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손학규 대표를 둘러싼 당권 투쟁 양상으로 흘러가던 바른미래당 내홍이 결국 분열을 확대시킬 정체성 문제로 다시 돌아가는 모양새다.
당내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자유한국당과 보수통합할 가능성을 줄곧 의심해온 손 대표는 자신에 겨냥한 사실상의 대표직 퇴진 압박을 묵살한 채 유승민 전 대표를 직격하기 시작했고, 유 전 대표도 즉각 맞대응에 나서면서 이젠 정계개편설 진실공방으로 비화되는 상황인데, 만일 둘 중 어느 한 쪽이 거짓말한 것으로 확인될 경우 정치적 타격은 자칫 분당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역린 건드린 혁신위? 혁신안 상정 안 되자 지도부 공개검증 강행
당초 정체성이 다른 이들이 모여 만든 당인 만큼 지도부 내 신경전을 불식시키고자 대신 내세웠던 바른미래당 혁신위원회가 최근에는 오히려 당 내홍을 점점 확대시키는 중심에 서고 있는데, 지도부 재검증을 위한 혁신안을 최고위에 상정해달라고 요구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총선승리를 위한 당 지도부 인사 비전 공개검증 참석 요청 공문을 발송하는 등 자체적으로 지도체제 혁신안을 집행하려는 움직임에 들어갔다.
주대환 혁신위원장 자진사퇴 사태 이후 위원장 공석 상태가 지속되던 혁신위에선 지난달 31일 장지훈 간사를 위원장 대행으로 삼아 정상화에 나섰고, 장 간사는 1일 “혁신위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당 지도부의 당규 위반과 직무유기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 지도부의 면밀한 비전 검증을 통해 당 내홍을 종식시키고 다가오는 21대 총선 승리의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며 손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전원에 공개검증 공문을 발송한 바 있는데, 지난달 24일부로 최고위 보이콧에 들어간 오신환 원내대표, 이준석 최고위원 등 비당권파에선 즉각 이에 호응했다.
빈말이 아니라는 듯 혁신위는 5일 지도부 공개검증을 전격 강행했는데, 먼저 무편집 방송으로 오신환 원내대표와 권은희 최고위원에 대한 공개검증을 1시간~1시간 30분씩 진행하고, 오는 6일엔 김수민·이준석 최고위원이 검증에 나서기로 하는 등 차근차근 일정을 진행하면서 이번 공개검증에 불참하는 당권파 측을 압박했다.

특히 8일부터 10일까지 바른미래당 지지자와 무당층 대상으로 여론조사도 진행해 11일에 결과를 발표하기로 예고한 만큼 손 대표를 비롯한 당권파에선 일단 자체적으로 총선 비전을 담은 ‘손학규 선언’을 이달 중순경 발표해 맞불을 놓을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무시할 수만 없다는 점에서 초조해진 속내를 감추지 못했는지 혁신위의 공개검증이 이뤄지기 전까지 당권파 측은 이를 지속적으로 거세게 비판해왔다.
먼저 손 대표가 지난 2일 열린 ‘반쪽짜리’ 최고위 회의에서 “당의 앞날에 대한 걱정이 클 것으로 생각하는데 정상적인 당 운영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비당권파의 압박에 맞선 데 이어 임재훈 사무총장도 “혁신위 규정에 따르면 위원장만 회의 소집할 수 있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혁신위원 일부가 주장하며 진행하는 공개검증 및 여론조사는 정당성도, 구속력도 없다”며 “간사 체제에 의한 공개검증은 일방적이고 자의적 판단이다. 변칙적 일탈행위를 지속하면 사무총장으로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혁신위에 경고했다.
◆ 혁신위의 ‘검은 배후’ 파동, 결국 배후자(?)끼리 전면전으로
그러자 혁신위원들도 같은 날 보도자료를 통해 “임 총장의 발언은 정상적 의결 절차에 따라 혁신위가 추진하고 있는 제1차 혁신안 집행을 무력화하겠다는 뜻”이라며 “임 총장 뿐만 아니라 손 대표는 당규 위반(혁신안 처리 의무 거부) 등으로 윤리위원회에 제소된 상태인데 당헌당규를 위반하면서 비정상적으로 당을 운영하는 지도부가 혁신안의 집행을 변칙적 일탈이라고 규정한 것은 오히려 혁신안 집행이 정당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라고 당권파에 응수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들은 “당 대표면 당 대표답게, 사무총장이면 사무총장답게 처신하는 것이 지금의 바른미래당을 둘러싼 내홍과 잡음을 불식시키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며 “더 이상의 일탈과 당규 위반 행위는 삼가고 당원과 지지자로부터 당을 강탈하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도리어 맞받아쳤는데, 이 같은 반응에 급기야 지난달 11일 혁신위원장직에서 전격 물러났던 당권파 측 주대환 전 혁신위원장까지 4일 재등장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른바 혁신위를 배후에서 흔든 ‘검은 세력’으로 유승민 전 대표를 지목했다.
