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의 <달리, 나는 천재다!>
뛰어난 예술가의 '자기고백성' 글, 즉 일기, 서간, 에세이 등을 읽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작가주의에 대한 탐구의 태도로써, 과연 작가의 어떤 고통, 갈등, 상처가 그의 작품세계에 배어나게 되었나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나와는 다른, 어쩌면 우리 주위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른 특이한 삶을 산 이의 의식세계를 관음증적인 욕구에 의해 한번쯤 들여다보고 싶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서적 관음증'이 대개 타인과 자신의 정서적 약점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함임을 생각해볼 때, 20세기 미술계의 '수퍼스타' 살바도르 달리가 1952년부터 1963년까지 써온 일기를 담은 책 <달리, 나는 천재다!>는 이런 욕구에서 지나치게 '오버파'해버려 과부하를 일으키는 경우일 것이다.
<달리, 나는 천재다!>는 오만방자함, 안하무인의 행동, 자아도취에 빠진 한 예술가의 면모를 자질구레하게 담아내고 있다. 초현실주의 운동에서 축출된 뒤, 진정한 초현실주의자는 자신 밖에 없으며, 자신은 모던 아트의 구원자 역할을 맡고 있다고 큰소리를 치는 한편, 세대를 초월한 여러 예술가들을 '품평'하며 '평가표'까지 만들어 이들을 재단하는 달리는 그 자체로 괴팍스런 기인이자 과대망상증을 앓고 있는 존재로 비쳐지며, 자신의 대변 냄새를 없애기 위해 귀 뒤에 자스민 꽃을 꽂고 변기에 앉는 에피소드나, 정어리 기름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파리떼가 자신을 뒤덮기를 기다리는 에피소드 등에선, 예술가적 '기행'을 넘어서 정신분열증 환자의 '괴행'에 가깝다는 인상까지 들고 만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달리를 '20세기의 달리'로 만들어주었던 독특한 사상적 배경과 카톨릭적 가치관이 사뭇 진지한 논조로 씌어있기도 해, 이 기묘한 예술가의 복잡다단하고 예측불가능한 의식세계에 두 손을 들게 만드는데, 베트남전 이후 등장한 예술가들의 기행을 이해하려 할 때 '마약'이라는 소재가 빠질 수 없는 반면, 달리의 경우 그 자신이 이미 가장 지독한 종류의 끊을 수 없는 '마약'이며 '신경자극제'이고 '독주'였다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을 읽는 일은 한 예술가의 내면 세계를 탐구한다기보다 환타스틱한 '멘탈-롤러코스터'를 타는 일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전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느낌은 달리가 세상에 던져놓은 그 기괴하고 아름다운 그림들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과 무서우리만치 흡사하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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