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올해 1분기에 전분기 대비 –0.3%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여 만에 최저치이자 5개분기만의 역성장으로 수출과 투자, 소비 등이 모두 부진한 끝에 나온 ‘성장률 쇼크’인데, 특히 설비투자는 –10.8로 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1998년 1분기 이후 21년만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오히려 정부 소비까지 위축돼 성장률에 악영향을 미치게 됐다면서 추경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데, 국회에 추경 통과시켜 달라고 손 벌리기 이전에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 그저 재정약발 떨어지자마자 바로 후퇴하는 이 지경까지 이르게 한 데 대해 책임지고 반성하는 자세가 우선돼야 하지 않은가 싶다.
이미 이 같은 통계수치가 발표되기 전부터 경기침체의 전조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자동차 부품과 같은 기계공업, 전기전자 분야를 주축으로 약 7천개에 육박하는 중견·중소기업이 모여 10만2000명을 고용해온 인천 남동공단의 최근 사정을 살펴봐도 당장 이런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재작년 3월만 해도 78%에 달했던 공단의 공장 가동률은 현재 64%까지 추락했는데, 작년 2월 한국GM이 군산공장 철수까지 단행하면서 적잖은 협력업체들이 부도 위기로 내몰린 상태고 40% 가까운 시설이 가동을 멈춘 절체절명의 상황으로 당장 입주업체 대표들은 급격히 인상된 최저임금 문제를 개선해야 하고, 주52시간제의 근로시간 탄력적용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한 목소리로 호소하고 있다.
지난 2년간 30% 가까이 인상된 최저임금을 감당하기 어려운데다 주52시간 근로제로는 납기 맞추기 어렵다는 현실적 차원에서 나온 지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 임명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취임 직후 ‘경제활성화에 최선을 다하겠다’던 약속은 벌써 잊었는지 25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토론에서 최저임금 차등화라도 허용해달라는 중기업계 관계자들의 요구에 “최저임금을 업종별, 규모별로 차등화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박 장관은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최저임금을 차등화하는 것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강변했는데, 박 장관 취임을 희망한다며 조기임명해달라고 논평을 냈던 중기업계는 크게 실망해 최저임금 결정 자체부터 정치적 논리에 의해 결정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비단 이 뿐 아니라 박 장관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도입요건을 완화하고 기간을 확대해달라는 기업인들의 요청 또한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니 그때 가서 답변 주겠다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경제전망이 어두워가고 한국은행조차 성장률 전망치를 4차례나 낮추고 있는 판국에 관련부처 장관이 그토록 절절한 우리 기업인들의 호소엔 그리 단호하게 선을 그으면서 불과 지난 19일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선 “개성공단이 중소기업의 해방구, 희망의 출구”라며 “지금 중소기업이 제일 바라는 게 정동영 통일부 장관 시절에 만든 개성공단”이라고 유엔 제재 따위 개의치 않는 듯 어찌 천연덕스럽게 발언할 수 있는 것인지 경악스러울 뿐이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2차 북미회담 결렬 이후 북한 비핵화도 실질적으로 지지부진해진 가운데 여전히 지속 중인 북한에 대한 국제 제재를 푸는 게 우리 기업들의 고충을 해결해주는 것보다 훨씬 쉬워보였던 건지 그 현실감 없는 사고방식도 놀랍지만 이 정도 인식수준을 갖췄을 정도로 부적격자니 국회 인사청문보고서도 채택 받지 못했던 게 아닌가 한편으론 납득돼 참으로 씁쓸하다.
경제성장률 급락에 긴급대책회의까지 가진 자리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세계경제의 성장둔화와 기업투자 부진 등을 1분기 GDP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게 된 이유로 꼽았던데 대체 왜 기업투자가 부진하게 된 것인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워온 현 정권은 곰곰이 자문해보기 바란다.
무책임하게 낙관론에만 빠져 지난해에 “연말엔 고용상황이 개선되고 하반기엔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주장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도로 불러들여 주중대사 자리나 주는 이 정권에 여전히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걸 수 있는지 확신은 서지 않지만 부디 홍 부총리라도 “1분기보다는 2분기에 더 나아질 것”이란 장하성과 같은 이야기만은 그만 자제하고 결과로 보여주기 바란다.
늦었지만 추락하는 성장률을 다잡기 위한 첫걸음으로, 개성공단 재개 같은 북한만 바라보는 식의 정책 기조가 아니라 우리 기업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적극 반영해나가는 자세부터 지금이라도 갖춰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