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날만 손꼽는다 … ‘은퇴냐’ ‘컴백이냐’
출소 날만 손꼽는다 … ‘은퇴냐’ ‘컴백이냐’
  • 김상미
  • 승인 2002.08.20 2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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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최측근’ ‘부패의 몸통’으로 언론에 오르내리던 민주당 권노갑 전 고문이 감옥에서 깊은 장고의 시간을 갖고 있다. 고희를 넘긴 일흔 셋 고령에 당뇨까지 있는 DJ의 막후 실세였던 권 씨가 진승현 5천만원 뇌물 수수로 인해 옥살이를 하고 있다. 진 씨 측은 “줬다” 권 전 고문은 “안 받았다” 결심공판 때까지 권 전 고문 측은 결백을 주장했지만 결국 지난달 16일 징역 3년에 5천만원 추징이라는 구형을 받았다. 바로 다음날 권 전 고문은 민주당을 탈당할 것을 선언했고 26일 급기야는 실형에 처해졌다. 감옥에서 장고의 시간 끝에 내미는 카드는 과연 무엇일까. 권 씨는 출소하는 그날을 손꼽으며 ‘대선 정국에 핵폭풍을 몰고 지형 변화를 어떻게 꾀할까’하는 시름에 찬 나날을 보내고 있다. 권노갑의 힘...이를 견제한 DJ 김대중(DJ)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동교동계 구파의 좌장격인 민주당 권노갑 전 고문. ‘하늘을 나는 새도 권 씨의 말 한마디면 떨어진다’는 그의 위세 높음을 말 해주는 비유다. 권 씨가 DJ 제2인자였음을 말해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1999년 국민회의 시절, 권 씨가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에도 ‘병상정치를 한다’ ‘눈도장을 찍으러 온다’는 등 그 위세가 당당했었다. 당시 한 인사는 “가뜩이나 당내 곳곳에 권 의원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데 권 의원이 당에 간섭하기 시작하면 그 부작용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반면 권 의원의 당내 문제 관여에 대해 그 당시 한 당직자는 “지역의 사무부총장을 중심으로 한 핵심조직이 모두 권 의원 라인”이었다며 “권 의원이 나서야 조직 가동이 원활하게 되는 측면이 있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DJ가 집권하면서 권 씨는 눈에 보이게 외야로 밀려나고 있었다. 당시 권 씨가 국민회의로 복귀한지 얼마 안 되었을 즈음, 권 씨의 당내 위상과 역할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했다. 특히 권 씨가 김 대통령의 의사전달자인가,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가를 두고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김 대통령의 ‘선 정치개혁’이라는 지시를 둘러싸고 당 주변에서는 ‘권 고문의 행보에 대한 김 대통령의 경고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왔다. 5월 전당대회에 앞서 자기 중심으로 당권을 짜려는 권 씨의 포석에 일침을 가하는 권 씨에 대한 DJ의 견제심이 발동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 권 씨의 당 복귀에 대한 세간의 여론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이유는 구 정치세력의 부활을 촉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대통령 측근의 한 보좌관은 “권노갑의 복귀는 정치개혁의 실종”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치개혁을 하려면 올해 안에 제도와 법률안 개혁, 그리고 내년 총선에서 인적 청산을 통한 물갈이로 완결되어야 하는데 권 고문 자신의 상징성이 이미 ‘구 시대성’이라는 것. 더구나 내년 공천에서 그의 측근들이 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정치개혁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서울 출신의 한 의원은 “권의 복귀 이후 당내 잡음이 가라앉았다”며 변화된 모습을 전했다. 그러나 많은 당내 관계자들이 “권 고문 복귀 이후 당이 공동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며 우려했다. 당시 권 씨의 위세를 알 수 있었던‘권노갑 현상’은 정치권뿐만 아니라 이미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것이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사태. 애초 대학당국은 지원자가 정원에 못 미칠 것으로 예측했으나, 권 씨가 등록하자 순식간에 정원을 넘어서는 일이 일어났다. 