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길~어 보이게 찍어 줄께
다리가 길~어 보이게 찍어 줄께
  • 김봄내
  • 승인 2007.03.10 11: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복모델 시켜준다며 음란사진 찍어

열 평 남짓한 스튜디오에서 앳된 소녀들이 옷을 갈아입는다. 그들이 갈아입은 옷은 다름 아닌 평범한 교복. 그런데 사진촬영을 하는 남자는 교복치마를 계속해서 올릴 것을 강요한다. 여학생들은 난처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남자의 요구에 응한다. 교복모델에 뽑히기 위해서는 옆에 있는 여학생보다 돋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경쟁이라도 하듯 치마는 점점 짧아졌고 남자는 연신 플래시를 터트리기 바쁘다. 이 남자는 포즈를 취하는 것을 도와준다며 여학생들의 가슴과 허벅지등을 더듬기도 한다.
이 이상야릇한 풍경은 한 남자가 교복모델을 시켜준다며 여학생들을 자신의 원룸에 끌어들이면서 생겨났다.


지방의 대학을 중퇴하고 마땅한 직업 없이 PC방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던 2003년 당시 27세의 김모(30)씨는 아르바이트로 꽤 많은 목돈이 모이자 어디에 돈을 쓸까 궁리를 했다.
평소 사진촬영에 관심이 많았던 김씨는 고민 끝에 최신형 디지털카메라와 조명장비를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참에 인물 사진 촬영기법을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송파구 가락동 10평 남짓한 자신의 원룸에 기기들을 설치해 놓고 뿌듯한 마음으로 장비들을 바라보던 김씨는 갑자기 원룸을 조금만 손보면 그럴 듯 한 스튜디오가 탄생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포즈 취하게 도와준다며 성추행까지 일삼아



단순히 그럴싸한 스튜디오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에 원룸을 꾸민 김씨는 생각보다 더 근사한 스튜디오가 꾸며지자 슬그머니 못된 생각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멋들어지게 꾸민 스튜디오와 사진기술을 이용해 돈도 벌고 재미도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가 타깃으로 삼은 건 연예인을 꿈꾸는 순진한 10대 소녀들이었다. 2003년 당시나 지금이나 10대들의 영원한 장래희망 영순위는 연예인. 이를 이용해 10대 소녀들에게 교복모델을 시켜준다는 말로 유혹해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인다는 게 김씨의 계획이었다. 평소 교복을 입은 여학생을 보면서 성적흥분을 느꼈던 김씨는 교복모델을 시켜준다고 꼬여 여학생들을 집으로 불러들이고 교복을 입혀 사진을 찍어보자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김씨는 곧바로 인터넷을 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10대들이 자주 찾는 세이클럽이나 기타 인터넷카페에 “교복모델 지원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냈다.
구인광고를 올린 지 채 몇 시간이 되지 않아 지원자들이 하나둘씩 전화로 연락해 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광고들이 그렇지만 특히 교복광고모델의 경우 당대 최고의 아이돌 스타가 모델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 터라 연예인지망생들이 혹할 만한 광고였기 때문이다.
김씨는 “교복 카탈로그모델을 선발하는데 여기에 뽑히면 유명 연예기획사와도 계약을 맺을 기회가 주어진다”며 “오디션에 앞서 프로필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원룸으로 여학생들을 유인했다.
생각보다 자신의 말에 쉽게 현혹되는 소녀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란 김씨는 부랴부랴 원룸 출입문에 ‘A스튜디오’라는 스티커까지 붙이고 손님 맞을 채비를 했다.


설렘반 기대반으로 여학생들을 기다리던 김씨의 원룸에 마침내 앳된 얼굴의 소녀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김씨는 여학생들을 속이고 원활하게 사진촬영을 하기 위해 “교복모델로 선발되면 대학 진학 때 1년 등록금을 지원해주고 연예기획사와 전속계약을 맺게 해주겠다”고 속였다. 연예인이 되길 희망하는 여학생들에게 그의 제안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고 김씨의 요구에 순순히 응했다.


김씨는 자신의 속임수에 완벽히 걸려든 10대 소녀들에게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여러 가지 포즈를 요구했다. 그는 교복을 사고 싶게 만드는 광고사진을 찍으려면 다리가 길어 보여야 된다며 교복치마를 팬티라인까지 끌어올리게 만들고 다리와 음부를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었다.


촬영을 거듭할수록 노출수위는 더 높아졌고 급기야는 “연예인이 되면 더 많은 사람 앞에서 옷을 벗어야 되니 내 앞에서 먼저 벗어봐라”고 말하고 가슴이나 허벅지 등을 더듬는 성추행까지 일삼았다.


