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기 분유 값을 마련하기 위해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10대 미혼모의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부모 밑에서 학교를 다녀야 할 18세의 어린 소녀는 당장 생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어 가녀린 체구에 생후 3개월 된 아기와 함께 매일 지하철 안으로 들어와 사람들에게 손을 벌리는 것이다.
1년 전 노숙을 하다 지금의 아기아빠를 만나게 된 M양은 현재 여관을 전전하며 구걸로 생계를 잇고 있다. 물론 M양은 구걸이 아닌 떳떳한 직업을 갖고 아이와 행복한 삶을 꾸리고 싶지만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M양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일 뿐이다.
이 같은 M양의 딱한 사정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다시금 10대 미혼모의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너무 빨리 아기엄마가 된 10대 미혼모, 소위 ‘리틀맘’이 늘고 있다. 한 해 무려 3천 400명의 청소년이 출산을 하고 있고 10대 미혼모가 6천명에 달한다는 통계조사도 있다.
여성가족부가 제출한 미혼모 시설 운영현황에 따르면, 10대 미혼모는 05년 6월 402명(42.5%), 05년 12월 680명(35.05%), 06년 439명(40.0%)이 입소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들 리틀맘이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인터넷 카페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싸이월드의 L모 클럽에는 약 6천여 명의 회원이 가입한 상태고 다음의 한 카페에도 1천여 명의 리틀맘이 가입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출산에 대한 두려움부터 육아비법까지 여느 임산부나 아기엄마가 하게 되는 소소한 고민들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축복받지 못하고 떳떳하지 못한 임신을 한 탓에 다른 엄마들과는 다른 성격의 상담도 많았다.
축복받지 못한 출산에 따르는 고충
상담내용을 분석해 보면 크게 네 가지 고충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사회가 이들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이다. 인터넷카페의 한 리틀맘은 “우리 아기가 건강한지, 제대로 자라는지 병원도 가봐야 하는데 16살이 산부인과에 가면 사람들이 어떻게 쳐다볼지 눈총이 무서워 못가고 있다”며 걱정을 늘어놨다. 또 다른 17세의 미혼모는 “어렵사리 맘을 먹고 병원에 갔지만 의사나 간호사가 웬지 무시하는 듯 한 시선을 보냈다”며 그 다음부터는 병원가기가 꺼려진다고 말했다.
두 번째 고충은 학업중단의 문제다. 임신 3개월째의 한 클럽회원은 “나오는 배를 어떻게 집어 넣고 티 안나게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닐지 벌써부터 걱정”이라며 진지하게 자퇴를 생각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다른 회원은 “보통 리틀맘들은 자퇴를 하는데 나는 꼭 고등학교졸업장을 받고 싶다”며 “휴학했다가 아기를 낳고 복학할 생각인데 현실적으로 무척 어려울 것 같다”고 한숨 섞인 고민을 카페에 올렸다.
세 번째 고충은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 경제적 어려움이다. 위에 언급한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미혼모의 사례는 매우 극단적인 경우지만 비슷한 난관에 봉착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미혼모가 부지기수였다. 백일이 막 지난 아기를 데리고 산다는 17세의 한 미혼모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 달에 60만원 정도를 받고 있지만 분유값을 충당하는 것도 빠듯하기만 하다”며 “아기를 봐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하지만 지금 같아선 모두 포기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남편을 군대에 보내고 5개월 된 아기와 단둘이 산다는 19세의 K양은 “시댁과 친정에서 다달이 몇 십 만원의 돈을 타 쓰고 있는데 두 집 모두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송구스럽다”며 “얼른 직장을 구해 당당하게 살고 싶지만 고등학교 중퇴라는 학력과 19세의 나이로 일할 수 있는 곳이 너무 적다”고 답답해했다.