모 은행의 한 인사는 “권 고문 복귀 이후 기업체에도 ‘권노갑 신드롬’이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 각 기업체마다 호남 인사의 진출이 많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권 씨의 당 복귀 이후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DJ 정권에서 권 씨의 위세는 전두환 집권 시는 전경환 씨, 노태우 집권 때는 박철언 씨, 김영삼 정권 때는 김현철 씨에 이어 DJ의 제2인자로의 자리매김이 확고해져 있었다. 당시 권 씨의 당 복귀에 대해 안팎에 부정적인 시각이 만연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 씨 주위에 사람들은 계속 모여들었다. 당시 권 씨의 측근 중에 한 사람은 “권 고문이 대통령의 뜻을 가장 잘 알고 움직이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통령의 혼이 그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며 그를 통해 대통령과 교감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또다른 관계자는 “권 고문은 독자적인 정치인으로 김 대통령의 뜻과는 무관하게 움직인다”고 보고 있다고 말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 내에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권 씨의 힘을 빌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DJ와 권 씨 사이에는 별 다른 교감이 없다는 것을 예증하는 사건이 있다. DJ는 권 씨가 당에 복귀했어도 어떤 역할도 주지 않고 넘치는 부분만 잘라내는 모습을 보였다. 1998년 12월 초였다. 권 씨의 귀국 움직임에 대해 김 대통령은 “외롭게 보여라. 해외에 나가 있는 것만 가지고 전부가 아니다. 여론의 동정이 일기 전에 움직이지 마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권 씨는 이를 무시하고 공세적으로 귀국했고, 새해 첫날 1천여명의 하례객을 받아들여 세를 과시했다. 권 씨가 설립하려던 (가칭)한국사회정치연구소 설립은 권 씨의 당 복귀로 무산됐다. 이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권 고문의 당 복귀 이후, 연구소가 제2의 당사가 될 것을 우려한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얘기가 뒤따랐다. 이어 지난 11일 전당대회 연기 방침이 나오자 “대통령이 직접 권 고문 중심의 당권짜기 구도를 중지시켰다”는 해석이 당내에 꼬리를 물고 일파만파 되었다. 그 때부터 권 씨에 대한 DJ의 ‘거리 두기’가 본격적으로 시작었던 것이다. 권 씨와 DJ와의 사이는 점점 등안한 관계로 변했고 둘 사이에는 엇갈리는 소문만이 무성해져갔다. 사실 권 씨가 가졌던 힘의 원천은 ‘대통령 읽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DJ가 집권하면서 DJ를 둘러싸는 당내 소장파들로부터 권 씨는 점점 견제 당했으며 ‘대통령 읽기’도 그것으로써 막을 내렸다. 그들은 권 씨를 더 이상 ‘대통령의 분신’일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그래도 DJ는 권 씨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했다. 그 ‘기회’라는 것은 바로 지금의 ‘DJ 햇볕정책’이라는 책무였다. DJ는 그에게 ‘통일에 관한 책무’를 맡기고 싶었다. 그러나 권 씨는 이를 마다했고 그 책무는 지금의 임동원 특보에 맡겨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당시 한 관계자는”’김 대통령도 권 고문 이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도록 나라를 위 해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관계의 중요성에 비추어 ‘북한 관계의 특명을 주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고 설명했다. 권노갑과 DJ의 인간적 고민 권 씨 측근 중 한 사람은 “김 대통령이 빠져나간 권노갑은 촉수가 잘린 거미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권 씨가 그만큼 김 대통령을 위해 존재했고, 김 대통령 때문에 힘을 지녔다는 역설적인 말이기도 하다. 오직 DJ를 위해 일해왔던 그였기에 고문과 회유에도 꿈쩍하지 않고 버텨왔다. 그런 그가 지난 대선을 지나면서 김 대통령과 사이에 틈이 생겼다. 40평생의 정치인생에 최대의 영광이어야 할 김 대통령의 집권에 그는 뒷전으로 밀려나야 했다. DJ가 맨 처음 국회의원이 됐을 당시에도 권 씨는 뒤로 밀려나 있었다. 그 당시 권 씨의 한 측근은 “당시 국회의원 선거에 네 번이나 낙선한 김 대통령은 자신의 능력보다는 권 전 고문의 영향력으로 당선되었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 모시기에 평생을 봉직한 그는 따로 자기 미래를 준비할 틈도 없었다. 