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지콰이'의 "Instant Pig"
생각해보면, 서구에서 들어온 음악 장르는 어쩔 수 없이 '한국화'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메인스트림에 진입하게 되고, 이 '한국화'의 과정도 굳이 장르의 데카당스라 여겨져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르의 정착화, '민족성'이라는 필터로 걸러낸 또다른 신종 장르의 탄생으로 바라봐야 할 듯도 싶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그 '한국화'라는 것이 '좋은 결과'를 낳은 경우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이다. 결국은 장단각치우 5음계로 쳐들어가며 장르의 성격 자체를 뒤바꿔버리고, 오직 그 겉외양, 사운드의 외양, 차림새의 외양, 악기구성의 외양만이 남아 이것이 과연 제대로 소화된 신종쟝르인지, 겉옷만 걸쳐입은 유사장르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게 소위 '한국화'된 서구음악의 '지금까지의' 흐름이었던 것이다.
인터넷에서 시작된 화제를 마침내 음반시장에까지 불어넣은 '클래지콰이'의 1집 "Instant Pig"을 듣는 일은, 분명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유쾌하다 못해 경탄이 절로 나올 정도의 '이벤트'이다. '뽕끼'서린 신디사이저 범벅 음악이 '정통 일렉트로니카'로 둔갑하곤 하는 우리 메인스트림 음악 풍토에서라면 더욱 그러한데, 최근 유행의 급물살을 타고 있는 부드러운 튠의 일렉트로니카 - 홍보사 쪽에선 '새로운 단어'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을 위해 그닥 많이 쓰지 않는 표현인 '칠아웃-라운지'라는 장르명을 꿋꿋이 고집하고 있다 - 를 소화해내는 데 있어서, 일렉트로니카 특유의 날카로움과 섬세함, 신경증적인 일면을 그대로 살리면서 동시에 귀에 착 달라붙는 그루브감을 면면이 확보해내고 있는 "Instant Pig"은 편곡과 곡 전체를 아우르는 방향성 면에서 탁월한 세련미를 갖추고 있으며,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으면서 딱 적당한 '체구'의 사운드로 듣는 이의 정서를 여유있게 휘어감고 있다. 기교과잉도 아니며, 그렇다고 지루하게 곡을 이끌어가는 애시드 재즈적 실수도 범하지 않는다. 심장박동수와 맞아떨어지는 리듬을 곡 전체에 부여하면서, 딱 정확한 곳에서 흐름을 비틀어 새로운 튠으로 전환시키고, 깔끔하고 단정하게 - 블루지한 파트조차 단정하게 느껴진다 - 전체 심상을 정리해낸다. 이 정도로 완성도 높은 국내 일렉트로니카 음반을 과연 들은 본 일이 있기나 한걸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 그러나 또다른 생각이 밀려들어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 정도 퀄리티의, 같은 방향성을 지닌 음반은 본국에 널리고 널리지 않았는가, 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
이른바 '서태지 딜레마'라고 불리우는, '오리지널'의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여 탁월한 테크닉으로 되살려놓기는 했어도, 여기서 단 한발짝도 더 넘어서는 부분이 없기에 느껴지는, 앞서 말한 진정한 '한국화'의 과정이 결여된 데서 느껴지는 지루함과 실망감이 아마도 "Instant Pig"을 듣고 난 뒤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흥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의 의미를 알고, 가치도 알고 있다. 이 정도로 완벽하게 서구문화를 이해하고 또 재현하기란, 이를 다시 '한국화'시켜 재해석하는 과정만큼이나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지콰이'의 1집은, 여전히 '심심'하며, 도무지 '재미'를 붙일 수가 없는 음반이다. 분명히 훌륭한 음반임을 알고, 그 감수성에 푹 젖어 즐거움을 느꼈는 데도 말이다. 이는 어쩌면 우리가, 성실함으로 일궈낸 완성도보다 재기와 치기로 탄생된 '충격'을 더 살갑게 받아들이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사고방식에 '중독'되어 벌어진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