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자유한국당이 의원직 총사퇴를 포함 당력을 모두 집중해 여야 4당의 선거제 개혁안 등이 처리되지 못하도록 끝까지 저지하겠다고 공언하는 가운데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우여곡절 끝에 더불어민주당과 선거제 단일안까지 마련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으나 당내 불협화음은 수습되기는커녕 점점 커져가는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 선거제 논의 지속하는 바른미래, 분당 단초 되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와 검경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 등에 우선 방점을 둔 더불어민주당이 이 문제 처리를 위해 사실상 연동형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제 개혁을 촉구해온 일부 군소야권 측 요구를 수용하면서 여야 공조에 본격 시동이 걸렸으나 정작 막바지 국면에 이르자 바른미래, 평화당에서 파열음이 계속되면서 예상 외로 최종 성사되기까지 험로가 예상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패스트트랙 등과 관련해 사실상 키를 쥐고 있는 바른미래당에서 유독 갈등이 크게 불거지고 있는 실정인데, 앞선 의원총회를 통해서도 당내 이견만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쳤을 뿐 별 다른 접점을 찾지 못한 채 그저 주요 지도부 인사들을 중심으로 여당과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당초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쳐 이뤄진 정당이니 만큼 주요 사안에 있어서도 입장차가 일부 없지 않을 순 없지만 급기야 당을 봉합해야 하는 지도부 내에서조차 출신 정당별로 온도차가 감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국민의당 출신이자 민주당 등과 협상 중인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1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20대 국회가 선거개혁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 비례성과 대표성이 확보된 선거제를 통해 민심 그대로의 국회가 구성돼야만 국민 의사에 따른 정치가 가능해진다”며 “정상적 선거제도로 우리 정치와 국회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선거제 개혁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분명히 못을 박은 반면 바른정당 출신 이준석 최고위원은 “선거법 개정이 무리한 추진으로 또 다른 당내 불안의 씨앗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 뿐 아니라 국민의당 출신 손학규 대표가 이날 최고위 직후 “내가 생각했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이게 아니다”라면서도 “완전한 연동형이 아니고 여야 합의 아닌 패스트트랙이라 궁색하기 짝이 없어도 그나마 패스트트랙에 걸지 않으면 그동안 무르익었던 선거제 개혁이 물거품 되지 않을까”라고 패스트트랙 가능성을 열어둔 데 반해 바른정당 출신 유의동 원내수석부대표는 15일 페이스북에서 “패스트트랙이 잠시 편익을 제공할 수 있으나 앞으로 다수로 구성된 정치연합이 나머지 동의 없이 규칙을 바꾸려든다면 어떤 논리로 막겠나”라고 각을 세웠다.
이 같은 내부 상황과 관련해 오신환 사무총장은 18일 MBC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저희가 (선거제 패스트트랙) 반대하는 분의 흐름이 1/3 정도 되고 그중에 또 연동형 자체를 패스트트랙으로 하는 데 반대하는 분들이 한 반 정도 된다. 일부 탈당하겠다고 밝힌 의원들이 있는 걸 들은 바 있는데 그런 정도로 강한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패스트트랙 가는 것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설득하기 요원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선거제 패스트트랙이 당론 채택되려면 당헌당규상 2/3 이상 동의가 필요한 만큼 반대자인 1/3을 제외하고 통과시키면 되지 않겠느냐는 지적엔 “의총을 해서 당론을 정할 때도 기본적으로 표결해가지고 2/3를 넘겨서 당론 채택한 경우가 없다. 대부분 거의 만장일치가 됐을 때 당론으로 채택하는 것”이라며 “현안이 굉장히 엄격하게 의견 갈리는 상황에서 표결해 당론을 정하고 한다면 당의 분열은 더 급속히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즉, 이번 사안이 자칫 분당의 단초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설명인데 그럼에도 손 대표는 이날 “탈당 이야기가 있는 것을 잘 아는데 이제 우리가 극복하고 의견을 모아가는 앞으로의 과정이 될 것”이라면서도 “어쩔 수 없다. 완전 거꾸로 갈 수 없으니 앞을 보자는 것”이라고 덧붙여 이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쉽사리 잦아들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불안한 ‘균열’의 조짐은 당 주변부에서부터 감지되고 있는데,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계 원외 지역위원장들이 당장 18일 성명서를 통해 “한국당이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고 선거법 협상에 국민들의 민의를 받들지 않는 태도로 임할 지라도 현재의 원내 제2당을 배제하고 선거법을 변경하는 것은 이후 새로운 독재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며 “민주당의 권력기관 장악의 들러리 역할을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선거법 논의하는데 있어서 민주당이 주장하는 이른바 개혁입법을 끼워 넣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들은 자당 지도부까지 겨냥 “이번 바른미래당 당론 결정과정에서 향후 선거법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는 원외위원장들의 의견을 당 지도부에선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며 “지도부는 원외위원장 회의를 즉각 소집해 당론 결정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강한 압박을 가했다.
그러다 보니 김관영 원내대표도 정치적 부담이 큰 패스트트랙을 통한 강행 처리보다는 가급적 한국당이 선거제 개혁 논의에 동참해주길 호소하고 있는데, 김 원내대표는 18일 최고위에서 “한국당의 전향적 자세를 촉구한다. 선거제 개편을 위한 협상은 지금도 열려있으며 지금이라도 국민을 위한 선거제 개혁 논의에 진지하고 현실적 방안을 갖고 임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으나 이날 오전 교섭단체 원내대표 정례회동에서도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선거법 관련해 협상한 내용을 보면 권력 야합적”이라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뜻대로 풀리지 않는 모양새다.
