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안’에 野 4당 보이콧···與도 ‘글쎄~’
결국 임기단축 꺼내드나?···한나라당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 전락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제안에 열린우리당은 결속력을 한층 다지는 듯한 분위기고, 야당은 의견 불일치를 보는 등 좌충우돌하는 형국이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을 철저히 무시하고 무대응 전략으로 일관했다. 지도부는 공식적 논의나 방송 토론 금지령도 지시했다. 이에 대해 몇몇 대권주자들과 일부 소장파 의원들이 반발하는 모습도 보였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도 치열한 공방 끝에 청와대 오찬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개헌이 성공을 하든 못하든 야당들은 허를 찔린 것과 마찬가지다. 노 대통령의 장사는 본전을 뽑은 것이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정계개편’ 논의가 뒤로 밀리고 개헌논의가 활발해 지면서 ‘언제 우리가 싸웠냐는 식’으로 일제히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물론 김근태 당 의장은 개헌과 통합신당 논의는 별개라고 했지만, 이미 정국이 개헌논의에 빠져든 이상 연계될 수밖에 없다. 또한 지금 당장은 탄력을 받지 못하지만, 결속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
정치고비를 맞이할 때마다 깜짝쇼식 승부수를 던지는 노무현 대통령. 그에 따른 후폭풍을 맞는 것은 누구이며 다음 카드는 무엇인지 안개속 정국으로 들어가 보자.
한나라당은 우왕좌왕하는 분위기다. 지도부를 비롯한 대다수 의원들은 노 대통령의 개헌 제의를 ‘대국민사기극’이라고 규정했지만 개헌 불씨는 사그라지지 않을 조짐이다.
좌충우돌 한나라당
지난 10일 한나라당 최고·중진 연석회의. 노 대통령을 향한 막말들이 쏟아졌다. 강재섭 대표는 “지금 노 대통령의 머릿속엔 국가 안위와 국민 경제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다”며 “가슴 속에도 고통 받는 민생에 대한 고뇌가 전혀 없다”고 비난했다.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도 “노 대통령이 하는 것을 보면 ‘하늘 아래 없는 대통령’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강두 중앙위의장 또한 “더 이상 파국이 되면 (국민들이) 폭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계동 의원은 노 대통령 측근인 안희정씨 등이 2005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정치지형변화와 국정운영’이라는 문건에 개헌 제의가 이미 포함돼 있다고 소개했다.
심재철 홍보기획본부장은 청와대 의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방송 출연을 자제해줄 것을 의원들에게 요청했다.
한나라당 빅3도 노 대통령의 개헌에 ‘원천적 반대’를 천명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참 나쁜 대통령이다”라고 밝혔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도 “개헌 문제에 대한 내 입장은 아무런 변함이 없다”며 ‘대선 전 논의 불가론’을 고수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도 “지금은 개헌을 추진할 때가 아니다. 노 대통령은 오직 일자리 하나라도 더 만드는데 전념하길 바란다”며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그러나 문제는 지도부와 소장파 사이의 심각한 시각차다.
고진화 의원은 “홍보 민방위 교육장도 아닌데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반발했다.
남경필 의원은 “무조건 반대하기 보다는 국민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희룡 의원도 “꼼수라고 해서 우리가 논의를 원천봉쇄하는 것은 결국 개헌 논의를 정략적으로 흐르게 만드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며 “개헌 논의는 대승적 차원에서 응해야 하며, 그것을 피할 방법도 없다”고 주장했다.
물론 대권주자들 마저 반대를 천명한 마당에 소장파의 이같은 발언들은 당론을 바꿀 정도의 화력을 갖고 있진 않지만 분란을 일으킬 소지는 충분하다.
노 통의 진짜 속내는?
정치권에선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의 배경을 ‘개헌 대 반개헌’의 구도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이 개헌 찬성세력과 반대세력으로 갈리면서 노 대통령은 주도권을 쥐고 범여권의 정계개편은 물론 대선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홍을 겪고 있는 여권이 ‘개헌’ 진영으로 단단히 결속할 수 있고 한나라당을 비롯한 ‘반개헌’ 진영은 분열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것.
청와대는 “정략적 의도가 없다”며 “노 대통령과 청와대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전했지만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물론 개헌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없다. 전체 의석수의 3분의 2를 넘어야 하지만 야 4당 모두가 반대를 천명했고 청와대 오찬도 불참했다.
또 여권 내에서도 찬성에서 유보적 입장으로 선회한 듯하다. 여권에선 노 대통령이 주도하는 개헌 제안을 대놓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
이상민 열린우리당 의원은 “국정 혼란은 대통령 단임제가 문제가 아니라 청와대와 여당의 지리멸렬 때문이었다”며 드러내놓고 개헌 자체를 반대했다.
천정배 의원도 “한나라당이 완강하게 반대하면 못하는 것”이라고 비관적 견해를 나타냈다. 통합신당파의 한 의원은 “개헌 찬반 논쟁이 여권 안에서 계속해서 이어지면 통합신당의 불씨 자체가 꺼지고,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 제3세력도 매몰될 수 있다”고 전했다.
개헌론이 여권을 단일 전선으로 묶어내기는커녕, 오히려 여권의 분열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대기류가 야권은 물론 여권까지 번지면서 노 대통령의 또 다른 카드가 점쳐지고 있다. 열린우리당 신당파의 한 핵심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개헌 발의 카드만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나라당이 찜찜해 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개헌 반대와 논의조차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노 대통령이 던질 다음 수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이미, ‘중·대선거구제 도입’, ‘대통령과 국회의원 권한 축소’, ‘대통령 사면권 제거’, ‘거국내각 구성’ 등 다양한 시나리오들이 퍼지고 있다.
김형주 의원은 “준비된 카드는 없지만 개헌 논쟁을 둘러싼 흐름 속에서 후속 카드는 얼마든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낮은 여론조사도 한 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 대통령은 여론 설득작업을 통해 ‘개헌’ 진영의 결속을 도모하려 했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다음 정권에서 개헌하자’는 여론이 압도적인 상황인 것이다.
청와대는 여론에 관계없이 개헌안은 발의될 것이라고 했지만 현재로서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여의치 않은 상황이 노 대통령의 다음 카드에 이목이 몰리는 이유다. 그러나 문제는 위에 열거한 카드가 먹히지 않을 때다. 그 경우 노 대통령은 ‘임기 단축’ 카드를 마지막으로 꺼내들 확률이 높아진다.
물론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조기 하야는 없다'고 피력했으나 ‘자기의 팔을 잘라 적의 목을 치는 전술’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
결국 개헌안 부결은 임기 단축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조기 대선으로 이어진다면 한나라당으로선 최악의 국면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
임기 단축 후 조기 대선?
헌법 제68조 2항엔 대통령 임기 단축 상황이 되면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명시돼 있다. 2달 안에 경선마저 끝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지금의 대권구도는 회오리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끝까지 무시하면 더욱 큰 구덩이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