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관객모독"
독일작가 피터 한트케를 일약 비평적 스타덤에 올려놓은, 조금 과장된 평가를 빌자면, 브레히트 이후 연극의 '새로운 장르'를 창조해냈다고 일컬어지는 연극 <관객모독>은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성향에도 불구하고 우리 관객들에게 유난히 익숙하게 다가오는 연극이다.
1966년에 탄생한 이래, 1977년, 고대 독문과 출신의 극단인 '프라이에뷔네'를 통해 우리 무대에 처음 올려진 <관객모독>은, 이후 '극단 76단'에 의해 빈번하게 상연되면서 폭압적인 정치현실 속에 억압받던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어냈다. 당시로선 '절대' 볼 수 없었던 욕설의 난무 - 그것도 관객들을 향해! - 와 관객석에 물세례까지 퍼붓는 등의 퍼포먼스를 통해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해준 <관객모독>은 순식간에 '문화적 이슈'로 떠오르며 2, 3년에 한번씩 '극단 76단'에 의해 꼬박꼬박 상연되는 '스테디셀러' 역할을 톡톡히 해왔는데, 공연초기의 '상식파괴', '고정관념파괴', '권위주의파괴'의 이미지에서 서서히 '진화'하여 본래의 의도인 '반연극'의 방향성, '언어극'의 방향성을 되찾기 위해 '극단 76단'은 극중극의 형태, 말과 행동의 다중적 의미 및 넌센스적 말장난을 통한 '언어유희'의 요소 등을 삽입하는 등의 노력을 지난 20여년 간 꾸준히 기울여왔다.
그리고 2004년에 이르러, <관객모독>이 '극단 76단'에 의해 다시 한번 선보여지게 된다. 1976년 연극계에 데뷔한 이래 '극단 76단'의 연출가로 활동해오며, <관객 모독>, <미친 리어>, <햄릿 시리즈>, <지피족>, <개>, <훼밀리 바게트> 등의 문제작들을 탄생시킨 기국서의 연출과, 무대극계의 베테랑인 이달형, 이용규, 하성광, 백진철, 그리고 여균동 감독의 영화 <미인>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이지현이 출연하는 이번 <관객모독>은, 지난 8년 간 축적해두었던 '극단 76단'의 새로운 테크닉과 담대한 주제의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듯한데, 특히 '연극'이라는 형식 자체에 대한 조롱, 연극을 보고 있는 '관객'들에 대한 모독, 나아가서는 이런 연극을 연출하고, 연기하고 있는 자신들에 대한 경멸을 통해 연극의 '진실성', 언어의 '독자성'을 더욱 힘있게 주장할 예정이어서 남다른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근래 연극계는 '천편일률'적이라는 표현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닐 정도로 끊임없는 자기복제의 딜레마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듯하다. 모두가 '희극'의 요소, 그 중에서도 '말장난'의 컨셉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듯 보이고, 관객들에게 보다 친숙한 'TV 드라마'적 구성과 비쥬얼한 장치들의 개발에만 골몰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기괴한 '탈피'의 시기에, 탄생 이후 39년 간, 국내에 들어온지 28년간 줄기차게 관객들에게 퍼부어댄, 그리고 자기 자신에겐 쏟아넣은 '모독'은, 우리가 지금 지켜보고 있는 장르는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는 이 장르에서 무엇을 얻으려 하며, 무엇을 지켜내려 하는 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끔 '만들어' 줄 것이다.
(장소: 대학로극장, 일시: 2004.07.0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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