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협상 타결 1등 공신, 김종훈 수석대표
FTA 협상 타결 1등 공신, 김종훈 수석대표
  • 윤여진
  • 승인 2007.04.14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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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드러내지 않은 채 협상 상대 기 꺾어

“어떤 종류든 재협상은 없다.”
김종훈 한미 FTA 수석대표가 강하게 쐐기를 박았다.
2006년 2월 3일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로버트 포트먼 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워싱턴에 있는 미 의회 의사당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한미 FTA 협상 개시를 선언했다. 그로부터 14개월이 지난 4월 2일, 한-미 양국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FTA 협상 타결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한미 FTA 관련 소문들은 끝도 없이 퍼져나가 재협상 가능성까지 대두되던 시점에 김종훈 한미 FTA 수석대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김 수석대표는 지난 13일 서울 외신기자클럽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최근 미국에서 재협상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데 대해 우리 측의 입장을 밝혔다.

한미 FTA 재협상 있을 수 없다.

▲ 날카로운 눈빛의 김종훈 수석대표
김 수석대표는 한미 FTA 협상은 한 번 타결된 이상 재협상은 있을 수 없다는 우리 측의 입장을 이미 여러 차례 미국 측에 전달했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공식적인 얘기도 전혀 없었다며 어떤 종류든 재협상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다만 미국 의회와 행정부 사이, 특히 다수당을 점하고 있는 민주당이 정강에 따라 노동?환경 분야가 강하게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온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체결한 다른 FTA도 의회 비준이 실패한 적이 없었다면서 미국 의회의 비준에도 낙관적인 전망을 밝혔다.
이날 김 수석대표는 집중적인 질문이 이어진 개성공단의 역외가공지역 인정 문제에 대해 “국제노동기준이나 외국의 노동기준을 적용해서 조건을 충족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석하며 낙관적으로 내다봤다. 이어 개성공단의 역외가공지역 인정문제는 FTA 협정 발효 후 열리는 한반도역외가공위원회에서 △한반도 비핵화 진전 △역외가공지역 지정과 운용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노동?환경기준 충족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고려해 결정한다고 협상 결과를 다시 한번 설명했다. 이 중 한반도 비핵화 진전이라는 조건은 별도로 논의하더라도 개성공단의 노동조건은 특히 역외가공지역 지정에 걸림돌이 되리라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김 수석대표는 “노동조건 관련 항목에는 ‘현지 지역경제 내 다른 곳의 일반적인 상황’을 참고해서 노동 기분을 고려한다고 규정돼 있다.”고 말했다.
이는 개성공단이 속한 북한 다른 지역의 기존 노동환경을 참작해 판단한다는 의미가 되므로 북한의 다른 지역에 비해 노동조건이 월등한 개성공단이 함의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향후 지정될 수 있는 역외가공지역은 복수로 규정돼 있어 개성공단 외에도 북한의 더 많은 지역이 포함될 수 있는 여지를 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 수석대표는 “미국이 개성공단이라는 이름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얘기했지만 마지막 협사에서는 매우 전향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로 나와 양측이 별 이견 없이 합의가 이뤄졌다.”면서 “최근의 6자회담이나 북미관계 진전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하며 반대로 역외가공지역 관련 부분이 한반도 정세 진전에 영향을 주는 식으로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즉, 개성공단이 역외가공지역으로 지정받는 문제가 잘 풀리면 오히려 조건을 제시했던 비핵화 문제 등도 좋아지는 효과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의회 비준 낙관적 전망