그렇게 김씨는 2003년 9월부터 무려 3년 6개월 동안 300명에 이르는 중, 고등학교 여학생들의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그중 가장 어린 여학생은 15세의 중학교 2학년이었다. 간혹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눈치 빠른 여학생들은 선발과정에서 탈락을 시켜 소문이 퍼지거나 다른 여학생들이 의심할 소지를 없애버렸다. 또 부모가 볼 수 있는 프로필 사진 CD에는 정상적으로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만을 담아 부모들이 자신을 철썩같이 믿게 만들기도 했다. 또 모든 범행과정을 매뉴얼로 작성해 300여명의 피해자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김씨는 여학생들의 패티쉬사진을 찍고 성추행한 것으로도 모자라 찍은 사진을 3~5만원에 강제로 팔아넘기기도 했다. 다소 억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연예인을 하는데 그 정도 투자는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에 피해학생과 부모들은 의심 없이 돈을 줬다.


연예인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일도 불사하겠다는 10대 소녀들의 열망과 그 마음을 이용해 재미를 보려 한 성인남성의 그릇된 욕구가 맞물려 3년이 넘는 시간 덜미가 잡히지 않던 김씨의 행각은 마침내 지난달 27일 피해자 중 한명의 부모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종지부를 찍게 됐다.


김씨의 집에서는 모델지원서 315장, 동영상 DVD 305장이 쏟아져 나와 피해규모를 짐작케 했다. 경찰조사에서 김씨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을 보면 성적흥분을 느꼈다”고 범행동기를 설명했다. 결국 김씨는 화려했던 나날들을 뒤로 하고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 등으로 구속이 됐다.


이렇게 김씨가 쉽게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김씨가 철저하고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연예인을 꿈꾸는 10대들이 많다는 사실도 한 몫했다.


노동부 산하 중앙고용정보관리소가 서울 시내 남녀중고생 2,995명을 대상으로 희망직업을 조사한 결과 연예인이 교사와 디자이너에 이어 3위에 올랐다. 또 서울 중고생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학생들의 47%가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답변했다. 이같은 결과는 구체적 현실과 수치로 드러난다. 전국 대학 중 방송, 영화 관련 학과는 136개학과에 달하고 모집학생만도 1만459명에 이르지만 타 학과에 비해 엄청난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세태를 이용한 범죄도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연예인이 되고픈 10대들의 열망을 이용해 돈을 뜯어내거나 성폭행까지 일삼는 사건이 심심치 않게 생겨나는 것.


지난해 12월에는 “연예인을 시켜주겠다”며 9살부터 10대청소년의 부모로부터 5700만원을 뜯어낸 혐의로 S연예기획사 대표 남모(50)씨가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남씨는 인터넷 캐스팅사이트와 대형 포털 사이트에 연예인 출연섭외 광고를 낸 뒤,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연예인 지방생부모 57명을 속여 돈을 울궈낸 것. 경찰 조사결과 남씨는 영화제작사들이 모여있는 서울 충무로에 사무실을 낸 뒤 “대작영화 공동제작사로 선정돼 거의 매일 한편씩 캐스팅을 한다”는 글을 인터넷에 게재한 뒤 출연관리, 동영상 제작, 연기교육 등의 명목으로 돈을 받아낸 것으로 밝혀졌다. 남씨는 “부모들이 영화에 출연시켜주겠다는 말을 하면 쉽게 속아 넘어가 30~750만원의 돈을 냈다”며 범행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작년에는 연예기획사 관계자를 사칭해 미성년자인 연예인지망생을 성폭행하고 금품을 가로챈 혐의로 김모씨가 붙잡혔다. 김씨는 서울 영등포역 근처에서 연예인 지망생인 17살 김모양에게 유명 연예인으로 만들어 주겠다며 인근 모텔로 유인해 성폭행했다. 연예인만 될 수 있다면 어떤 일도 마다 않겠다는 연예인 지망생이 수 없이 대기하고 있는 한 이 같은 사건은 끊이지 않고 발생할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무엇이 청소년들을 연예계로 향하게 하는 것일까. MBC의 설문조사에서 연예인이 되려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개성발휘가 62%, 화려해 보여서가 27%, 짧은 시간 안에 큰 돈을 벌어서가 9%로 조사됐다. 이 같은 청소년의 인식변화가 청소년들이 연예인을 선망하게 만드는 것이다. 연예인을 광대 또는 딴따라로 천시하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청소년의 인식에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남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고 유명세를 타 큰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란 생각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방송 등 대중매체가 상품성이 인정된 스타만을 화려하게 집중조명하면서 연예계의 현실을 정확히 보여주지 못하는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결국 연예인에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청소년이 있는 한 이번 교복모델 사건 같은 일은 끝없이 생겨 제 2, 3의 피해자를 만들 것이다.


길어진 꼬리 너무 늦게 밟혀


이번 사건의 피의자는 300명이 넘는 피해자를 낳고 3년 6개월이 지나서야 덜미를 잡혔다. 연예인을 시켜준다는 말에 혹해 부모도 학생도 별 의심을 하지 않았고, 후에 피해사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쉬쉬하기 급급했기 때문이다. 연예인을 꿈꾸는 청소년이기 때문에 훗날 연예인이 됐을 때 사진이나 동영상이 유포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결국 수많은 피해자와 음란사진만을 남기긴 이번 사태. 연예인에 대한 그릇된 환상이 낳은 웃지못 할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