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일각에서 ‘내각제 개헌론’이 제기되고, 이어 자민련의 이인제 총재대행도 개헌론을 내년 4월에 있을 17대 총선 전에 공론화 하자는 가운데, 민주당 한화갑 대표가 13일 “내각제를 논의할 단계가 됐다”고 언급해 개헌론이 정치권에서 조기에 공론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내각책임제 개헌론이 공론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내각책임제 개헌론은 지난 3일 한나라당 이규택 총무의 발언으로 불붙기 시작, 그 후 열흘 만인 13일 민주당의 한화갑 대표가 “내각책임제 문제는 거론할 때가 됐다”고 모 라디오방송 인터뷰를 통해 개인적인 입장을 피력해 개헌 공론화가 급물살을 탈 조짐이다.
한 대표는 이날 인터뷰에서 “앞으로 권력구조 문제는 국민의 변화 욕구와 함께 가야 한다”면서 “내각책임제 문제는 거론할 때가 됐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각제는 자민련과 공조할 때 우리당의 당론이었다”며 밝혔다.
그는 특히 “야당이 주장하는 내각책임제나 우리가 주장하는 중대선거구제나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결론을 도출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여야 합의만 되면 둘 다 받아들일 것이며, 둘 중에 하나가 되는 것이 (아무 것도) 안 되는 것보다는 낫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한 대표가 내각제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 것은 처음으로, 앞서 한나라당 이규택 총무의 내각제 개헌 발언을 한 후 대구·경북 지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내각제 지지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정치개혁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정치개혁 협상과정에서 중대선거구제와 내각제 개헌을 한데 묶어 다루겠다는 패키지 협상 전략을 언급한 것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신주류 측의 정대철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불교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정계개편에 관련하여, “야당도 정권교체 이후 적어도 몇 개월 동안이라도 밀월기간을 인정해 기다려주는 게 도리이며, 그후부터 야당의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내각제 개헌 문제에 대해 “앞으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너무 권위주의에 빠지면 내각제 논의가 살아날 수 있지만 새 대통령 탄생 직후 권력구조 변화를 얘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하고 “나중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 한 대표의 주장에 대립 각을 나타내면서 내각제 개헌론에 대한 논란이 민주당 내 분당으로까지 파장될 조짐이라는 관측이 우세해지고 있다.
한 대표의 측근 또한 “한 대표가 차기 지도부 경선 불출마 입장을 이미 밝힌 만큼 내각제 개헌을 추진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며 “사회자가 질문한 데 따른 원칙적인 입장 천명에 불과하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에 당 일각에선 DJ 이후 호남 맹주를 노리는 한 대표가 내각제 개헌을 통해 향후 입지를 도모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각제 문제가 실제로 정치권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민주당의 경우 이제 노무현 정부가 새로 출범하는 시점에서 내각제 개헌을 조기에 공론화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노 당선자는 지난해 말 자신의 집권 5년을 3기로 구분, ▲오는 2004년 총선 이전엔 순수대통령제로 ▲총선 이후엔 중대선거구제를 전제로 다수당에 총리를 맡기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국정을 운영하되 ▲오는 2006년에 개헌 논의를 본격화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정가에서 내각제 개헌과 관련, 민주당의 태도를 주시하는 것도 이런 배경을 깔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내각제 개헌론 불붙은 한나라당
특히 한나라당 내에서 이 총무 발언 이후 ‘내각제 개헌론’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당장은 대선 패배 후유증 극복 차원에 무게가 실려 있지만 현재의 여야관계와 정치권 역학구도를 감안할 때 일정한 계기만 마련되면 논의가 활성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
개헌론자들은 이번 주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당·정개특위 제3분과(권력체제 등 정치개혁분야) 활동 및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전당대회 준비과정에서 이 문제가 집중 논의돼 빠른 시일 내에 공론화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당 내엔 내각제론자들이 적지 않고, 지난달 26일 천안연수원에서 열린 의원·지구당위원장 연찬회에서 내각제 문제가 공개 제기됐다는 점에서 개헌문제가 새해 최대 화두로 부각될 소지도 다분하다.
특히 이 총무가 앞서 이 문제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공식 제기함으로써 공론화 가능성도 활짝 열린 게 사실. 물론 배석한 고위당직자들의 만류로 일단 “없던 일”로 정리됐지만 이 문제가 당내에서 내연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내각제 지지 분위기는 특히 이번 대선 패배로 권력상실감이 강한 T·K(대구·경북) 지역 출신 의원들 사이에서 강하다. 한때 내각제 개헌 서명운동까지 계획했다가 보류되기도 했으며 여기에는 P·L·P 의원 등 20∼30명이 뜻을 같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대통령 취임식을 1달여 남겨둔 상황에서 내각제 개헌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차원에서 공개 논의를 삼갈 뿐 그 뜻을 접은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특히 여야 공히 중앙당 슬림화와 원내정당화 추세로 가는 것은 내각제 전환으로의 출발점이며, 이번 대선에서 재삼 확인된 망국적 지역감정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라도 내각제로 개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보혁세력이 공존하는 각 정당 세력분포를 감안할 때 차제에 내각제로 전환되지 않으면 제세력이 이념과 노선에 따라 무원칙하게 분리, 다당제로 변모될 가능성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이 원내 제1당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내각제로 변모돼야 한다는 논리다.
박종근 정책위부의장은 12일 “노무현 당선자가 프랑스식 분권형 대통령제와 내각제에 준하는 국정운영을 거론하며 오는 2007년 개헌을 주장하고 있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 당선자가 내년 4월 총선에서 원내 제1당에 총리지명권을 주겠다고 밝힌 점을 상기시키며 “한나라당이 1당이 됐을 때 총리지명권을 받으면 정책연대냐, 공동정부냐의 논란이 초래될게 분명하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미리 제도를 고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앞서 보수중진인 최병렬 의원은 “사석에서 내각제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개인적으론 ‘분권형 대통령제’가 더 실현 가능하다고 본다”며 개헌에 적극적 자세를 보였다.
개헌의 불길 당기는 자민련
자민련도 한나라당의 내각제론 분위기에 편승, 개헌의 불길을 당기고 있다.
오랜 내각제 지지자인 김종필 총재를 중심으로 자민련 측도 향후 개헌 공론화에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돼 내각제가 새해 정치권의 주요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자민련 이인제(IJ) 총재권한대행은 4일 모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개헌 논의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면서 “정파간 합의만 되면 올해 국회 내에 헌법을 개정, 17대 총선을 새 헌법으로 치러 다음 국회 때부터는 책임정치를 해나가는 게 좋다”고 말해 개헌론에 대한 공론화가 급물살을 탈 조짐이다.
이는 한나라당 이 총무가 17대 총선에서 내각제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도 함께 실시하자고 주장한 것보다 개헌 일정을 더 앞당기자는 주장이다.
그는 또 “자민련은 오랫동안 내각제를 주장해왔지만 프랑스식 ‘분권형 대통령제’도 반대할 필요가 없으며 여러 정당과 협의, 헌법의 권력구조 개편에 나설 생각”이라며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대해서도 우리당이나 저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유운영 대변인도 앞서 “노 당선자도 이미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공약했고, 한나라당에서도 내각제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한 만큼 개헌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개헌 공론화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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