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댓글조작을 벌인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구속 77일 만인 지난 4월 17일 보석을 허가 받고 나온 지도 어느덧 석달 보름이 흘렀다.
사실 드루킹 측에 센다이 총영사직을 제안한 적 없다고 했었다가 추천해주겠다는 취지로 말했을 수도 있다고 번복하는 등 그간 능청스럽게 ‘말 뒤집기’를 해왔던 그의 전력을 돌아보면 증거 인멸 가능성이 상당한데도 드루킹 일당은 누구 하나 석방된 이 없는데 김 지사만 풀어준 것 역시 의문이지만 지난달 22일 비슷한 수준으로 보석 석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조차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일단 신중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음에도 김 지사만 마치 무죄 선고라도 벌써 받은 듯 거리낌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데에서 더 개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이미 보석 허가가 나오기 이전인 지난 3월 19일에도 항소심 첫 공판에서 “1심은 ‘이래도 유죄, 저래도 유죄’라는 식이었다”고 노골적으로 사법부 판결에 불복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던 김 지사는 보석 허가를 받고 풀려났던 4월 17일에도 서울구치소에서 나오자마자 “1심에서 뒤집힌 진실을 항소심에서 반드시 바로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진실은 아무리 멀리 던져도 반드시 돌아온다”며 적극 결백을 주장한 바 있다.
물론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겠지만 그토록 유죄 판결에 불신을 드러냈던 만큼 오히려 결백을 증명하고 싶다면 논란의 소지가 일어나지 않게끔 최소한 보석기간 동안엔 스스로 조심하는 모습을 보여야 좀 더 객관적으로 비쳐질 수 있고, 또 그래야 마땅하나 첫 특검 출석 당시 지지자에 둘러싸여 출석한 데 이어 1심을 맡았던 성창호 부장판사의 경우 법원 출퇴근에도 신변보호까지 받아야 될 정도로 그동안 법원을 압박하고 여론전에 의존하려는 태도를 보여 온 그였기에 보석 이후 행보 하나 하나에도 의문부호가 붙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듯 보석으로 풀려난 지 한 달 남짓 됐던 지난 5월 22일엔 재판 일정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참석 못하게 됐다는 심경을 페이스북을 통해 밝히면서 “제가 이겨내야 할 운명”을 운운하는 등 1심 판결에 불복하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내비쳤고, 그로부터 한 달도 안 지난 6월 10일엔 문 대통령의 복심이라 불리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만나기까지 했다.
특히 현 정권 실세인 양 원장이 야인 시절도 아니고 내년 총선과 관련된 요직을 맡은 가운데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김 지사를 굳이 만났다는 점도 충분히 구설이 될 만하지만 이 자리에 아예 “선거 치르면서 접근하는 사람들을 안 만날 수가 없는데 (김 지사가) 착하니까 그 바쁜 와중에 그런 (드루킹 일당 등) 친구들까지 응대하다 생긴 일이니 짠하고 아프다”고 두둔한 데 이어 “그런 일은 선거판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다. 도지사 되고 차기 (대선) 주자가 되면서 겪는 시련인가 싶다”고 무죄를 확언하는 듯한 발언까지 거리낌 없이 쏟아냈다.
1심은 유죄가 나왔고 현재 진행 중인 2심도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현 정권 실세가 이미 대법원 판결까지 어떻게 나올지 예단한 듯 김 지사를 차기 대선주자라 표현한 것도 문제인데, 지난 7월 24일엔 문 대통령까지 직접 부산으로 내려와 시도지사 간담회를 이유로 김 지사와 만났고, 불과 일주일도 안 된 30일에도 거제시 저도 개방 발표를 내세워 또다시 김 지사와 함께 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전히 진행 중인 항소심에선 킹크랩 시연회에 김 지사가 당일 참석했는지를 놓고 공방이 오가는 민감한 상황임에도 대통령 최측근이 적극 비호하는 발언을 내놓고 급기야 대통령까지 일주일새 두 차례나 김 지사를 대동한다면 현 정권이 헌정 사상 최초로 대법원장도 구속시킨 판국에 사법부에서 이런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더구나 문제의 댓글조작은 현 대통령이 당선된 대선 때에도 이뤄졌다는 점에서 볼 때 사실상 피고와 이해당사자가 함께 하고 있는 이 상황은 누가 봐도 사법부에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것이라 볼 수밖에 없지 않겠나. 부디 필자의 이 같은 우려가 사실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