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어느덧 3차례나 김정은과 대면 회담을 했지만 오히려 기대하던 ‘완전한 비핵화’에선 한 발 물러난 ‘핵 동결’ 이야기가 벌써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입에서 흘러나오는 등 비핵화 협상 과정은 당초 목표한 바와 달리 날로 꼬여가는 모양새다.
수차례 남북·미북정상회담까지 했음에도 ‘만남을 위한 만남’이었을 뿐 협상이 제대로 진전되지 않고 계속 겉도는 데에는 본질인 북한 비핵화보다 관계당국들이 제각각 다른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사료된다.
이미 핵무기를 손에 쥔 김정은은 말로만 비핵화를 외칠 뿐 지난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이전엔 본인이 직접 노동당 고위간부를 대상으로 한 비밀 강연에서 ‘핵 포기 불가’를 거듭 천명했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정치적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국내 여론의 눈길을 돌리는 정략적 수단 정도로 비핵화 협상을 보고 있으니 제대로 될 턱이 있겠는가.
심지어 북핵으로 안보 위협을 받는 당사국이자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리나라는 이런 상황을 타파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도리어 양측의 그 같은 ‘동상이몽’에 편승해 표면상 평화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에만 집중하면서 이들과 다를 게 없이 안보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들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1차 남북정상회담을 대통령 지지율 상승의 촉매제로 삼은 데 이어 지방선거 하루 전 열린 6·12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은 다음 날 치러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도약대로 활용했고 지난달 30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선 아예 북한보다 더 앞장서서 남북 경협 재개에 열을 올리는 조급증까지 보였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2월 28일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선 자신이 베트남 하노이로 날아온 사이 미국 민주당에서 ‘러시아 스캔들’ 관련 청문회에 기습적으로 마이클 코언을 불러내자 북한과의 협상보다 코언 청문회장으로 이미 마음이 떠난 트럼프 대통령은 ‘시선 돌리기’를 목적으로 회담을 전격 결렬시키는 ‘노딜’을 단행했고 최근엔 민주당 대선후보들에 비해 여론 지지도가 밀리면서 지난달 26~27일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회에 미국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니 30일 판문점 3차 미북정상회담으로 또다시 ‘시선 돌리기’를 시도했다.
이렇듯 문 대통령이나 트럼프 대통령이나 실질적인 회담 진척보다는 북핵문제를 그저 미국 여론을 집중시키기 위한 쇼 정도로 활용하고 있는데, 이러다간 지난 3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우려했듯 내년 총선을 앞두고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깜짝 답방이나 정전선언 같은 정치적 이벤트나 또다시 벌이고, 트럼프 대통령도 내년 11월 있을 본인 대선을 위해 박지원 의원이 지난 2일 전망한 것처럼 ‘9월 중 김정은 방미’나 추진하는 것 아닌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이벤트를 무작정 부정적으로 보겠다는 게 아니라 북한은 한반도에서 미국의 전술핵까지 철수했음에도 여전히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막연한 이야기로 호도하면서 지금도 한반도에서 한참 떨어진 미국령 괌에 있는 전술핵까지 철수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등 진정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핵 포기 의지가 안 보이는 상대에게 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에도 압박은커녕 마치 여지를 주는 듯 “영변의 핵시설 전부가 검증 하에 완전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라고 주장한 바 있고, 이미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최종 결렬 이유가 영변 이외 핵시설 추가 폐기 문제 때문이었지만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한미정상회담에서도 다시금 영변 핵 폐기만을 내세워 남북 경협 재개를 요청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거절당하는 망신을 당했다.
그런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일방통행 하겠다는 건지 민주당에선 설훈 최고위원이 지난달 29일 모스크바에서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만나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제안했다고 4일 공개했고, 통일부도 5일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재개를 추진할 것”이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비핵화 협상이 일단 ‘핵 동결’ 쪽으로 갈 거라는 뉴욕 타임즈 보도를 즉각 부인할 정도의 매파인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교체설이 최근 흘러나오고 있고, 비둘기파인 비건 대표가 그 후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어 차기 대선으로 속 타는 트럼프마저 결국 ‘핵보유국 인정’ 등 점점 김정은 입맛에 맞추는 움직임을 보이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김정은과의 판문점 ‘깜짝 회동’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민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에 냉정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점인데,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이 지난달 28일∼이달 1일 1천8명의 전국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전화면접 방식으로 공동조사해 7일 발표한 트럼프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취임 이후 최고치인 44%를 기록했으나 민주당 어느 대선후보와 맞붙어도 여전히 이기지 못하는 것으로 나온 데다 외교 분야의 경우 반대가 55%로 나올 만큼 부정적이어서 ‘정상회담 쇼’는 더 이상 미국 국민에게도 통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북한 핵 문제도 아직 해결 못한 판국에 최근엔 이란 핵 문제까지 다시 불거질 조짐을 보이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과거와 같은 초강경 전략으로 급선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최소한 지금과 같은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비핵화처럼 보이는 ‘위장쇼’는 결과적으로 한미 양국 모두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부디 유념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