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7일 통계청이 발표한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고용률은 전년 동월 대비 0.2% 하락했고, 23일 동 기관에서 발표된 ‘분기별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2분기 소득 5분위(하위 20%) 가계소득 증가율도 7.6% 감소한 반면 1분위(상위 20%)의 소득 증가율은 10.3%로 사상최대의 소득격차를 기록했다.
발표되는 경제지표마다 악화일로로 치닫자 급기야 통계청장을 교체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마치 맹수를 만나면 머리를 모래 속에 파묻는 타조처럼 이렇게 위기를 외면한다고 해서 과연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는가.
경기가 악화되니 그 여파는 소비시장에서 곧바로 나타나고 있는데 대한민국 최고 상권 중 하나인 서울 강남의 청담동 명품거리는 내수침체 장기화로 벌써 절반이 텅텅 빈 채 ‘공실(空室) 대란’이 벌어지고 있고, 서울의 주요 상권인 홍대 앞에도 어느덧 권리금 없는 가게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의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8월 소비자 심리지수는 생활물가 상승과 주가하락 등으로 지난달 대비 1.8포인트 떨어진 99.2로 나타났는데, 이는 지난해 3월 이후 17개월 만에 장기평균을 밑도는 수치로 현재 경기판단 지수와 향후 경기전망 지수 역시 모두 하락해 경기 둔화를 우려하는 시장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심각한 고용상황도 이런 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소로 꼽히고 있는데, 통계청 고용동향 조사에서도 나왔듯 지난달에는 5천명으로 뚝 떨어져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고용참사라 일컬어진 바 있으며 앞서 언급한 한국은행의 소비자동향조사에서도 취업기회전망 지수는 기준치인 100보다 훨씬 못 미치는 85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위기를 해결하고자 현 정부는 내년 예산을 금융위기 후 최대 규모인 470.5조원으로 편성했지만 벌써부터 세간에선 ‘세금만 쏟아 붓는다고 해결되느냐’는 회의적인 목소리만 흘러나오고 있는데,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이미 54조원의 일자리예산을 투입하고도 실업자 수는 7개월째 100만 명대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IMF 사태 당시 1999년 6월부터 2000년 3월까지 10개월 연속 100만 명을 기록한 바 있는 만큼 현 상황은 가히 외환위기 때에 버금가는 수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나 여전히 정부는 기존 경제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며 요지부동이다 보니 향후 경제전망도 불투명한 형국이다.
그동안 정부여당에선 취업자 증가폭이 감소된 것과 관련해 지난 5월에는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날씨와 생산가능 인구 감소를 이유로 꼽더니 심지어 지난 19일에는 장하성 정책실장이 올 연말이면 상황이 개선될 거라며 기다려달라고 했고 같은 날 여당의 유력 당권주자인 이해찬 의원은 급기야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성장잠재력이 저하된 탓이라며 이전 정권으로 책임을 돌렸다.
한 발 더 나아가 정부에선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이전처럼 견지하겠다며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주도성장의 전부가 아니라고 강변하고만 있는데, 현재의 경제난이 ‘남 탓’하고 ‘세금 투입’만으로 해결될 요량이었다면 누구라도 이미 해냈을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에 상황판까지 내걸며 국정 제1과제로 내걸었던 ‘일자리 문제’에 대한 결과가 지금 어떻게 됐는가. 경제팀 간 한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간 엇박자만 계속되며 해결의 기미는 전혀 보이질 않고 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이 현재의 고용악화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쏟아져도 최저임금이 소득주도성장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을 돌리면서 끝까지 기존의 정책기조를 유지하겠다고 옹고집을 부리고 있다.
물론 국민과 약속했던 공약사항을 지키겠다는 소신도 좋지만 악화되어가는 민생경제에도 기존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건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행태 아닌지 부디 재고해보았으면 좋겠다.
지도자로서 국가대사를 놓고 일종의 실험해본다는 태도로 대하는 건 분명 경솔한 게 분명하지만 국정을 다루는 이도 결국 사람이기에 뒤늦게라도 실수한 걸 깨달았다면 더 이상 자존심의 문제 같은 게 아닌 만큼 이제라도 오판을 인정하고 정상 궤도로 되돌리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올해 폐업하는 자영업자 수는 백만 명으로 역대 최고치에 달할 것이란 우울한 소식이 벌써부터 들려오고 있는데, 청와대와 정부는 그동안의 내부 혼선을 하루빨리 수습하고 벼랑 끝으로 내몰려 울부짖는 국민들의 소리에 제발 귀 기울여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