여기서 주 전 위원장은 “계파 수장이 가장 강경한 입장이고 또 직접 개입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유 의원은 뒤에서 조종하지 말고 앞으로 나와 지도자답게 이 나라를 구할 야당 재건의 길을 밝혀주기 바란다”며 “(유 의원이) 지도부 교체 이외 다른 혁신안들은 모두 사소하고 가치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지난달 7일 이혜훈 의원이 만든 자리에 기대를 갖고 나갔지만 크게 실망했다”고 유 전 대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앞서 ‘혁신위가 손학규 퇴진만 얘기한다’며 위원장 사퇴를 선언한 바 있던 주 전 위원장은 이번 회견 직후에도 기자들에게 “유 의원이 그런 태도를 견지하는 한 양쪽이 동의하는 절차는 만들어갈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라고 비당권파 측을 직격했는데, 비당권파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주 전 위원장의 회견이 열린지 30분 만에 이기인 혁신위원이 ‘맞불’ 회견을 열어 “혁신위원들을 회유하고 종용한 검은 세력은 바로 주 전 위원장이고 주 전 위원장을 조종한 검은 세력이 손 대표”라고 당권파에 역공을 가했다.
그러면서 이 위원은 “주 전 위원장이 어떻게 저런 새빨간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놀라움을 넘어 경악스럽다”며 ‘명분 있는 퇴로를 만들어서 (손 대표) 쫓아야 한다’, ‘나는 지금 손 대표의 뒤통수를 치는 거다’. ‘손 대표 측은 자신이 손 대표 퇴진을 막아내길 바라고 있다’, ‘손 대표 주변 문병호 최고위원과 장진영 실장도 손 대표로 총선 치를 생각이 없다’는 발언들을 다시 상기시킨 뒤 “혁신위 출범 직후인 지난 7월 3일 주 전 위원장이 권성주 혁신위원을 회의장 별실로 불러 나눈 이야기로 16분 43초 분량 녹취파일도 공개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 위원은 “현재 우리 당은 창원 보궐선거의 불법 여론조사로 고발된 상태인데 어제 불법여론조사에 관련된 당직자 징계에 손 대표가 개입해 해당 당직자의 징계를 철회시켰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이제 손 대표가 나서야 한다. 모든 문제는 손 대표만 해결할 수 있다”고 몰아붙였는데, 결국 손 대표도 작심한 듯 5일 최고위에서 “지난달 7일 이혜훈 의원이 주선해 유 의원과 주 전 위원장이 만난 자리에서 유 의원은 주 전 위원장에게 혁신위에서 손학규 퇴진을 우선해달라는 얘기를 했다. 한국당 가려면 혼자 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 한국당과의 보수통합설…오해인가, 정략인가, 진실인가
한 발 더 나아가 손 대표는 “손학규를 퇴진시킨 이후 개혁보수로 잘 포장해 한국당과 통합할 때 몸값을 받겠다는 건데, 제가 이 수모를 당하면서 버티는 이유는 다당제의 초석인 바른미래당을 지키겠다는 마음”이라며 “한국당, 더불어민주당, 민주평화당과 통합하지 않을 것이다. 바른미래당은 합리적이고 새로운 정치세력이 모이는 큰집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에 즉각 유 전 대표도 보도자료를 내고 “지도부 교체는 제가 주 전 위원장을 만나기 이전인 지난달 3일과 5일에 혁신위 회의에서 이미 결정 난 상태였는데, 혁신위 스스로 최우선 안건으로 결정해놓은 것을 제가 뒤늦게 요구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짓”이라며 “허위사실로 저를 비난한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 지난달 7일 주 전 위원장은 만남에서 ‘패스트트랙 거부 의총 상정’, ‘야권재편 추진’을 말했고 저는 야권 재편은 혁신위가 할 일이 아니고 당의 자강과 혁신을 말해야 한다고 반박했다”고 바로 해명에 나섰다.
또 오신환 원내대표 역시 이날 최고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당과 무슨 연대·통합에 연결고리로 언급하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른, 있지도 않은 내용으로 왜곡하는 것이다. 손 대표 자신이 처한 궁색한 처지를 돌파하기 위한 꼼수정치”라며 “10개월이 넘는 동안 손학규 체제에 대해 왜 수많은 당원들이 변화를 요구하는지 스스로 자성과 성찰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손 대표를 꼬집었다.
아울러 오 원내대표는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당원이 묻고 지도부가 답하다’ 공개검증에선 손 대표의 자강론을 겨냥한 듯 “자강의 결과적으로 목표지향점을 정확하게 하고 모두가 하나 될 때 가능하다”며 “손 대표가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진정성 있게 결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사실상 퇴진 압박을 가했는데 젊은 정당, 정책정당, 정의로운 정당을 바른미래당의 지향점으로 제시하기도 하면서 부정적 인상을 주는 당권투쟁보다는 당 혁신 차원에서 주장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당권을 지키기 위한 구실로 손 대표가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에게 한국당과의 통합 프레임을 씌운다는 이들의 호소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은데, 오 원내대표가 이날도 “당 정체성을 정책적으로 방향성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다시 정체성 논란에 불을 지핀데다 지난 1일 정치권 일각에선 한국당 내 비박계인 김무성 의원과 무소속인 원희룡 제주지사, 바른미래당 유승민·안철수 전 대표, 남경필 전 경기지사 등을 주축으로 한 5인 신당론 얘기도 이미 돌았던 바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1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이른바 ‘5인 신당론’과 관련해 “5명의 공통점은 박근혜 탄핵을 찬성한 분들로 또 다른 보수신당을 창당한다는 설이 나온다”며 “아직까지는 설이나 정치권에선 저런 설이 나오면 사실로 된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당내 불신감을 키우고 있는 정계개편설이 말 그대로 ‘설’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손 대표 발언대로 실체가 있는 것인지 바른미래당의 향방에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