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호주머니 속으로 GO~
엄마 아빠 호주머니 속으로 GO~
  • 김봄내
  • 승인 2007.04.07 12: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제적 자립 못하는 ‘캥거루족’

떳떳하게 경제활동을 하며 정상적인 성인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부모의 호주머니에 파고 들며 의지하려는 이른바 ‘캥거루족’이 늘고 있다. 캥거루족은 대학을 졸업해 자립할 나이가 됐는데도 취업을 하지 않고 부모에게 얹혀살거나, 취직을 한 뒤에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들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취업을 할 나이와 능력이 되는데도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다.

이 캥거루족이란 신조어는 2000년을 전후해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면서 2004년 무렵 생겨났다.

5·60대, 자식들 용돈벌이에 매진

캥거루족이 늘면서 피해를 보고 있는 세대는 캥거루족의 부모인 50~60대. 젊은 날 자식건사를 위해 뼈 빠지게 일했던 이들이 그 자식들을 위해 다시 일터에 뛰어들고 있다.

정년퇴직을 하고 남은 인생을 즐길 나이의 박모(58)씨는 현재 한 빌딩 주차관리원으로 일하고 있다. 한때 사장님소리까지 들으며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남부러울 것 없던 박모씨가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재취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서른 살 먹은 아들 때문이다.
현재 백수신세인 아들은 휴대전화와 인터넷요금, 수시로 다니는 면접비용에 술값까지 한 달에 약 50만원의 돈을 받아가고 있는 터라 하는 수 없이 월 100만원이 조금 넘는 급여를 받으며 주차관리를 하고 있는 것.
박씨의 아들이 처음부터 부모에게 손을 벌렸던 것은 아니다. 2년 전 아들은 남들이 선망하는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1년 만에 직장을 잃었다.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재계약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후 1년간 아들은 재취업을 위해 이곳저곳 이력서를 넣고는 있지만 취업은 되지 않았고 지금은 거의 구직활동을 포기한 채 아버지에게 기대 살고 있다.
돈벌이를 하지 못하고 낙담해 있는 30세의 아들을 보던 아버지는 위기감을 느꼈고 아들을 대신해 허드렛일을 하며 생활해 나가고 있다. 박씨는 “생활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아들의 용돈”이라며 “ ‘한때 직원들을 거느리며 사장노릇을 하던 사람이 아들 잘못 둬 저런 일을 하네 ’라는 식의 시선이 따갑긴 하지만 지금 하는 일에서 손을 놓을 수 는 없는 형편”이라고 털어놨다.

노동연구원은 우리나라의 캥거루족 규모를 지난 2004년 8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했다. 90년대 중반만 해도 20만~30만 명에 불과했던 캥거루족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것이다.

부모의 호주머니를 터는데 맛이 들어 폭행까지 서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달 마흔을 눈앞에 둔 한 남성이 아픈 아버지를 폭행해 보다 못한 어머니가 아들을 손수 신고한 사건이 발생했다. 전북 진안에 사는 39세의 A모씨는 지난 달 18일 자정을 넘어 선 시각 만취해 귀가한 뒤 아버지 B모씨(71)를 마구 때리고 말리는 어머니까지 폭행했다.
A씨가 이 같은 패륜을 저지른 것은 아버지가 술값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이번뿐만 아니라 수년 전부터 넉넉히 용돈을 주지 않는다며 부모를 상습적으로 폭행해 왔다.
사춘기 청소년이나 할 법한 용돈투정을 서른이 넘어서까지 계속 해오던 A씨는 급기야 아버지가 복막염으로 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와중에도 용돈을 달라고 떼를 쓰며 폭행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모는 아들의 행각이 드러날까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데다가 보복을 두려워 한 이웃들이 신고를 꺼려 아들의 파렴치한 손찌검은 몇 년째 계속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달 18일 보다 못한 어머니가 남편이 어떻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에 112에 다이얼을 눌렀고 아들은 철창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처럼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부모의 등골을 휘게 만드는 캥거루족들. 이는 비단 한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청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학자금이나 주택구입비 때문에 빚쟁이가 되 도로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미성년딱지만 떼면 부모 곁을 떠나 경제적인 독립을 했던 과거 미국의 모습은 옛말이 되 버렸다. 직장을 가진 20대의 58%가 생계비를 아끼기 위해 집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통계결과도 있다.

