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3당 원내대표의 호프미팅도 무색하게 5월 마지막 날까지 여야 간 첨예한 대치 상태만 이어가면서 자칫 6월에도 국회 파행 사태가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 어린 시선이 늘어가고 있다.
이달 초 범여권의 패스트트랙 강행에 반발해 장외투쟁을 감행했던 자유한국당은 지난 20일 나경원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원내대표 호프 미팅’ 참석과 황교안 대표의 첫 민생투쟁 대장정을 마무리 지은 지난 24일을 기점으로 국회 정상화에 나설 것으로 관측됐었지만 패스트트랙 철회 및 사과 가능성을 민주당에서 일축한 것은 물론 6월 임시국회 단독개회 의사까지 표명하고, 청와대마저 한국당이 요구한 1대1 영수회담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채 한미 정상 통화 내용 유출 논란을 문제 삼으며 오히려 야당을 압박함에 따라 대치 국면은 점차 격화되는 모양새다.
◆ 파행 장기화에도 ‘양보 없는’ 민주당, 국회 정상화 자신감?
이인영 원내대표로 원내사령탑이 바뀐 이후 표면상 국회 정상화 의지를 적극 드러냈던 민주당이 실상은 점점 강경 대응 기조를 내비치며 사실상 한국당과 타협할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선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 간 호프 미팅 이틀 뒤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선 작심한 듯 한국당의 국회 복귀 조건을 수용하기보단 야당 설득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란 목소리가 더 높았는데, 박찬대 원내대변인은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회 정상화와 관련 “조건 없이 응한다면 적절한 표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사과를 전제로 하는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이 다수엿다. (한국당이 요구한) 고소 취하는 절대 안 되고, (민주당의) 사과도 안 된다”며 이런 분위기를 전했다.
심지어 한국당 설득에 나설 뜻을 보였던 이 원내대표조차 같은 날 확대간부회의에서 “일방적인 역지사지는 가능하지도 진실하지도 않다”고 발언한 데 이어 30일에도 정책조정회의에서 “국회 정상화를 외면하고 민생 챙기는 척 코스프레하다가 뜻대로 안 되니 억지 부린다”며 연일 강공을 퍼붓고 나섰다.
여기에 청와대까지 제1야당 압박에 가세하려는 듯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유출 논란에 휩싸인 강효상 의원을 비호하는 한국당을 겨냥 29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알 권리라거나 공익제보라는 식으로 두둔하고 비호하는 정당의 행태에 깊은 유감”이라며 “적어도 국가 운영의 근본에 관한 문제만큼은 기본과 상식을 지켜줄 것을 요청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처럼 여당은 물론 청와대까지 국회 정상화를 위해 한국당을 설득하기는커녕 공세일변도로 나선 배경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정부여당이 급선무로 여겼던 추가경정예산 처리가 5월 내내 국회 파행으로 이미 늦어져버린 이유도 있지만 전국 순회 장외투쟁이 마무리되면서 추가 압박수단이 사라진데다 오히려 한미 통화내용 유출 논란을 계기로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지난 28~30일 전국 성인 1002명을 상대로 조사해 31일 공개한 정당 지지도 집계 결과(95%신뢰수준±3.1%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민주당 지지율은 전주 대비 3%P 상승한 39%인 반면 한국당 지지율은 한 주 전보다 2%P 하락한 22%를 얻는 데 그쳐 양당 간 격차는 17%P로 한층 확대됐는데, 조사기관에선 이 같은 결과가 나온 데에는 강효상 의원의 한미정상 간 통화내용 공개 논란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이 뿐 아니라 또 다른 조사기관인 리얼미터에서 지난 27일~29일 전국 성인 1506명에게 조사해 30일 발표한 5월 5주차 정당 지지도 주중집계 결과(95%신뢰수준±2.5%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1.9%P 상승하며 다시 40%선을 넘은 데 반해 한국당은 2.9%P 하락한 29%를 기록하면서 30%선 아래로 떨어지는 등 격차가 벌어졌는데 이 기관 역시 여러 이유와 더불어 강효상 의원의 ‘한미정상 통화 내용 유출’ 논란도 양당 격차 확대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리얼미터에서 TBS의 의뢰를 받아 강 의원의 한미정상 통화내용 공개가 정당한지 아닌지 여부를 주제로 지난 29일 전국 성인 505명에게 질의한 결과(95%신뢰수준±4.4%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정당한 정보 공개(33.2%)란 답변보다 국익을 침해하는 불법적 기밀유출(48.1%)이라 응답한 비율이 다수로 나타난 데다 보수층에서마저 불법적 기밀유출이란 인식이 정당한 정보공개란 시각과 팽팽하게 맞설 정도로 한국당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도 정부여당이 자신감을 갖게 된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또 여당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의 비공개 회동 논란이 당시 동석했던 MBC 김현경 기자의 “정치적 얘기 없었다”는 해명에 힘입어 일부 완화된 데다 갑자기 발생한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로 여론의 관심이 분산되면서 정치권 이슈보다 정부의 사고 대응 쪽에 이목이 쏠리게 된 점도 야권의 공세가 무력화되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 밀리면 끝장? 정치적 부담 불구 ‘투쟁 지속’ 배수진 친 한국당
