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미국?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미국?
  • 김상미
  • 승인 2004.06.22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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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는 열린우리당 ‘새로운 모색’
최근 정가의 화두로 대미관계에 대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 초.재선 의원모임인 `국가발전을 위한 새로운 모색(새로운 모색)'이 지난 21일 이라크전쟁과 한반도문제와 관련해 `대미성명'을 발표한 데는 미의회 9.11테러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가 큰 영향을 미쳤다. `새로운 모색'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조지 부시 미 행정부의 주장을 뒷받침할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9.11 테러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가 지난 16일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 모임 공동대표인 송영길 의원 등의 주도로 부시 정부를 비판하는 성명을 준비해 왔다. 송 의원은 "미 의회 `9.11테러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에서 보듯이 부시행정부가 잘못된 정보에 기초해 이라크를 공격한데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 의원은 "우리나라가 대북정보에 있어 미국에 비해 부족한 상태에서 잘못된 정보에 기초해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던 상황이 한반도에서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성명 발표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이라크 추가파병과 관련해 사실상 당론을 통해 정부입장을 존중키로 한 상황에서 추가파병군의 성격을 평화.재건부대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미군과 한국군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알릴 필요성이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모임이 성명서에서 "이라크 재건과 평화 정착에 세계 각국의 참여와 안전 강화를 위해 미군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을 유엔 주도의 평화유지군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포함시킨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집권여당 소속 의원들이 동맹국인 미국의 외교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한데 대해, 당지도부와 국방.외교전문가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외교적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새로운 모색은 당초 성명에서 부시 행정부의 `사과'를 요구키로 했으나 한.미동맹관계 등 외교적 파장을 고려해 `해명.촉구'로 한 단계 수위를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새로운 모색은 기자회견에 앞서 이날 새벽 한국인 김선일씨 납치사건이 발생하자 김씨의 즉각 석방을 촉구하는 별도 메시지를 긴급히 마련해 아랍 위성 TV방송인 알-자지라를 통해 보도될 수 있도록 다각도로 노력중이다. 송 의원은 "오늘 대미성명과 석방촉구 메시지가 납치된 김선일씨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새모색'은 우리당 내 초.재선의원 34명이 참여한 모임으로 지난 15일 창립총회를 가졌고, 참여 의원들 가운데 이라크 파병 등에 대해 상대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취재온 의원들이 많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당 지도부와 국방.외교 전문가출신 의원들은 한.미동맹관계 등을 고려한 신중한 태도를 주문하면서 자칫 외교문제로 비화되지 않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다. 특히 이라크 파병문제와 관련해 최근 정부의 입장을 존중키로 했으나, 또다시 소장파 의원들이 파병 재검토 결의안을 제출키로 결의한 시점에서 `대미 비판성명'까지 나옴으로써 여당의 대외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손상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아울러 진보적 성향이 강한 386운동권 출신 초.재선 의원들의 이같은 주장이 본격적으로 제기됨으로써 대외정책, 특히 대미관계를 둘러싼 우리당내 정체성 논란이 재연될 개연성도 없지 않다. 이에 앞서 최근 한.미동맹 강화를 주장한 바 있는 천정배 원내대표는 송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한.미동맹관계를 고려해 신중히 행동해달라"며 기자회견을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기남 당의장측도 "부담스럽다"며 "국내정치문제도 아니고 국제문제에 대해 여당에서 이런저런 목소리를 내는것은 신중해야 하는데..."라며 곤혹스러워했다. 국방장관출신인 조성태 의원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들의 소신을 밝힐 수 있다"면서도 "여당의 책임있는 국회의원으로서 진정한 국가 이익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를 넓혀야한다"고 말했다. 제네바 대사를 지낸 정의용 의원은 "초.재선들의 판단은 존중해야하지만 대외관계는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해야한다"며 "대외관계에 있어 (상대국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성명을 내는 것은 자제해야한다"고 말했다. 국회 국방위원장 출신인 장영달 의원은 "미국 내부에서도 나오는 목소리이기 때문에 (여당 의원들이 성명을 내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국제정치적으로 어떤 영향을 가져오는지 점검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와 관련 한나라당 의원들은 대미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했다. 주한미군 감축 등으로 한미동맹이 흔들리고 있는 민감한 시점에 여당 의원들이 나서 신중하지 못한 언행을 하는 것은 국익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운동권식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며 "30여명이나 되는 여당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동맹국인 미국을 비판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며 납득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김형오 사무총장은 "열린우리당이 당론을 정해야지, 몇 사람의 튀는 무책임한 행동으로 국민을 종잡을 수 없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집권당으로서 뚜렷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는 있으나 여당 소속 의원들이므로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이것이 일부 의원의 생각인지, 여당 의견인지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소장파인 원희룡 의원은 "의원의 소신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국가생존 전략에서 차지하는 한.미 관계의 비중에서 볼 때 그다지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며 "생각이 있다 하더라도 할 말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 파병연기를 주장하고 있는 고진화 의원도 "미국에 우리 입장을 밝히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국내에서 이라크 파병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미국의 외교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집단의사를 성명형태로 표시하기는 이번이 처음인데다, 이라크 추가 파병과 주한미군 감축, 용산기지 이전 등으로 한미동맹 관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시점이어서 미국측 반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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