네 번째는 조산에 따른 건강상의 문제다. 최근 미국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의 킴벌리 오브리언 박사팀에서 리틀맘과 관련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오브리언 박사팀은 14세에서 18세에 해당하는 임산부 15명의 산후 2개월 뒤를 조사한 결과 뼈가 현저하게 가늘어 졌으며 출산 3~4주 후 골밀도 측정에서 2명은 뼈가 부서지기 쉬운 골다공증, 3명은 골감소증 상태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또 경희의료원 산부인과 이보연 교수는 10대 임산부들 가운데는 조산이나 임신중독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연구결과가 아니더라도 떳떳하지 못한 임신과 출산에 건강상 관리를 소홀히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리틀맘들의 건강문제는 무시할 수 없는 고충이다.
이처럼 10대가 감당하기엔 너무 힘겨운 고통이 뒤따르는데도 불구하고 일부 매스컴의 영향으로 리틀맘을 동경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실제로 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10대 미혼모는 연일 인기검색어에 이름이 오르며 집중을 받았고 팬클럽이 생기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도 아기를 포기하지 않고 부모노릇을 톡톡히 하는 것은 분명 격려 받을 일이다. 그러나 쉽게 자극을 받는 청소년들의 눈에는 현실적 어려움을 안고 사는 미혼모의 삶보다는 예쁜 아기와 남자친구와 알콩달콩 살아가는 모습이 부러움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이처럼 딱한 시선을 보내든, 부러움의 대상이 되든 임신을 한 10대 중 아기를 낳는 경우는 20%에 불과하다. 한국청소년개발원과 한국사회복지회에 따르면 임신한 청소년의 70~80%가 낙태를 선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출산을 했다고 해도 그 중 80%는 입양을 선택해 매년 버려지는 아이들이 2천 600명에 달한다. 아기를 낳아서 키우든 키우지 않고 포기하든 그에 따르는 사회적 문제는 크다는 것.
그렇다면 10대 미혼모를 줄일 수 있는, 더 나아가 원치 않는 10대의 임신을 줄일 방안은 무엇일까. 가장 기초가 되야 할 것은 보다 현실적인 성교육이다. 성의식이 바뀐 만큼 무조건 성관계를 하지 말라는 것은 어불성설. 한국청소년개발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청소년의 70~80%가 전혀 피임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는 얼마든지 어린 엄마를 양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불가피하게 임신을 해 출산한 10대를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되야 한다. 미국의 경우 임신한 청소년을 위해 10대 양육 프로그램 ‘TAPP’를 학교별로 운영하고 있다. 임신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는 것을 방지하도록 의료 및 상담 서비스를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국내에는 현재 리틀맘을 돕는 전문 프로그램이나 지원기관이 한 군데도 없다.
교육인적자원부내의 여성교육정책담당관실에서 성교육과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고 있으며, 보건복지부내의 가정보건복지과에서 미혼모가정을 저소득 모자가정으로 인정하고 지원하고 있으나 이들 정책이 통합적으로 청소년의 임신예방과 리틀 맘 정책에는 맞춰져 있지 않고 있다.
열린우리당 신학용 의원은 이 문제와 관련해 “국가청소년위원회는 외국사례 중 미국과 캐나다 사례를 참고해 청소년 임신 예방을 위한 좀 더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성교육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신의원은 “10대의 호기심으로 갑자기 부모가 된 이들을 마치 죄를 지은 사람으로 손가락질하기 보다는 당당한 부모가 될 수 있도록 바로 세울 수 있는 대책 마련을 강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눈총보다는 끌어안기
너무 이른 나이에 엄마가 되 사회적 지탄과 경제적 어려움이란 이중고를 겪고 있는 리틀맘.
올바른 성 가치관과 의식을 전해주지 못한 우리 또한 책임추궁에 자유롭지 못한 만큼 그들에게 향한 따가운 시선은 거둘 때가 됐다.
날로 개방되는 성의식과 넘쳐나는 음란물 등으로 내 동생, 내 아이도 잠재적인 리틀맘이 될 수 있는 만큼 따뜻하게 그들을 끌어안을 포용력이 절실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