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정치인 권철현 한나라당 국회의원
희망의 정치인 권철현 한나라당 국회의원
  • 이준기
  • 승인 2007.04.19 1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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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을 서부산의 중심도시로, 대한민국을 3大강국으로…”


정치인생 12년차 맞은 권철현 “국가와 국민 있기에 내가 있다”
2002년 대선 실패 ‘시련’ 맞기도···정권교체에 모든 힘 쏟을 터


요즘 같은 세상에 촌스럽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정치인이 가슴 속에 새겨야 할 신념인 ‘애국애향’을 위해 몸 받쳐온 이가 한 명 있다. 바로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 15대 국회에서 정치권에 첫발을 디딘 권 의원도 이젠 정치인생 12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그 무엇보다 역점을 두었던 것은 지금의 그를 있게 해 준 자신의 지역구인 사상구를 발전시키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간 ‘사통팔달의 각종 도로 개통’ ‘사상 남자인문고 신설’, ‘주례 부산구치소 이전 확약’ ‘부산 사상구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선정’ ‘사상구 관내 학교 체육관 대거 건립’ ‘국헌장학회 설립’ 등 국회의원 3선을 역임하며 지역구 발전에 온 힘을 쏟았다고 자부한다.

“사상 발전의 기관차, 권철현”
그는 “사상을 서부산의 중심도시, 교육 중심도시, 살기 좋은 강변도시로 가꿔 위대한 사상을 만들어 내겠다”고 포부를 말했다. 이어 “실패했을 때나 성공했을 때나 언제나 저를 지켜주신 사상구민 여러분들이 제 곁에 있는 한 저는 이 일들을 꼭 해낼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권 의원은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됐던 지난 96년에 있었던 일을 회고했다. 당시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던 인문계 고등학교 설립이 예기치 않은 IMF 로 인해 중단된 것. 그러나 그는 다각적인 노력을 펼쳐 결국 남자인문고인 가칭 사상고등학교 설립(2008년 개교 예정)을 확정했고, 사상고등학교와 사상중학교의 시설개선을 위해 150억원의 예산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권 의원은 또한 지난 1월 30일 김성호 법무장관을 만나 주례 부산구치소 이전을 최종 확약 받기도 했다. 부산구치소는 사상의 도시 이미지와 지역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어 지역민들의 이전 요구가 거센 상황이었다. 권 의원은 이를 두고 “사상구 주민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권 의원은 사상구가 교육부 선정 2007년 ‘평생학습도시’로 선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고, 영어마을 건립, 수영장을 포함한 복합화시설 건립, 국립중앙도서관 부산 분관 사상구 건립 등을 위해 분주히 뛰고 있다고 밝히며, “이것들이 거의 현실화 단계에 있다”는 확신의 말도 잊지 않았다.

“시련의 시기, 실패도 있었다”
권 의원은 정치인 생활 10년 중 가장 큰 시련의 시기를 부산시장 도전 실패로 꼽는다. 그는 “도시박사(도시경영전문가)로서의 능력을 내 고향 부산을 위해 모두 쏟아 부을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안타까운 고배를 마시며 “하늘이 나를 사용코자 하는 목적이 여기에 있지 않다”고 판단, 중앙정치무대를 통해 ‘반듯한 나라’ ‘반짝반짝 빛나는 나라’를 건설하는 데 헌신하기로 마음먹었다.

부산시장 도전 실패가 권 의원의 개인적인 시련의 시기라면, 2002년 대선(당시 권 의원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비서실장이었다)의 패배는 권 의원 정치인생의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였다고 한다. 그는 “아직도 그 때의 상처를 100% 치유하고 있지 못하다”며 “2007 대선 승리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는 것이 당시의 상처를 완전히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하늘이 내게 부여한 임무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하라는 것”
권 의원은 지역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중앙정치무대에서의 전력도 화려하다. 의정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고 보람을 느꼈던 게 무엇인지 묻자, 그는 1999년 국정감사에서 의정 사상 전무후무한 ‘3관왕’을 달성했던 일을 떠올렸다. 환경노동위에서 활동하면서 동료의원, 피감기관(공무원) 및 시민단체 평가에서 모두 1등으로 선정되었던 것.

현재는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임하면서 학교급식법,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교육자치법 등을 통과시켰고, 현재도 사학법, 로스쿨법 등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로 자리 잡은 핵심 현안들을 원만하게 처리하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국회 21세기동북아연구회 회장과 한일의원연맹 간사장 겸 부회장, 한?헝가리 의원친선협회 회장 등을 맡고 있으면서 의원외교활동에도 적지 않은 열정을 기울여 상당한 외교적 성과를 내고 있다.

권 의원은 국회 의정활동 뿐 아니라 활발한 당직 활동으로도 일찌감치 이름을 날렸다. 한나라당 대외협력위원장과 대변인을 거쳐 기획위원장, 이회창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 부산시당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과거 김대중 정부 당시 1년 8개월 동안 최장수 야당 대변인을 지내면서 그는 기자들로부터 ‘걸어 다니는 당론’, ‘최첨단 탱크’ 등의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 기간 여당에서는 무려 5명의 대변인이 교체되는 등 당시 여권이 가장 두려워하던 名대변인으로 명성을 떨쳤기 때문이다.

부산 중구 보수동에서 태어나 보수초교와 경남중·고를 다녔던 권 의원은 연세대를 거쳐 일본 국립 쓰꾸바대에서 도시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4년부터 22년간 동아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지역시민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의 전력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도시빈민운동을 했던 것. 권 의원은 “과거 故 제정구 의원과 김진홍 목사와 함께 서울에서 도시빈민운동을 벌였다”며 “덕분에 시민들과 눈높이를 같이 하는 ‘시민성’과 ‘도덕성’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정권교체 통한 3大강국 건설 위해 모든 것 바치겠다”
권 의원은 마지막으로 세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는 지역발전이었다. 그는 “사상 인문고 건립 등 그동안 크고 작은 공약들을 이뤄왔다고 자부한다”며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않겠다. 한없이 사랑하는 나의 제2의 고향인 사상 발전을 위해 한 층 매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둘째는 3대혁명을 통해 3대 강국을 건설하겠다고 한다. 의아에 하는 기자에게 권 의원은 “3대혁명은 교육혁명, 과학기술혁명, 문화혁명이고 3대강국은 교육강국, 과학기술강국, 문화강국”이라며 “이 목표를 위해 중앙정치무대에서 더욱 발 빠르게 뛰겠다”고 했다.

마지막은 역시 정권교체였다. 그는 “잃어버린 10년을 극복하고 조국 선진화를 달성하기 위한 당면한 최대의 지상과제는 무능한 이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라며 “대선 승리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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