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권 맹주들, 캐스팅보트 벗어날 채비
노장의 힘에 새 바람 더해져 탄력 받을 듯
4.25 보궐선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이번 선거는 비록 경기 화성, 대전 서을, 전남 무안·신안 3곳에서만 치러지지만 12월 대선을 앞두고 민심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선거란 점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대전 서을의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데 이유는 충청권을 잡는 당이 누구냐에 따라 대선의 윤곽을 점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만들기에 있어 충청권이 영원한 ‘캐스팅보트’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사실.
그런데 4.25 보궐선거를 앞두고 충청도에 연고를 둔 국민중심당의 수뇌부가 엇갈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 중심에는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와 신국환 전 공동대표, 그리고 이인제 의원이 있다.
이들 국민중심당의 BIG 3가 삐걱거리는 이유는 통합신당에 대한 이견차를 좁히지 못해서다. 신 전 대표가 범여권 통합신당에 매진하는 반면 심대표는 오로지 국민중심당만의 독자노선을 걷겠다는 굳은 심지를 꺾을 줄 모르고 있다.
창당 초기부터 국민중심당은 심대평과 신국환의 공동 대표체제를 유지했으나 통합신당에 대한 이견은 좁혀질 줄 몰랐다. 그러던 것이 지난 2월 신 전대표가 대표직을 사퇴하면서 두 사람의 다른 속내가 표면에 드러나게 됐다.
공동대표에서 각자의 길로
신 전 대표는 지난 2월 21일 기자회견에서 “중도 통합과 경제분야 역할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정치적 행보를 편하게 하고자 사퇴를 결심했다”고 사퇴의 명분을 밝혔다. 국중당 관계자는 “표면적으로는 4.25재보선을 준비 중인 심대평 대표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대표직을 물러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심 대표와 통합신당에 대한 입장이 맞지 않아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해 두 사람의 입장차를 확인시킨 바 있다.
당시 신 전 대표의 사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4.25재보선 이후 탈당해 통합신당쪽으로 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기도 했다. 지난 총선 한나라당 강세지역인 경북 문경. 예천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신 전 대표가 다음 총선에서 국민중심당의 이름표를 달고는 재선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 또한 탈당설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이렇게 직·간접적으로 끊임없이 통합신당의 창당을 주장해오던 신 전 대표는 급기야 지난달 20일 “4월 초 열린우리당 및 통합신당모임, 민주당, 전진코리아 등이 참여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이날 열린 영주 뉴라이트 발대식에서 한 발언으로 중도세력을 중심으로 한 통합신당의 탄생을 예고했다. 그는 구 범여권의 통합세력만이 아니라 손학규 전 지사 및 손 전 지사의 정치기반으로 거론되는 전진코리아까지 통합신당에 포함시킨다는 뜻을 내비춰 눈길을 끌었다. 그
러나 손 전지사측이 “4월초 신당을 만들거나 소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불참의사를 밝혔고 전진코리아 김윤 대표 역시 기존의 통합신당 세력과 함께 할 뜻이 없다고 해 신 전대표의 계획에 제동을 걸고 있다.
그러나 신 전 대표는 이 같은 잡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통합신당의 각 세력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많은 고민을 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운을 떼면서도 “4월 초에는 고민들이 해소되 통합신당의 정치세력이 나타날 것”이라 거듭 주장했다.
이처럼 신 전 대표가 당 대표직을 사퇴하면서까지 통합신당의 탄생에 목을 매고 있을 때 심대평 대표는 독자노선을 걷는다는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고집을 꺾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연합공천이나 통합신당 등의 단어에 알레르기를 일으킬 정도로 정치외길인생을 안팎에 내보이고 있다.
그의 지독한 소신은 4.25보궐선거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열린우리당과 국민중심당의 연합공천을 완강히 거부하면서 만천하에 드러났다. 심대표는 수차례의 기자회견등을 통해 공식적으로 연합공천을 수용할 뜻이 없음을 밝혀왔고 충청인을 대변하기 위해 창당한 국민중심당이라는 이름을 걸고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겠다고 공언해왔다.