김 수석대표는 한미 FTA의 미국 의회 비준 가능성에 대해서도 “미국 행정부가 과거 다른 나라와의 FTA 비준에 실패한 적이 없으며 아주 균형 잡힌 협상이었다는데 미국과 의견일치를 봤다.”며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또 김 수석대표는 이번 한미 FTA 협상 타결로 인해 중국과 일본이 자극 받을 것을 시사했으며, 아시아 국가들이 양자 FTA를 추구하고 시점에 한국이 FTA 허브가 되는 상태를 지속하고 싶은 심중을 내비쳤다.
우리가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미국과 FTA 협상을 매듭지을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미국 행정부의 무역촉진권한(TPA)에 있다. 김 수석대표는 이에 대해 “미국 행정부의 TPA 연장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우리로서는 좋은 일이라면서 한미 FTA가 유럽연합과의 협상을 촉진하는 토대도 될 수 있다고 피력했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과의 FTA 추진 현황을 살펴보면, 현재 중국과는 산?관?학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그 결과를 보고 적절한 시기에 공식적으로 협상에 착수할 예정이고 협상이 중단된 일본과는 농산물 분야에서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는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협상을 재개할 조짐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양국의 민감 분야인 쌀 문제에 대해서는 “민감성을 근거로 양허 예외를 인정받아 이번 협상에서 제외된 것은 분명하지만 관세화 유예가 끝나는 2014년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합의한 내용은 없다.”라고 말했다.
협상 기간 내내 압박감이 컸다는 김 수석대표는 협상 당시 민감 분야 종사자들과 직접 마주 앉아 토론을 벌여 거기서 나온 의견을 미국 측에 전달했고 개인적으로는 농민 등 피해산업 종사자들의 분노와 어려움을 이해하고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으로 김 수석대표는 이번 한미 FTA 협상 타결에 대해 “양국간 이익의 균형을 이루고 한국의 농업, 미국의 섬유, 해운 등 서로의 민감한 부분을 호혜적으로 존중하자는 원칙을 지키면서 상호 수용할 수 있는 선에서 양해를 이룬 만족할 만한 협상이었다.”고 평가했다.

김 수석대표 한미 FTA 협상 타결 후기

김 수석대표는 지난 11일, 모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3번의 결렬 위기가 있었다는 점과 협상 초기 19개 분과원을 모두 모아놓고 인생에서 단 한번뿐인 일이니 전력투구를 하자고 다짐했던 일 등 이번 한미 FTA 협상 타결에 대한 뒷이야기를 펼쳐보였다.

Q. 지난해 4월 26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NSI) 정책포럼에서 한·미 FTA 협상이 앞으로 3차례 위기가 있을 거라는 말을 했었다. 실제로 그랬나.
- 마침 오늘도 NSI 포럼에 가서 협상 결과를 설명했다. 1년 전에 3차례 위기가 있을 거라고 얘기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약가 적정화 방안을 시행한다고 발표하면서 미국이 의약품 분과 협상을 결렬시켰던 2차 협상이 첫 번째였다. 두 번째는 시애틀에서 3차 협상을 열기 전 양국이 공산품 양허표를 교환했을 때였다. 미국이 관세 즉시 철폐 품목을 엄청나게 관세 낮게 내놓아서 정말 황당했었다. 세 번째는 우리가 무역구제 압력을 한창 높이던 지난해 12월 말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의회에 법 개정 사항을 12월말까지 통보해야 한다. 이때 무역구제 관련 우리 요구사항 중 법 개정사항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통보해 협상이 어려운 국면으로 갔었다.

Q. 마지막 협상에서 미국이 연장 요청을 할 것이라고 예상 했나.
- 그렇다. 토요일(3월 31일) 새벽 1시 이전에 양국 협상단은 각자 방으로 철수한 상태였다. 입장 차이가 너무 크다고 느끼고 헤어져서 새벽 1시를 넘겼다. 서로 속은 탔지만 배짱 싸움을 했다. 그러다 미국이 48시간을 더해보자고 얘기했다. 그 때도 48시간 연장은 못 믿겠다는 말을 했다. 일요일에 근무시간이 따로 있냐면서 돌려서 물어봤다. 결국 일요일(4월1일) 자정도 넘기지 않았나.

Q. 14개월 동안 협상을 이끌면서 기억나는 일은.
- 14개월이 매일 희망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출근하면 희망이 생기지만 저녁에는 이게 되는 일인지 하는 깊은 근심에 빠졌다. 그래도 협상장에서는 여차하면 깰 수도 있다는 걸 몸짓으로나 표현으로나 전달했다. 다만 속마음은 내 직분은 '딜 메이커다'라는 거였다. 메이커 하겠다고 드러내면 약점 잡히니까 상대에게는 깰 수 있다고 말했다. 타결 직후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둘이 따로 만났다. 둘이 악수를 하고 서로 못 본 척했지만 본부장 눈에 눈물이 그렁거리더라. 나도 눈물이 났다.

