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진 대로 일해공원의 ‘일해’는 전 전 대통령의 아호. 5공 비리의 상징인 ‘일해재단’의 598억원 비자금 착복으로 더 유명해졌다. 문제가 된 공원은 당초 밀레니엄 사업으로 추진돼 ‘새천년생명의숲’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2004년 사업비 100억원을 들여 완공된 곳이다.
‘생명의숲’을 두고 합천군은 정식명칭을 바꾸겠다며 작년말 ‘일해공원’ ‘군민공원’ ‘죽죽공원’ ‘황강공원’의 네 후보를 놓고 설문조사를 벌였다. 설문조사 대상은 군민 전체가 아니라 군이 자의적으로 선정한 새마을지도자와 이·통장 등 1천364명이었다.
찬성은 302명
쿠데타로 집권한 ‘반란수괴’에다, 1980년 광주학살의 원죄가 있고, 2205억원이라는 추징금까지 짊어진 ‘범죄자’를 성역화하는 작업은 자연스럽게 반대에 부딪혔다. ‘새천년생명의숲 지키기 합천군민운동본부’ 등은 “이후 전 전 대통령 기념관과 기념사업이 연이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최소한의 동의절차 없이 강행되고 있다는 점도 쟁점이다. 정치성이 짙은 공원명칭 변경은 당연히 공청회나 객관적인 주민설문조사를 거쳐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 합천군은 행정동원이 가능한 이들을 대상자로 선정해 나온 설문결과만을 근거로 명칭 변경을 주도하고 있다.
이 설문에서 대상자 1천364명 중 절반에 못 미치는 601명만이 응했고 그중 302명만이 ‘일해공원’이라는 명칭을 지지했다. 합천군은 당초 한 달 앞선 작년 11월 13일부터 군민 전체를 대상으로 인터넷 설문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때맞춰 터진 전 전 대통령의 42억 은닉 보도가 나오면서 특별한 이유 없이 설문조사 계획을 중단했다.
심의조 합천군수가 읍·면장회의를 통해 “일해공원으로 해달라”는 협조요청을 한 사실도 합천군의회 군정질의를 통해 알려졌다. 심 군수는 전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씨가 새마을협의회를 이끌 당시 전국새마을회장을 지내 ‘리틀 전경환’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이에 민주노동당 합천군위원회와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일해공원’ 반대에 나섰다. 민노당은 작년 12월 23일 합천군청 홈페이지에서 사이버 시위를 벌였다. 12월 27일에는 ‘새천년생명의숲을 사랑하는 사람들’ 명의로 27일 합천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원명칭 변경 철회를 요구했다. 이후 분노의 성명은 5·18기념사업회나 삼청교육대인권연합 등으로 확산됐고, 내용이 보도되면서 네티즌들도 달아올랐다. 지난 12일에는 ‘합천군민운동본부’가 결성됐다.
반발이 심해지자 ‘5공 극우세력’도 좌시하지만은 않았다. 2003년 만든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지난 12일 “(일해공원 명칭변경 반대가)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 우리 고장 명예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논리를 펼치며 ‘일해공원 찬성집회’를 열었다.
심 군수 역시 지난 4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대통령을 배출한 자랑스러운 고장이라는 것을 영원히 기념하겠다”며 ‘일해공원’ 강행 방침을 천명했다. 지난 18일 연희동 규탄대회가 열리던 날에는 한나라당 소속 합천군의원들이 일해공원 추진에 찬성한다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이날 시위대는 윤재호 열린우리당 합천군의원 등의 삭발식과 함께, 면담을 자택으로 진입을 시도했으나 경찰 1개 중대에 가로막혔다. 시위대는 302명 찬성 설문조사에 302만 반대서명으로 맞서고, 오는 7월 발효되는 주민소환제에 심 군수가 대상 1호가 되는 명예를 주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집회는 공개질의서를 전 전 대통령의 자택에 던지는 것으로 끝났다.
심의조, 주민소환제 1호 될까
희수를 맞은 생일선물로 삭발시위와 질의서 세례를 받은 전 전 대통령이 일해공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날 질의서에는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전 전 대통령이) 심 군수에게 직접 추진 중단을 요청할 의향은 없는가”라는 질문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