측근중 한 사람은 이같은 권 씨에 대해 “그는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계획을 세워 움직이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치밀하게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으로 자신을 위하지 않는다는 것이 DJ가 권 씨에 대해 신뢰했던 이유였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DJ는 권 씨에게 “공부하라”는 김 대통령의 말을 철석같이 따르려고 미래학 경제학 등 개인교사까지 두고 열심히 공부하기도 했다. 권 씨의 측근들은 그가 “정이 많고 순수한 사람”이라고 자주 말한다. 누군가 줄기차게 부탁하면 거절 못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편에선 그를 “자기가 신세진 사람들에 대해 잊지 않고 챙겨공인으로서의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때문에 여론의 지탄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정치적 희생양인가 권 씨가 병보석이나 무죄로 출소할 것이라는 예측을 뒤집고 실형을 받은 데는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관측도 분분하다. 징역 1년에 추징금 5천만원의 실형을 받은 권노갑. 권 씨에 대해 실형이 선고되자 변호인단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당 동교동계의 좌장으로 현 정권 최고 실세였던 점은 차치하더라도 고희를 넘긴 고령에다 당뇨병으로 인해 건강상태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재판부가 장고 끝에 실형을 선고하게 된 데는 권 씨가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권 씨는 검찰에서도 “진승현씨에게서 한푼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고, 법정에서도 이를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진 씨의 돈을 권 씨에게 직접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은성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은 “권 씨의 자택을 방문해 5천만원이 든 쇼핑백을 전달했다”고 밝혔을 때도 “김 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권 씨의 변호인단 측도 “김 씨 등이 권 씨를 음해하기 위해 거짓증언을 하고 있다”고 맞불 주장했다. 앞서 권 씨의 변호인 측에서 신청한 병보석 신청도 이미 기각된 상태이다. 또한 재판부는 “진 씨 등이 권 씨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돈을 건넨 사실은 인정하고 있는 점 등으로 미뤄 권 씨의 음해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밝혔다. 국내의 법은 형법을 집행함에 있어 ‘안 받았다’는 주장보다 ‘줬다’는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것으로 볼 때 권 씨를 실형에 처한 것도 그와 무관치 않다. 어쨌든 법의 논리에 권 씨가 발목잡힌 것은 확실하다. 이에 대해 권 씨의 변호인 이석형 변호사는 “여러 증인의 진술을 통해 모든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는 데도 실형을 선고한 것은 결코 수용할 수 없는 판결”이라면서 항소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는 또 “피고인의 건강상태로는 더 이상 수감생활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실형을 선고받은 권 씨의 변호인 측은 허탈한 표정으로 법정을 떠났고 방청석에서는 “아니 뭐 이런 게 다 있어” “정치적 판결이다”라는 웅성거림과 함께 “힘내십시오”하는 격려도 이어졌다. 권 씨는 1분여 동안 방청객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한 뒤 법정을 퇴장했다. 이날 선고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김옥두 김원길 의원 등 구 동교동계의 전·현직 민주당 의원 6~7명을 포함, 70여명의 방청객이 법정을 가득 메웠다. 권노갑의 뿌리는 경북 안동...昌의 물밑 ‘러브콜’ 교도소에 수감된 권노갑을 찾는 정치인들의 줄이 연일 끊이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를 비롯 노무현 대선 후보, 이인제 의원 등 최근에는 9월 대선 출마를 시사한 정몽준 의원도 권 씨를 면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준 박근혜 이한동 의원과는 간접 접촉을 한 것으로 알려진 한 대표는 수감중인 권 씨를 두 차례 면회한 사실을 소개하면서 “권 전 고문이 만나는 사람마다 ‘한 대표가 옳은 길 가니 한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도우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신당 창당 파동으로 중도적인 입장을 표방하는 동교동계가 권 씨의 출소와 함께 신당 창당을 통해 정치적 활로를 모색할 것이라는 해석 때문이다. 