Q. 미국 협상단 사이에서 한국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 이전까지 미국은 일방적으로 통상 보복조치를 휘둘렀다. 당시 협상을 했던 사람들은 USTR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 미국도 이제는 논리로 상대국을 설득하고 압박할 수밖에 없다. 또 한·미 FTA의 의제 범위가 워낙 넓어 미국이 수세인 점도 많았다. 미국은 공격만 해본 탓에 수비에 아주 약했다. 이런 분위기를 참지 못한 미국 분과장 중 일부는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분과원들도 너나없이 전력투구했다. 끝나고 나니 김원경 외교통상부 협상총괄팀장과 재정경제부 김영모 과장이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고 하더라. 협상 초기에 분과원들을 모아놓고 인생에서 다시 안 오는 경험이니 후회 없이 하자고 다짐했었다.

Q. 무역구제는 이 정도 수준으로 합의해도 효과가 있나.
- 지난 10년 동안 무역구제협력위원회를 만들자고 요구해도 거부한 것을 미국이 받아들였다. 반덤핑 조사 개시전 사전협의, 가격이나 물량조정으로 합의할 수 있는 절차 등도 관철됐다. 미국이 FTA를 하면서 무역구제를 협정문에 넣어본 적이 없는데 이걸 모두 ‘shall’이라는 의무조항으로 넣었다. 미국이 기존 법령을 고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간 것이다.
Q. 비합산 조치(특정 산업의 피해를 조사할 때 여러 수출국 제품을 합산해 반덤핑 관세를 매기는 방식 금지)는 관철시키지 못했는데.
- 워낙 어렵다고 해서 트레이드오프(trade-off)했다. 서로의 요구 사항을 저울추에 올려놓고 같은 무게로 들어냈다. 대신 미국은 신약 최저가 보장 요구를 포기했고, 투자자-국가간 제소(ISD)의 간접수용 대상에서 부동산·조세정책을 제외하자는 우리 요구를 받아들였다. 비합산 조치는 원래 우리 전략이었다. 일부러 값을 굉장히 키웠다. 되면 좋다는 생각은 했지만 미국이 굉장히 곤혹스럽게 생각하기에 더 세게 나간 거다.

Q. ISD는 주권 침해 논쟁까지 붙고 있는데.
- 조약을 체결하면 조약이 추구하는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해 자기 주권을 그만큼 양보하는 것이다. 주권 포기라고 보는 것은 국수적 시각이다. 우리가 그동안 경제 개발을 해 온 모습이나 앞으로 살아갈 방향에 투영해보면 그런 국수적 발상 갖고는 도저히 해답이 안 나온다.

Q. 협상결과에 대해 다시 점수를 매겨도 ‘수’를 줄 것인가.
- 협상이 끝난 날 저녁에 웬디 커틀러 미국 대표와 포도주를 한잔 했는데 한국은 받은 게 많은데 난 돌아가서 말할 게 없다”고 하더라. (웃음) 받을 거 다 받고 줄 거는 하나도 안줬으니 ‘수’를 달라고 한 게 아니다. 양국 간에 수용 가능한 내용이 됐다. 어느 정도 균형이 맞춰졌다는 의미로 한 말이다. 이런 차원에서 다시 ‘수’를 줄 수 있다.

한편, 김종훈 한·미 FTA 수석대표는 1993년 주미대사관 경제참사관으로 통상에 첫발을 디뎠다. 당시 담배·광고시장 개방협상에 참가하면서 미국 무역대표부 직원들과 안면을 텄고 2005년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고위관리회의(SOM) 의장을 맡으면서 APEC 역내 무역·투자 자유화를 위한 부산 로드맵을 만들었다.
김 수석대표는 눈빛이 날카로운 강인한 인상이지만 실제로는 털털한 성격으로 알려졌다. 한·미 FTA 협상 기간 동안 19개 분과원들과 수시로 어울리며 어려움을 들어줘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반면, 협상장에 들어서면 얼굴에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상대방의 기를 꺾어 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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