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러스의 "브레이크 아웃: 1950 겨울 장진호 전투"
어떤 종류의 책들은 '딱 적절한 시기'에 등장해 일대 베스트셀러로 떠오르는가 하면, 어떤 책들은 '조금만 늦게, 아니면 조금만 빨리' 나와줬어야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아쉬운 '마케팅 전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편, 또다른 책들은 '이런 책이 나와선 안 될 시기'에 나와 색다른 이목을 끌기도 한다. 새로 출간된 마틴 러스의 <브레이크 아웃: 1950 겨울 장진호 전투>는 바로 마지막의 경우, 즉 요즘같이 한국과 미국과의 군사적 관계가 미묘한 시기에는 왠만해선 등장시키지 않을 법한 책으로서, 6.25 전쟁에 참전한 미 해병 1사단을 중심으로, 그들의 혼란스런 '장진호 전투'에 대해 면밀하게 정리해낸 '전쟁사' 서적이다.
<브레이크 아웃: 1950 겨울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0월, 함경남도 원산에 상륙한 미해병 1사단이 흥남과 함흥을 거쳐 황초령을 넘어 개마고원 지대에 들어선 뒤, 낭림산맥을 넘어 평안도 지방으로 진격하려다가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 제 9병단에 포위당해 전멸의 위기에 몰렸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 육군과 해병 1사단은 중공군의 막강한 대병력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물자 공급의 어려움과 혹독한 추위, 중공군의 습격에 대한 공포 속에서 꿋꿋이 버텨 결국 흥남으로 탈출, 해상을 통해 철수에 이르게 되었다.
마틴 러스는 이 두 달 간의 치열한 사투, 1950년 10월부터 12월까지의 극적인 체험을 이 전투에 참가했던 실존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대다수의 '전쟁사' 서적이 군사배치상황이나 군사이동의 의미 등, 사료를 바탕으로 한 기술로만 전쟁에 대해 접근하고, 또 실제 전투 참가자의 인터뷰를 가미하더라도 군통솔체계에 있는 고위 장교들의 멘트만을 언급하는 반면, <브레이크 아웃: 1950 겨울 장진호 전투>는 사단장을 비롯해, 주요 지휘관, 중대장, 소대장 급의 임관들은 물론, 말단 소총수에 이르는 일반 사병들의 인터뷰까지도 곁들여 실제 전투의 전체적 면모와 전투의 구석구석을 살피는 정교함, 결국 모든 군이 하나가 되어 최악의 상황을 극복하려 애쓰는 '인간 드라마'의 요소까지 모두 담아내려 하고 있다.
이쯤 되면 단순한 '전쟁사 서적'의 의미 정도에서 벗어나, 실제 '전쟁사'의 귀중한 자료로도 참고될 수 있을 법한 '문서'인 셈인데, 이토록 잘 짜여진, 성의있는 서적이 왜 하필이면 이처럼 기묘한 시기에 등장했는가에 대해선 한 번 다시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이제 더 이상 '한국전'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은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쟁세대들은 이미 수많은 방송과 보도를 통해 '한국전'에 대해 '알만큼 알고 있다'고 여기고 있으며, 전쟁후세대들은 한국전 상황을 각색한 각종 영상창작물들에만 관심이 있을 뿐, 전쟁의 진짜 양상에 대해선 관심을 놓고 있다. 더군다나 미군의 한국전 참여에 관한 문제라면, 지난 해의 '미선이, 효순이' 사건으로부터 근래의 이라크 파병 문제에 이르기까지 주한미군과의 각종 잡음으로 인해, 미군을 일방적으로 비판하고, 그들의 숨은 악행을 고발하는 서적이 아니라면 볼 가치도 없는, '친미적' 성향의 서적이라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지금과 같은 시기야말로 '한국전에서의 미군의 역할'에 대해 더욱 명확히 파악해야 하며, 그들이 우리 땅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그리고 그 일은 현재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에 대해 포괄적으로 파악해야만 한다. 미군이 우리에게 과거에 어떤 의미였고, 현재에 어떤 의미이며, 앞으로 어떤 의미로 정착되어야 할 지를, 모든 종류의, 모든 시각의 서적과 조사를 통해 면밀히 파악한 상황에서 결론지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점에서, <브레이크 아웃: 1950 겨울 장진호 전투>는 '어울리지 않는 책'에서 '필요한 책'으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고, 오히려 자신이 지닌 본래의 가치 이상의 역할까지도 수행할 수 있는 서적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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