◆ 평화당도 잡음 계속…패스트트랙 공조, ‘독이 든 성배’ 되나

마찬가지로 선거제 추진에 있어 여당과 공조하고 있는 또 다른 야당인 평화당에서도 좀처럼 내부가 정리되지 않는 분위기인데, 이는 민주당이 제시한 의원정수 300명을 마지노선으로 한 상태에서 연동형 비례제를 ‘부분 도입’키로 논의하다 보니 명분도 퇴색됐고 실질적 단일안이 마련되어 갈수록 호남 지역구 축소에 불만을 가진 의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유성엽 수석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에서 “지방 의석이 너무 많이 줄어드는 것은 큰 문제”라며 “도농복합형 선거구제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심지어 그는 “만약 이도저도 아니면 국회의원 총수를 늘려서 제대로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지 민주당이 제시한 300명 이내, 부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끌려들어가는 것은 합의를 안 하는 것만 못하다”고 발언한 데 이어 “정치발전을 위해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반드시 도입되고 사법개혁을 위한 입법도 처리돼야 한다”고 역설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반발을 최소화할 만한 ‘명분’을 만들고자 장병완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연말까지 시간을 끌 것이 아니라 민심 그대로를 반영하는 선거제 개혁에 한국당은 즉각 동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생국회를 만들어 가는데 한국당이 즉각 동참하길 마지막으로 촉구한다”고 한국당도 선거제 개편 논의에 참여할 것을 호소했는데, 하지만 한국당은 이미 의원정수를 270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선거제 개편안을 당론화했기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는 이들 정당과 논의에 나설 가능성이 거의 없다.
더구나 여야 4당과 한국당이 맞붙는 구도 상으론 한국당 홀로 맞서기에 불리해 보이는 형국이지만 최근의 정당 지지율로 살펴보면 도리어 여야 4당은 저조하고 한국당만 상승세를 달리고 있기에 한국당이 굳이 이들과 협력하기보다 4당을 모두 압박하는 기회로 삼고 있는 양상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11~15일 전국 성인 2517명에게 조사해 18일 공개한 3월 2주차 정당 지지도 주간 집계 결과(95%신뢰수준±2%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만 봐도 한국당은 4주 연속 상승하며 2년 5개월 만에 최고치인 31.7%를 기록한 반면 민주당은 전주 대비 0.6%P 하락한 36.6%로 11주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데 이어 정의당(6.9%)과 바른미래당(5.9%)도 한 주전보다 각각 0.1%P와 0.3%P 하락하고 평화당(2.1%)도 반등에는 실패해 한국당으로선 여당과 함께 하락 중인 이들 야당과 손잡을 이유가 없어졌다.
무엇보다 동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도 3주 연속 하락한 44.9%로 내려가고 부정평가는 49.7%로 나오다 보니 여당과 ‘패스트트랙 공조’에 나서는 자체도 야당엔 동반 침체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한국당이 논의에 응할 가능성이 한층 희박해진 것은 물론 현재 민주당과 공조 중인 야당 내부조차 흔들리게 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를 증명해주듯 바른미래당 외에도 평화당까지 이날 열린 의원총회에서 여야 4당 국회 정치개혁특위 간사가 합의한 준연동형 선거제 개혁안 추인을 시도했지만 소속 의원 14명 중 9명이 참석했다가 중도에 자리를 떠나고 5명만 남아 의결정족수 미달로 불발되면서 다음날 다시 논의하기로 미뤄지기에 이르렀다.
◆ 정개특위 직격한 한국당, 공세수위 어디까지?

이렇듯 선거제 개혁 때문에 ‘범여권 프레임’에 휘말려 지지율 상승이 더 어려워졌다는 점이나 설사 ‘패스트트랙’에 올린다 해도 ‘fast’란 단어가 무색하게 330일이나 소요되다 보니 야3당이 민주당과 함께 논의했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이제 ‘독이 든 성배’가 되어버린 셈인데 거꾸로 해석하면 승세를 타고 있는 한국당에겐 한 번에 판도를 뒤엎을 기회로 비쳐지고 있다.
일단 한국당은 정국 전환의 바로미터가 될 다음 달 보궐선거에 집중하는 한편 선거제 개편과 관련해선 정치개혁특별위원장에게까지 공세를 확산해 완전 무산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는데,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18일 ‘좌파독재 저지 국회의원 및 당협위원장 비상 연석회의’에서 선거제 개편과 관련 “오늘 기자에게 들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고 심상정 위원장에게 물어봤더니 ‘국민은 알 필요 없다’고 했다고 한다. 국민은 알 필요 없는 기형적 제도를 왜 만들겠느냐”라고 심 위원장을 직격했다.
이에 심 위원장도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말꼬리만 잡는 좁쌀정치를 해서 되겠나. 진심으로 정치제도, 선거제 개혁에 전향적 자세로 임해 달라”고 응수했지만 황교안 대표까지 같은 날 오후 현장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이 알 필요가 없는 선거법이 있을 수 있나. 충격적인 국민 무시 폭언”이라며 “이런 오만한 좌파세력이 야합해 민의를 짓밟고 독재를 연장할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좌파야당 정당들은 국민 삶과 무관한 정치공학적 카르텔을 깨고 민생정치 현장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라고 거듭 몰아붙였다.
이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정치공학적 야합’으로 평가절하하면서 현재 자당의 지지율 상승에 힘입어 한국당에 유리한 기존 선거제를 유지하는 한편 선거제 개혁안과 함께 여당이 통과시키려던 공수처법 등 각종 법안도 동시에 무산시키겠다는 전략인데, 당분간 정부여당이 난국을 돌파해내지 못하는 형세가 계속된다면 얼마 남지 않은 보궐선거까지도 한국당에 유리한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