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국가정체성 논쟁, 文 정권은 왜 부추기나
때 아닌 국가정체성 논쟁, 文 정권은 왜 부추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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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수 회장
박강수 회장

전임 정권 때 벌어진 국정 역사교과서 논쟁이 잦아든 지 얼마나 지났다고 불과 올해 초만 해도 문재인 정권이 2020년부터 배포하는 중·고교생의 새 역사교과서에 명시될 ‘자유민주주의’란 표현을 ‘민주주의’로 바꾸려고 하다가 국가정체성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결국 1987년 만들어진 현행 헌법 전문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함께 언급하기로 집필기준을 확정하면서 논란이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그간 대한민국 국가정체성으로 당연하게 여겨왔던 ‘자유민주주의’조차 어쩌다 쟁점이 되어버렸는가 하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진보진영에선 자유민주란 표현이 1970년대 유신헌법에 등장했고 북한에 대한 체제 우위 성격의 선전 구호로 쓰였다는 점을 들어 민주주의가 보다 중립적인 표현이라 강변하고 있지만 ‘자유’란 용어를 제외한 채 단순히 민주주의로 표기할 경우 사회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로 해석될 여지가 생기는 문제가 발생한다.

더구나 여전히 북한과 대치하며 지구상 몇 안 되는 냉전체제를 이어가고 있는 현 실정을 돌아봐도 자유민주주의라는 국가정체성을 더 강조했으면 강조했지 완화시켜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굳이 ‘자유’를 배제시키려는 이들은 대체 어떤 저의를 품고 주장하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와 대치되는 개념으로서의 ‘독재’에 맞서 직선제 요구 등을 비롯해 국민 개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부르짖었던 386세대들까지 이제 와선 핵심 가치인 자유란 표현을 제외한 ‘민주주의’란 표기를 내세우는 건 그 자체로 모순된 행보 아닌지 되묻고 싶다.

그토록 강력한 정부의 개입과 통제에 염증을 내던 이들이 정작 사회주의의 정치사상 중 하나인 인민민주주의와 혼동될 만한 이런 민감한 부분을 어째서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것인지, 그저 비판여론 때문에 이제야 한 발 물러나 슬쩍 넘어가려들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 모두에게 제대로 된 답변을 할 필요가 있다.

이미 적잖은 국민들은 이 같은 논란 역시 유독 문재인 정부가 적극성을 보여 왔던 대북관계와 연계된 움직임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일견 ‘체제 경쟁’적으로 비쳐질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란 표현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될까봐 국가정체성조차 손을 대려는 의도 아니냐는 것이다.

북한은 여전히 저들만의 사상적 기초를 분명히 하고 있고 최소한 국가정체성에 있어선 그 어떤 변화의 조짐조차 없는데 어떻게 우리 정부는 헌법에도 명시된 자유민주주의란 표현에 스스로 불편한 심기를 품을 수 있는 것인지, 대체 어느 나라 정부를 자처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미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표방해온 바와 달리 민주주의든 공화주의든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소위 사회주의도 허울뿐인 사실상의 전제군주제 국가로 변질되어 있는 상황에 어찌 군주주의를 부정하며 개인 자유의 실현을 중시하는 공화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떳떳이 내세우진 못할지언정 도리어 우리가 그들의 체제를 의식해야 되는 것인지 현 정권이 보이는 모습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또 자유민주주의는 국민 개개인이 주권자로서 비록 소수의 목소리라도 다수의 횡포에 짓눌리지 않고 주권자의 견해로서 존중받으며 언론, 종교, 거주이전, 직업선택 등을 비롯한 최소한의 권리도 헌법에 의해 보장 받지만 강력한 전위당의 지도만 내세워 개개인의 목소리는 사실상 묵살하다가 실패해버린 지구상 공산주의 국가들의 말로를 보면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어느 쪽이 역사적으로 증명된 것인지는 더 물을 필요조차 없지 않은가.

문 정권은 스스로 정치적 용어로 인식하는 그 ‘자유’에 대한 편집증적 망상을 이제는 걷어버리고 이제 대한민국을 이끄는 자리에 오른 이상 자유민주주의란 국가정체성에 대해 일말의 의심 없이 누구보다 더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특히 장기적으로 통일을 염두에 두면서 그 일환으로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강조하기를 꺼리는 듯한 자세도 취하고 있는데, 그 정도 자신감과 국가정체성에 대한 확신 없이 앞으로 무슨 통일을 주도하고,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인가.

아울러 오랜만의 정권교체로 의욕이 지나쳐서 그런 것 아닌지 모르겠으나 모든 일을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무엇이든 정부주도로 추진하려 하고,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적폐’로 낙인찍는 듯한 일방통행식 국정운영도 보이고 있는데 ‘큰 정부’가 만사를 다 해내려던 공산권의 붕괴를 이미 역사를 통해 확인한 상황에서 이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걸맞게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내맡기고 개입을 최소화하며 정부는 최소한의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하는 게 아닌지 한 마디 충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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