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포커스 / 박고은 기자] 한국사회의 미투 운동 ‘신호탄’을 쏘아올린 서지현 검사는 29일 “미투는 특별한 걸 얘기하는 것 아니다. ‘더 이상 성범죄를 침묵하지 않겠다는 것’, ‘가해자들을 제대로 처벌하라는 것’, ‘피해자들을 제대로 보호하자는 것’ 당연한 이야기 하는 것이 미투다”라고 설명했다.
서 검사는 이날 더불어민주당 여성폭력근절특별위원회가 국회에서 개최한 '서지현 검사 미투 1년, 지금까지의 변화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 좌담회에 참석해 “누군가는 정의를 말하기 위해 진실을 말하기 위해 모든 것 불살라야 하는 이 비정상적 시대를 끝내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모든 피해자들이, 내부 고발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2차 가해다”며 “저 역시 제가 폭로하는 글을 올리면서 저를 ‘정치하려 한다’, ‘인간관계와 업무 능력에 문제가 있었다’는 2차 가해가 진행됐다”고 말했다.
이어 “정의 수호기관인 검찰과 법무부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며 “2차 가해를 근절하지 않고서는 성범죄 근절되고 공정한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에 책을 보니 성인의 29%가 에이즈 감염돼 성인 평균 기대수명이 61살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2011년 치료가 필요한 모든 이에게 공공자금으로 무상 에이즈 치료약을 제공하기로 결정한 후, 한 시골 지역을 조사한 결과 불과 7년만에 기대수명이 12년이나 증가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저자는 묻는다. 이 지역 주민들은 그동안 에이즈 때문에 죽었던 것일까, 아니면 치료약을 공공자금으로 제공하지 못했던 공동체로 인해 죽었던 것일까”라고 말했다.
이어 “저 역시 묻고 싶다. 피해자들은 그동안 성폭력 피해로 인해 말할 수 없이 고통을 받았을까, 아니면 성폭력을 방치하고, 가해자를 두둔하고, 오히려 피해자들을 비난해온 공동체로 인해 입을 열지도 못한 채 고통을 받으며 죽어갔을까”라며 “피해자 입을 열 수 없게 만든 것은 그들의 나약함과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피해 사실을, 진실을 들여다보기보다는, 그들을 꽃뱀·창녀 등으로 부르며 의심하고 비난해온 이 잔인한 공동체 때문이었을까요”라고 반문했다.
서 검사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지금까지의 성범죄는 결코 개인의 범죄가 아닌 집단적 범죄이고 약자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홀로코스트다”라고 공동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서 검사는 “공포와 수치로 피해자들의 입을 틀어막아온 이 잔인한 공동체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좌담회에 참석한 문화예술계를 대표한 연극배우 송원 씨는 지역 문화예술계의 특수성을 지적했다. 송씨는 전북지역에서 극단 활동을 했으며 작년 2월 공개 미투를 통해 극단 대표의 성추행을 사실을 고발한 바 있다.
송씨는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해자와 이해관계로 얽혀있고, 혹은 생계와 연관되기도 했다”며 “지역의 폐쇄성과 학연·지연이 얽힌 가해 행위자의 두터운 이해관계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를 앞장서 연대하고 있는 젊은빙상인연대 권순천 코치는 “보통 앨리트 선수들은 인생 절반을 그 종목에 투자하고 코치감독들과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더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피해 사례 언급될 때 마다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이목이 쏠리는 것 때문에 부담을 느끼고 더욱 주저해 했다”고 전했다.
권 코치는 “2차 보복에 대해 많이 두려워 했다. 피해 사실을 얘기함과 동시에 운동을 그만둔 사례도 있다”며 “가해자로 지목되는 분들이 현장에 있으면서 피해자가 피해 다니는 신세가 되는 것이 다반사”라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심지어 피해자들에게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고 형사 고발할 상황도 아니기에 정부에서 스포츠 인권특별조사단을 통해 좀 더 관심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이날 좌담회에 참석한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금 국회에서도 이와 관련한 볍안 발의 건수가 약 140건 넘어서지만 아직 논의가 부족하다”며 “유엔 여성차별 철폐위원회에서 권고한 성폭력 2차 피해호보, 비동의 간음죄 신설 등 성폭력 개정안에 대해 국회에서 아직 제대로 논의 이뤄지지 못해서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정책위의장은 “그런만큼 지난 1년의 변화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미투가 이후에 어떻게 나아갈지 방향을 논의해서 현실적인 보완대책 만들고 실질적인 성희롱·성폭력 가해자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마련되는 계기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여성폭력근절특위 위원장인 정춘숙 의원은 “침묵의 카르텔에 깨져가고 있지만 국회에서 145건이 넘는 미투와 관련된 법안이 쏟아졌는데 35건(24.1%) 밖에 통과 되지 않았다”며 “이날 성희롱 현실을 짚어보고 많은 어려움 들어보면서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당사자들 지원하고 성폭력 문제 해결, 성차별 극복할 것인지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