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기획공연 "뙤약볕"
박상륭이라는 작가는 그의 골수팬들에게조차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인물이다. 그는 고도의 철학적 난제 - 동양철학 사상에 깊이 뿌리를 둔 - 를 극의 중심적 '갈등상황'으로 삼아, 인물과 사건을 모두 이에 맞게 배치시키는 작업을 연속하여, 어찌보면 자신의 '관념세계'를 체계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문학'이라는 장르를 이용하고 있는 듯한 인상마저 남기고 있는 것. 그래서 박상륭은 여전히 '문학의 사상적 깊이를 확보한 인물', 또는 '동양철학의 불가해성에 천착한 사기꾼'이라는 식의 양극적 평가가 이루어지는 인물이며, 또 어쩌면 이를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할 것이다.
이번에 문예진흥원 예술극장이 공연하는 <뙤약볕>은, 바로 박상륭의 원작소설 '뙤약볕'을 무대극화한 작품이다. 어느 섬에 수천년 째 내려오고 있는 '말(言語)'을 모시는 사당과, 이 사당을 지키는 당굴, 그리고 섬 주민들과의 여러 가지 관계를 통해, 인간에 있어 '말'이 어떤 위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말'을 신봉하는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탐구하고 있는 '퇴약볕'은, '죽음의 한 연구'로 대표되는 박상륭 문학의 어마어마한 난해성에 비하자면 상대적으로 상징과 은유가 뚜렷하고, 우화성을 강조하여 어느 정도 대중적 호응을 기대할 수 있는 작품이긴 하다. 연극 버전에서는 원작의 복잡하고 포괄적이며 풍부한 여러 함유들 중 '말'을 둘러싼 인간의 허영과 집착, 그리고 '말'을 통해 확보된 인간의 영특함이 결국 멸망으로 이끈다는 테마를 중심축으로 삼고 있는데, 사당을 중심으로 주위 상황을 에워싸 점차 안으로 죄여오는 형식의 원작구조를 대지의 당굴(백송)과 인간의 당굴(사당)을 대립시켜 양극적 갈등상황으로 재구성하는 등, '무대극화'의 측면에서 여러 노력을 기울인 모습이 엿보이고 있다.
비록 '크로스-장르'가 일반화된 시대라지만, 그럼에도 어떤 종류의 창작형태는 절대 다른 장르로 옮겨질 수 없는 법이다. <뙤약볕> 공연은, 과연 '문학'의 형태, '언어'의 형태로만 전달될 수 있으리라 여겼던 창작물이 '크로스-장르'를 시도할 때 어떤 진통과 딜레마, 아이러니를 탄생시키는지,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행해졌으면 어떤 성공과 실패를 겪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뜻깊은 무대가 될 것이다.
(장소: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소극장, 일시: 2004.06.19∼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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