심대표의 변치 않는 뚝심에 애가 타는 쪽은 열린우리당이다. 열린우리당 소속 대전지역 4명의 국회의원은 지난달 27일 회동을 갖고 다가오는 보궐선거에서의 후보공천문제를 논의했다. 의원들은 무공천으로 심대평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심대표가 대통합신당에 대해 부정적이라면 의미가 없다는 쪽으로 결론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다시 한번 심대표의 결단을 촉구하면서 최대한 기다려 보자는 신통찮은 아웃풋만을 내 뾰족한 진척을 내지 못했다.
이처럼 당 안팎에서 독자노선을 걷고 싶어 하는 심대표를 압박하고 있지만 심대표는 4.25 보궐선거에만 집중하고 있는 상태다. 당대표가 보선에 출격했기 때문에 그를 돕는 손길도 분주하다. 심대표의 캠프에는 중앙당과 시ㆍ도당 당직자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고 심예비후보와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인사들도 외곽에서 측면 지원을 쏟아 붓고 있다.
이에 탄력을 받아 대전서구을의 후보 가운데 심대표는 35.5%의 지지도를 자랑하며 지지도 37.0%를 보이며 1위를 달리는 한나라당 이재선 후보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이는 한 언론사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5일 대전 서구을 지역 내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유권자 5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로 이재선 후보와 오차범위 내에서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죽지 않는 노장과 걸출한 신예
국민중심당이라는 같은 조직에 몸담은 두 사람의 노선이 판이하게 다른 상황에서 또 다른 국중당의 중심, 이인제 후보의 발언과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도 아직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인제의원은 손학규 전 지사의 탈당으로 오랜만에 눈길을 끌고 있다. 손 전 지사가 제2의 이인제로 불리며 ‘이인제 학습효과’란 불명예를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의원은 손 전지사의 탈당 직후 손 전지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자신의 홈페이지에 손 전 지사를 적극 옹호하는 글을 올려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그는 ‘개척자의 길은 외롭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손 전 지사는 시대가 요구하는 명분과 대의를 위해 절벽에서 민심의 바다를 향해 몸을 던진 것”이라고 한껏 손 지사를 추켜세웠다.
이의원은 또 지난달 한 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해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큰 길에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며 새로운 정치세력 결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치적 입지를 모색하고 있는 이 의원이 탈당을 생각하는 것으로 해석을 하고 있어 위태위태한 기류가 흐르는 국중당에 또 하나의 금이 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렇게 4.25보궐선거, 더 나아가 대선을 앞두고 국민중심당에 파열음이 나고 있는 상황에서 충청권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정운찬 서울대 전 총장이다. 정 전 총장은 공식적으로는 정치권에 입문할 뜻이 없다고 주장해 왔지만 최근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등 사실상 정치활동에 들어갔다. 범여권의 대선후보 영입 1순위로 꼽힐 정도로 신임을 얻고 있는 정 전 총장은 다름 아닌 충청도 출신이다.
그는 최근 연이어 충청권을 방문해 동향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이 충청도 출신임을 강조하는 행보를 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보궐선거에 그의 입김이 얼마나 작용할지, 더 나아가 대선에서 충청권의 표심을 움직일 수 있을 지에 관심이 집중되며 충청권의 또 다른 맹주로 급부상하고 있다.
여기에 JP,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빠지면 섭섭하다. 새싹도 돋지 않지만 베어 버리기엔 인력도, 공백도 큰 것이 고목나무. 충청도에서 김종필 전 총재는 이 고목나무처럼 버티며 여러 루트를 통해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의 힘이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준 것이 지난 1월 이른바 ‘120만원 짜리 식사’라는 물의를 일으켰던 한나라당 강재섭 의원과의 회동이다. 이 회동은 충청권세력과의 연대를 원하는 한나라당에게 김종필은 여전히 쓸모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반증하기도 했다.
영원한 엑스트라에서 주연으로
비록 세력을 한곳에 집결하지 못하고 있지만 JP의 힘과 범여권이 새로운 희망으로 내세우는 정운찬이라는 새 바람이 더해진다면 국민중심당도, 충청권도 한 단계 도약이 가능한 시기가 도래하지 않을까 점쳐진다.
정치에 있어 늘 변방에 머물러 있던 충청도. 이 충청권이 전략적 요충지나 캐스팅보트에서 벗어나 날개를 펴고 당당히 정치권의 한축을 차지할 수 있을 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