이렇듯 정부여당이 지지율 등을 바탕으로 강경대응 기조를 유지하자 한국당도 물러설 수 없다는 듯 배수진을 치고 맞섰는데,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가 31일 한국당을 향해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제게 전화로 다시 국회 정상화 의지를 밝혔다. 6월 임시국회 의사일정 합의를 위한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담을 조건 없이 개최하자”고 제안했지만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같은 날 ‘국정원 관권선거 의혹 대책위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만날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지금 여당 작태는 국회정상화가 아닌 일방강행 의지”라며 수용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나 원내대표는 같은 날 오후 천안에서 열린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서도 “지금 계속해서 대통령부터 시작해 일사불란하게 저희에게 공격만 하고 있다. 말로만 정상화를 얘기하면서 ‘추경이 통과 안 돼서 경제가 어렵다’ 등 우리 당에 온갖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며 “민주적으로 국회를 이끌겠다는 자세를 진정으로 보이지 않으면 국회에 들어갈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하락하는 결과가 나온 데 대해서도 “오늘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더 벌어졌다고 하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조정기에 들어갔다고 생각하고 이 조정기에서 어떻게 힘을 내느냐가 중요하다”며 “장외투쟁과 국회투쟁을 함께 해준 연대감으로 더 굳건히 해서 이번 투쟁을 이기고 총선 승리로 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황교안 대표까지 이 자리에서 “상황이 녹록치 않다. 우리의 투쟁은 계속될 수박에 없고 국민들의 목소리를 더 간절하게 듣는 걸음들이 계속 되어져 갈 수밖에 없다”며 물러설 뜻이 없음을 한층 분명히 했는데, 여당 뿐 아니라 청와대까지 합세한 대야 압박에 격앙된 듯 같은 당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이 자리에서 아예 “북한 김정은에게서 야만성, 불법성, 비인간성을 뺀다면 어떤 면에선 지도자로서 문 대통령보다 나은 면도 있는 것 같다”고 대통령을 겨냥해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 ‘6월 국회’ 단독 개회 가능성 주목…극적 타협 가능성도 배제 못해

날선 공방만 이어지면서 국회 정상화 기미는 요원해지는 가운데 일각에선 6월 국회 단독 개회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는데, 민주평화당에선 31일 정동영 대표가 “국회법에 보면 16대 국회부터 상시 개원체제를 선언, 명문화 해놨다. 국회법에 2월, 4월, 6월은 1일부터 30일까지 30일 간을 회기로 임시국회가 자동 개회된다”며 “한국당은 패스트트랙이 강행되면 의원직을 총사퇴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주말이 지나기 전에 의원직 사퇴하든지 국회에 오든지 결론을 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정의당에서도 윤소하 신임 원내대표가 30일 “6월 국회를 정상 가동시키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한 데 이어 31일 페이스북을 통해 “교섭단체 회동도 한국당 거부로 무산됐다. 더 이상 한국당만 보고 있을 수 없다”며 “일하는 국회를 열고자 하는 정당들이 먼저 국회를 열어야 한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단독 개의 강행 방향에 힘을 싣기도 했다.
하지만 당초 지난 30일 박찬대 원내대변인을 통해 “정 안 되면 단독으로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라며 한국당을 압박했던 민주당에서 31일 “오늘 국회 소집 요청을 하지 않기로 했다. 주말간 집중해 지속적으로 원내교섭단체와 접촉하겠다”고 한 발 물러서는 입장을 내놔 일단 민주당에서 공언했던 6월 3일 국회 정상화는 불발됐다.
당장 6월 국회를 강행하려 한다면 임시국회는 국회의원 재적 4분의 1 동의로 열 수 있는 만큼 128석의 민주당과 14석의 평화당, 6석의 정의당만 함께 해도 가능하겠지만 추경 처리가 핵심인 만큼 현재 바른미래당의 손학규 대표까지 3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방적으로 6월 3일까지로 기한을 정하고 합의가 안 되면 한국당을 빼고 국회를 소집하겠다고 한다. 민주당은 갈등과 대결의 정치를 조장하는 것을 중단하고 대화와 협치의 태도를 보여 달라”고 여당을 질타한 바 있기에 기껏 개회를 강행해봐야 정작 추경안 처리에 바른미래당의 협조도 얻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한국당의 국회 복귀 가능성이 없지 않을 거란 판단도 협상 여지를 남겨두게 된 이유로 꼽히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 박지원 평화당 의원은 3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최근 한미정상 간 통화내용 공개로 논란에 휩싸인 강효상 의원 사건을 들어 “국회를 여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그런 긍정적 해석도 가능하다”며 “일단 (한국당이 강 의원을) 내주지 않겠다 하는 것은 한국당이 국회로 들어와서 임시국회를 계속 소집해 강 의원을 지키려고 하는 방탄국회를 열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다만 민주당이 데드라인으로 잡은 6월 중순까지 추경안을 처리하기엔 오는 3일 개의한다 해도 지난 29일로 임기가 끝난 예결위를 재구성하는 문제나 추경 항목에 대한 야당과의 시각차 등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어 여유가 없는 만큼 그저 한국당을 패싱한 채 단독 개회하기 위한 ‘명분 쌓기’ 차원에서 협상을 제의하고 있다는 해석도 없지 않아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