책임을 남에게 돌리려고만 한 부끄러운 모습에 얼굴을 들 수가 없다. 내 인생을 살아가면서 남의 탓으로 돌려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눈보라에 당당하게 피워내고 있는 꽃봉오리에게 많이 부끄러웠다. 하얀 눈에 꽃봉오리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春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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