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진 작가 "토머스 루프" 전
과학 시간에 슬라이드로 보여주곤 했던 천체 사진의 목적은 무엇일까? 당연히 '천체의 모습'의 알리고 그 구조에 대해 탐구하기 위한 것일테다. 마찬가지로 건물 사진은 건물의 전경과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혹은 건물이 지니고 있는 미적인 요소를 드러내기 위해 존재할 것이고, 포르노 사진은 성적욕구의 충족을 위해, 만화를 사진으로 찍는 행위는 만화 자체를 소개하거나, 혹은 극 구성을 대체적인 방법으로 알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드레아 걸스키, 토마스 스투르스, 토마스 디멘드와 함께 현재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독일의 현대사진작가 토머스 루프의 세계에선 이런 '목적성'이 완전히 파괴되어 있다. 천체 사진은 검은 바탕에 흰 물감을 뚝뚝 떨어뜨려 놓은 듯한, 마치 잭슨 폴락의 액션 페인팅을 연상시키는 추상적 미를 선보이고 있으며, 건물 사진은 컴퓨터 처리를 통해 마치 '대지가 흔들린 듯한' 효과를 넣어 극도의 불안정성을 강조하고, 포르노 사진은 디지털 방식으로 뿌옇게 흐려놓아 전혀 성적인 면이 느껴지지 않는, 오직 몽환적 효과만이 드러나는 사진으로 돌변해 있다. 만화의 경우는 이보다 더욱 심해서, 일본 만화를 바탕으로 여러 개의 층을 중첩시키고 합성시켜 도저히 무슨 모양새인지 알 수도 없고, 더 이상 '존재의미'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사진이 되어 있다.
현재 천안의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토머스 루프> 전에는 1980년대 초반에 루프를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알린 '초상 사진' 연작과 함께, 앞서 언급한 '별', '포르노 사진', '건물' 등 9개 연작이 선보여지고 있다. 특히 '목적성을 고의적으로 상실시킨' 사진들 외에 등장한 '초상 사진' 연작은, 오히려 목적성을 지나치게 강조 - 인물의 얼굴 생김새와 표정이 주가 되어있을 뿐, 같은 배경에 효과와 연출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 한 형식이어서, 루프의 '목적성'에 대한 강합 집착과 탐구를 엿볼 수도 있다.
루프는 "사진은 사물의 표면만을 포착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표면에 의미와 목적을 붙이는 것 뿐이며, 사진 자체는 그저 이미지에 불과할 따름일 것이다. 어쩌면 루프는 그 사진의 '표면'을 변형시켰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 지를 탐색하는 '상황연구가'에 가까운 작가일는지도 모르겠다.
(장소: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 일시: 2004.05.28∼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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