일본의 경우 이 캥거루족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30대 초반 일본남성 중 절반이 부모 곁을 떠나지 않고 가사지원이나 주거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에 대해 미혼 또는 만혼현상으로 분가시기가 늦어진데다 비정규직 증가 등으로 부모에게 의지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부모에 의존해 삶을 꾸려가며 자립을 미루는 이들 세대에 ‘부메랑 키즈’라는 이름을 붙였다. 던져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부메랑’에 비유한 용어다.

영국에서는 캥거루족을 ‘키퍼스’(Kippers)라고 부른다. 이들은 물가상승의 피난처로 부모의 품을 택해 부모의 퇴직금, 연금으로 생활한다.

또 이탈리아에서는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에서 벗어나기를 거부한다는 뜻의 ‘맘모네’(Mammone)라는 말이 유행이다. 이탈리아에는 예전과 달리 지난 5년간 부모와 함께 사는 성인이 급증해 현재 50%에 이른다.

이렇듯 여러 가지 용어를 양산해 내며 부모에게 의존하는 젊은이가 늘어나면서 부모와 자식간의 보이지 않는 경제적 원칙이 깨지고 있다. 지금의 5·60대가 20대였던 1960년대에는 성인이 된 자녀가 취업과 결혼을 해 자립하는 것이 일반적인 가족관계의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신들을 키웠던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뒷바라지 했다. 어릴 때 부모에게 받은 경제적 지원을 경제력이 생기면 부모에게 되돌려주는 원칙이 캥거루족의 등장으로 깨지고 있는 것이다. 계속되는 취업난과 높아진 결혼 연령, 그리고 가족관의 변화 등으로 가정의 모습마저 변화시킨 것.
전문가들은 캥거루족 자녀를 둔 부모에게나 예비 캥거루족 부모에게 “자식에게 절대 돈 줄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단호히 충고한다.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장은 자녀가 호주머니 속으로 파고들지 않을 방안을 제안했다.
첫 번째는 ‘자녀가 20세가 되면, 완전한 주거·경제적 독립 시기를 언제로 할 것인지 서로 협의할 것’이다. 즉 경제적 지원을 끊을 구체적 시점을 정해줘 미리 계획하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결혼한 자녀의 육아나 살림에 간섭하거나 관여하지 말 것’. 강 소장은 “반찬을 못 만들어 밥을 굶든 카드 빚 때문에 허덕이든 결혼한 이후의 자녀생활 문제는 부모의 삶에서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 부모에게도 자식에게도 약이 된다”고 조언했다.
세 번째는 ‘독립한 자녀가 부모 집을 찾아올 경우에는 미리 연락을 해서 허락을 받도록 할 것’이다. 매정한 방법일지 모르나 분가한 자녀가 집에 불쑥 찾아오는 일이 반복되면, 독립한 뒤에도 부모와 자녀의 소속 및 재산 영역 구분이 흐려져 자립심이 저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잉보호가 철없는 어른 만들어

독일의 교육학자 알베르트 분슈는 저서 ‘아이에게 노(NO)라고 말하라’에서 부모의 자녀를 향한 과잉보호를 “사회를 병들게 하는 마약”이라고 까지 표현했다.
자식에 대한 과잉보호로 ‘일하지 않아도 좋으니 나처럼 고생하지 말고 곱게만 살아라’는 식으로 자식들을 감싸고 도는 부모들이 캥거루족을 양산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헬리콥터처럼 자식의 머리위에서 맴돌며 지원해 줄 거리를 찾는 부모가 있는 한 초원이 아닌 부모 곁의 ‘어른’ 캥거루들은 늘어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근본적인 원인은 취업의 문턱에 들어서기도 전 지레 겁을 먹고 부모의 호주머니를 터는 ‘어른’이겠지만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