구속수감중인 권 씨가 출소 후 민주당을 탈당함으로써 사실상 정계 일선에서 은퇴할 것임을 선언했기 때문에 한화갑 대표를 새 구심점으로 급속히 내부 단합을 꾀할 것으로 관측된다. 권 씨의 재판 날에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진 구파의 김옥두 의원도 최근 한 대표 쪽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옥두 의원과 함께 최재승 윤철상 전갑길 의원 등 핵심 의원들 역시 한목소리로 한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기 시작했다. 신당론 파문 속에서 중도파에 캐스팅보트가 쥐어진 상황에서 한 대표가 그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권 씨는 물러나고 서서히 한 대표를 중심으로 동교동계의 역할도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한 대표 측의 한 당직자는 “요즘 김옥두 의원도 한 대표에게 잘하고 있다며 등을 두드리고 있고, 결국 동교동계는 한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8.8 재보선을 통해 컴백을 한 김상현 씨의 움직임에 따라 당내 분위기에 큰 변화를 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한편 8.8재보선을 통해 대선 정국의 선점을 확보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에서도 권 씨에 대한 ‘러브콜’이 물밑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후보는 6.13지방선거와 8.8재보선을 통해 영남과 충청의 지지세를 확신했다. 하지만, 최근 모든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보다 지지도가 앞선 정몽준 의원의 대선 출마설은 창의 대선 기득권에 큰 변수를 초래할 것이라는 관측에서 이 후보의 마음은 다급하기만 하다. 그 점에서 이 후보는 DJ와의 결별을 시사한 호남의 실세인 권 씨를 영입하는 것이 대선의 활용정점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 물밑 러브콜을 권 씨에게 보내고 있다는 관측이다. 사실 권 씨의 출생지는 전남 목포이지만 권 씨의 뿌리는 원래 경북 안동이다. 권 씨 부모의 고향이 안동과 대구인 데다 권 씨는 안동 권 씨로 문중에서의 영향력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권 씨는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에서도 문중의 힘을 많이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권 씨 역시 경북도지부 개편대회에서 자신의 인사말을 통해 “저 권노갑의 뿌리는 경북 안동입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걸어온 길은 연어의 일생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원해서, 연어의 회귀본능처럼 저의 뿌리이자 부모의 고향인 사랑하는 경북에 돌아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안동 권씨이고, 부모의 고향이 경상도이기 때문에 ‘연어의 모천회귀’라는 것이다. 게다가 권 씨는 출소하게되면 민주당을 정식으로 탈당할 것이라고 앞서 밝혀 출소 후 권씨가 한나라당 이후보를 지지할 것이라는 관측도 일부 제기 되고 있다. 권 씨의 한 측근은 “권 전 최고위원은 김대중 대통령이 없는 현재의 민주당에 더 이상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법적 문제가 마무리되는 대로 탈당 절차를 밟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최측근인 이훈평 의원도 “권 전 최고위원은 김 대통령이 탈당한 직후 탈당하려 했으나 진승현 사건으로 구속되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며 “한화갑 대표는 당에 남아 정치를 계속하고 자신은 김 대통령과 함께 정계를 떠나겠다는 게 권 전 최고위원의 오래 전부터의 생각이었다”고 전했다. 여하튼 동교동계의 좌장이었던 권 전 최고위원이 민주당을 탈당할 경우에는 사실상 해체상태나 마찬가지인 동교동계는 정치적 소멸의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권 씨가 출소 후 정계를 은퇴할 것이라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권 씨가 대선 정국의 변수를 위해 묘책을 준비하고 ‘컴백’을 선언할 수도 있다. 그 땐 권 씨도 두 번 다시 정치적 희생양이 되는 것으로부터 철저하게 탈출하고 싶을 것이다. 그럴 경우 권 씨가 출소 후 대선 정국에 있어 ‘핵폭탄’을 터뜨릴 수도 있다. 또 자신의 면죄부를 위해 ‘될 사람을 지지하자’는 쪽으로 선회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권 씨의 출소 후 ‘컴백이냐’ ‘은퇴냐’는 그의 감옥에서의 장고 끝에 꺼내는 비책에 달려있다. 어쩌면 그의 컴백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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